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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과 독자들의 방문을 자주 받다 보면 결국 장소들이 자신들애게 부여된 이미지에 스스로를 맞춰 책들을 닮아 버리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낯선 장소들을 발견하는 일을 책으로 시작하여 책으로 끝내는 것이 그만큼 더 정당화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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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길
로드 브라운 그림, 줄리어스 레스터 글, 김중철 옮김 / 낮은산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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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들이 얼마나 절망하고, 분노하고, 고통스러웠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테니까.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어쩌면 인간은 노력하지 않으면 악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마침내 어렵게 다시 자유를 맞은 그들은 행복했을까. 그들에게는 누가 사죄를 해야 하는가.

역사책에는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시켰다고 쓰여 있지. 링컨이 노예제도를 없애는 노예 해방령 문거에 서명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모든 공을 링컨에게만 돌리는 건 옳지 않아.
노예와 흑인이 스스로를 위해 한 일을 잊지 말아야 해. 그것은 국가를 위한 일이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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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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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서의 삶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 82년생 김지영.

며칠 전 이 책이 영화화 된다는 기사를 얼핀 본 기억이 난다. 82년에 태어난 여자의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이어서 이 책의 제목이자 주인공이 된 그 김지영을 누가 연기하게 될 것인지, 암만 생각을 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

 

어릴 적, 교실 속 남학생과 여학생의 숫자가 다른 것으로 어렴풋하게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된 그 즈음, 나는 엄마가 밥을 풀 때마다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엄마가 밥을 담아내는 순서가 불만스러웠다. 김지영 씨의 집처럼 우리집 역시 손위인 누나보다 남동생의 순서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아빠, 남동생, 나, 엄마의 순이었는데 이래저래 생각해봐도 참 이상한 순서였다. 게다가 엄마의 밥은 갓 지은 밥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찬밥일 때가 많았다. 더러는 내 밥도 찬밥인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몹시 화가 났다. 그땐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마르고 식어버린 밥이 싫어서가 아니라 찬밥을 먹고 있는 내가 어딜 가서도 찬밥 취급을 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던 것 같다. 엄마도 같은 여자면서 왜 그럴까. 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허리까지 찰랑거리던 머리카락을 뎅강 자르고 당시 인기있는 남자 아이돌처럼 옷을 입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남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여권(女權)이 신장됐다고, 여자들 마음대로 남자를 움직인다고, 밤낮없이 일해서 집에다 돈만 갖다 바치는 남자들이 불쌍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김지영 씨의 대학 등산동아리 남학생들처럼 원하지도 않는 자잘한 일에는 갖은 배려를 다하는 것처럼 굴다가도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는 자기들끼리만 결정한다. 모르게 하는 게 무슨 배려라도 된다는 양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년째 아이들을 키우느라 경단녀가 되어버린 내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 지영이들의 삶이 고단한 건 이해하지만 처지가 다른 내가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잠깐 틈을 내서 만나거나 통화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서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친구들을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다 맘충이라는 화살에 맞은 김지영 씨가 남편에게 하소연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울컥하고야 말았다. 나를 포기하고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한, 혹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댓가가 생면부지인 사람의 비난이라면. 눈물이 흘렀다.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말투인 이유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밝혀진다. 이 모든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김지영 씨를 진료한 정신과 의사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로 태어나 너무나 평범하게 여자로서의 삶을 살았을 뿐인 김지영 씨가 끝내 미쳐버리고 만 모습을 목도한 사람이자 김지영 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아내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나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했지만 머리와 가슴 사이는 생각보다 먼 모양이다. 이 책을 읽었다는 내 주위의 남자들 역시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타인의 아픔에 무감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래도 '82년생 김지영 씨'의 이야기가 도무지 꾸며낸 게 아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시대는 반드시 온다고 쓴 어느 평론가의 말이 내게 작은 위안으로 남는다.

˝막내라서가 아니라 아들이라서겠지!˝


하지만 김지영 씨는 그날 아버지에게 무척 많이 혼났다. 왜 그렇게 멀리 학원을 다니느냐, 왜 아무하고나 말을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는 그렇게 짧냐……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게 꽃이니 홍일점이나 하면서 떠받드는 듯 말하곤 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고 여학생에게는 짐도 글지 못하게 했고, 점심 메뉴도, 뒷풀이 장소도 여학생들이 편한 곳으로 정하라고 했고, 엠티를 가면 단 한 명 뿐이라도 여학생에게 더 크고 좋은 방을 배덩했다. 그래 놓고는 역시 무건하고, 힘 자루쓰고, 같이 쳔하게 뒹굴 수 있는 남자들 덕분에 동아리가 잘 굴러간다고 자기들끼리 으쌰으쌰했다. 회장도, 부회장도, 총무도 다 남자들이 했고, 여대와 도인트 행사를 열기도 했고, 알고 보니 남자들만의 졸업생 모임도 따로 있었다.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김지영 씨의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동안 센입 사원을 받을 때마다 느낀 건데, 여자 막내들는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귀찮고 자잘한 일들을 다 하더라고. 남자들은 안 그래요. 아무리 막내고 신입 사원이라도 시키지 않는 한 항 생각도 안 해. 근데 왜 여자들은 알아서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홧김에 김지영는 늦게 출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똑같이 출근하고 똑같이 일할 거라고. 1분도 날로 먹을 생각 없다고. 그리고 미어터지는 지옥철을 견디기 힘들어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며 내내 섣불리 뱉어 버린 말을 후회했다. 어쩌면 자신이 여자 후배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어떤 분야든 기술은 발전하고 필요로 하는 물리적 노동력은 줄어들게 마련인데 듀독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라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아내는 여전히 초등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고,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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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이야기 세트 - 전2권 - 그 여름날의 기억 + 끝나지 않은 전쟁 평화 발자국
박건웅 만화, 정은용.정구도 원작 / 보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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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전쟁의 참혹함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불과 70여 년 전 이땅 위에서 벌어졌던 6.25전쟁도 내겐 단어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았다. 노근리 이야기가 눈에 띈 것은 단순히 두께 때문이었다. 꽤나 두툼했지만 만화여서 쉽게 읽히겠거니 하고 집어들었다. 물론 노근리가 어디인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날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날이었단다. 북한군이 쳐들어왔지만 국군이 잘 싸우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은 동요하지 말고 본업을 지키라는 라디오 방송은 계속 흘러나오고 정부는 전쟁이 일어난 지 겨우 3일째 되던 날 한강 다리를 끊고 남으로 도망을 갔단다. 그렇게 피난 행렬이 시작되고, 멋모르는 시골마을 사람들까지도 떠밀려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에 피난민 대열에 합류했는데, 그때 우리를 도우러 온 미군은 삼삼오오 모여 카드를 치고 상엿집에서 상여를 들춰메고 나와 키득거리는,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려지는 행동을 하더란다. 그런 그들이 어느날 피난 갈 것을 종용하여 걷고 또 걸었는데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더란다. 쌍굴 안으로 밀어넣어 놓고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소리가 날 때마다 총을 쏘아대더란다. 굴 속에 쥐죽은 듯 있다가도 총에 맞아 죽고, 도망나갔다가 총알을 맞고, 더러는 다른 이들의 안전을 위해 죽음이 자행되는 그 속에서 생존자들은 시체로 몸을 덮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물을 마시며 그렇게 겨우 살아남았단다.

그들이 겪은 아비규환을, 살아남은 뒤의 생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만은 전쟁이 이다지도 잔인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노근리 사건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빌려왔기 때문에 좀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전쟁이란 누구나 죽고, 죽일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지만 미군은 왜 피난민들을 죽여야 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2권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백인우월주의. 멀리,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르는 작은 나라를 도우러 오긴 했지만 그들 중 일부 - 어쩌면 다수는 도와야 할 대상이 자신들과 동등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동양인을 가리키는 속어가 대한민국의 '국'에서 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물리적 전쟁은 이미 오래 전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2권의 제목이 '끝나지 않은 전쟁'인 것은 나를 슬프게 했다. 그렇지만 미국이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가 덮고 감추려고 안간힘을 써도 끝까지 대항하여 진실을 밝혀낸 정은용, 정구도 부자가 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들 부자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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