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진의 소설 속 세상은 "어차피"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실패할 텐데, 어차피 돌아오지 않을 텐데, 어차피 사라질 텐데, 그리고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이 암울한 가정은 때로 개인을 향하고 때로는 세계를 향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끝을 생각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다음'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지에 대해 조망하는 소설이라는 느낌이다. 던져진 가정은 부정적일지라도, 작가는 그렇지 않다. 결국 사라지고 실패하고 멸망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과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희망차게 이야기한다. 내가 이 소설을 읽어 보고 싶던 가장 큰 이유는 표제작인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라는 작품을 다른 시리즈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곧 종말이 다가온 세상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하며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을 부끄럽고 한심하게 여기지 않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으며 현 시대에 가장 필요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차피 멸망할 것이라도 이 소설과 같은 문학이 여전히 존재해야 하고 내가 그것을 찾아 읽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각자의 세상에서 각자의 '어차피'를 안고 살아가는 책 속 주인공들처럼 내가 걸어온 시간을 돌아보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