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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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떼고 나온 여자는 갈 곳이 없다. 가난한 도시노동자인 그녀는 방 보증금을 받아 방금 막 산부인과 문을 나선 까닭이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죄의식까지 밀려온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만 그럴 사람도 없다. 유일하게 떠올린 동숙이는 벌써 몇 달 전 다른 곳으로 떠났다고 했다.
실체도 없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달아나다 옷자락을 붙잡혔다. 다리를 대신할 목발을 놓친 남자는 맥없이 쓰러졌다. 갑자기 무슨 힘이 솟아났는지 그녀는 쓰러진 외발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남자는 있지도 않은 다리에 가려움증을 느끼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산에게도 어서 새살이 돋기를 바란다.


"하필 여기가 가려울까? 환장하겠네"
아저씨, 아저씨, 혹시 거기서 새살 돋아나오려는 거 아녜요? 봄 되니까 베어낸 그루터기에서 싹 트려고 가려울 거예요, 아저씨. 너는 굴다리 밖으로 나오면서 올봄에는 저 아저씨에게 미끈한 종아리가 진짜로 돋아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참, 나도 약방에 들러야겠다. 그 의사가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면 테라마이신을 사 먹으라고 했다. 어서 빨리 새살이 돋아나야지.
너는 약방 앞 쓰레기통 속에다 손수건에 싼 금붕어를 미련 없이 집어넣어버린다.

- 꽃샘바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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