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 이 책을 주문했다. 정유정이라는 대단한 스토리메이커가 써낸 에세이는 어떨까 궁금했다. 인간 정유정이 알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실은 그보다 더 강력한 인력引力이 존재했다. 바로 히말라야라는 네 글자였다. 책 속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네팔병`이었다. 준비 과정부터 그녀는 나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체력을 다지기 위해 등산, 걷기 연습을 참 열심히도 했다.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를테지만, 철두철미한 성격을 가진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엉뚱하게도 솔직해서 웃긴 구석이 있다. 화장실 얘기가 그랬다. 저쪽 동네는 누구에게나 둘 중 하나인가 보다 싶었다. 부족하거나 혹은 넘치거나. 소소한 재미가 있어 읽기는 수월했지만 이런 걸 왜 책으로? 하는 생각이 따라 들었다. 그러나 일기장에나 적혀있어야 할 법한 내용들로 계속되던 책은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서 조금씩 깊어졌다. 마살라에서 삶의 이야기로 옮아갔다. 내팽겨쳐지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온 정유정 작가의 첫 여행으로 안나푸르나 종주는 가장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풍요의 여신은 그런 그녀를 포근히 감싸주었다. 역시나 여행이 사람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고작 한 달여의 방랑이 인간성을 뒤집어 놓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일상에서 떠나 잠깐 마음의 여유를 얻어 한동안 다시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었다면 그걸로 족하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에 대한 대단한 정보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정유정 작가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읽어보시라. 까딱하다간 책장이 각자 자유를 좇아 달아날 수 있으므로 주의하면서. ㅡ 이 따위로 풀칠할거면 풀값 천원 돌려달라 출판사에 전화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또 한 권의 책이 나오고 대히트를 치기까지 했으니 작가는 이제 곧 에베레스트로 떠날까. 다울라기리는 언제쯤 갈까 벌써부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