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다. 그녀가 만든 서사가 가지는 흡인력을 사랑했다. 내게, 읽고 싶어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았으므로.

벌써 몇 해가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살인마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반감시켰다. 시작부터 뚜렷하게 예측할 수 있었으므로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뒤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붙긴 했지만.

나르시시스트와 그의 행복 그리고 살인, 더하여 이 소설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것일까. ‘너는 특별한 존재‘라는 주문은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돕는 주문이자 개인을 거대한 전체를 구성하는 작디 작은 하나의 부품쯤으로 치부하는 세상에 대한 외침이다. 자존감과 행복에 대한 욕구가 지나친 자기애로 이어져 위험한 나르시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을 염려할 만한 수준인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달라진 게 가장 문제적이다. 소설 속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일이 끔찍하고 뒤에 남는 여운이 길어 마음까지 함께 늪 아래로 가라앉는 것만 같은 이 느낌이 달갑지 않다. 예전엔 어떤 이들이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어쩌면 이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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