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초저녁, 퇴근하고 돌아오니 집안이 깜깜하다. 가방만 내려두고 소파에 앉았다. 마음이 한없이 지쳐 금방이라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몸을 일으켜 세운 건 뱃속에서 보내는 신호 때문이었다. 밥 그릇 하나와 국 그릇 하나를 두고 조촐한 저녁을 먹고 나니 더는 앉아 있을 재간이 없었다. 누워서도 뭔가를 해보겠다고 동영상 강의를 틀어놓은 채 잠이 들었다.
깨보니 이미 12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그제서야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씻고 나니 정신이 말똥했다. 책을 펼쳤다. 비주류로 적당히 요령껏 살아가는 김지혜의 이야기였다. 그녀의 방식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나는 한 편으로 그런 방식이 자신을 보호하는 데는 훨씬 합리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존재하지도 않는 친구,와의 약속을 만들어 홀로 놀이터에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처량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강렬한 첫 인상을 남겼던 남자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 마냥 싹싹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묘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규옥을 따라 얼떨결에 우쿠렐레 강좌를 듣게 된 지혜는 그 곳에서 남은과 무인을 만난다. 그리고 넷은 부조리한 세상에 작지만 통쾌한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이들의 행동은 이 사회의 약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는지 모른다. 한 편으로는 미친 짓쯤으로 보이는 그들의 행동에는 제법 큰 용기가 필요하니 말이다. -암만 생각해봐도 나는 그럴 용기가 없다.
쑥쑥 잘 읽힌다. 그렇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다. 손원평 작가의 책과는 첫만남인데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다.
이맛에 소설을 읽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한 세상은 점점 나빠질 걸요? 억울함에 대해 뒷얘기만 하지 말고 뭐라도 해야죠. 내가 말하는 전복은 그런 겁니다. 내가 세상 전체는 못 바꾸더라도, 작은 부당함 하나에 일침을 놓을 수는 있다고 믿는 것. 그런 가치의 전복이요."
"적어도 내 몫을 위해서만 싸우지는 않겠다고 자꾸자꾸 다짐하는 노력이요. 마음에 기름이 끼면 끝이니까. 정답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요. 더 나은 어떤 것을 향해 차츰 다가가고 있기를 바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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