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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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평화인권교육 연수에 다녀온 이후 사두고 가끔 단편 하나씩 읽고 있다. 그들이 느꼈을 고통을 감히 헤아리진 못하고 다만 상상을 뛰어넘는 이야기에 놀랍고 가슴이 먹먹하다.

치워야 할 시체더미 아래서 남편의 얼굴을 발견했을 때 할 수 있었던 최선이 까마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머릿수건을 풀어 얼굴을 싸맨 후 시신을 담 밖으로 던지는 것일 때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때로는 진실이 상상보다 훨씬 참혹하다.

밭일만 하는 중산간 부락으로 시집올 때 그만두었던 잠녀 물질을 다시 시작하여, 청춘과수의 더운 몸을 바다 물결에 식히고, 죽을 목숨을 삼십년 더 버텨온 당신을 누구라 더럽다 할 것이냐!

피해자일 뿐인 어머니에 대한 이 가당찮은 반감은, 실은 마땅히 가해자한테로 향해야 할 분노가 차단된 데서 생긴 엉뚱한 부작용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응당 가해자의 멱살을 붙잡고 떳떳이 분노를 터뜨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 p.162 해룡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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