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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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의 소설은 어렵고 또 친절하다.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 독자들에게 그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만, 사실 전반이 없이 새로운 개념을 맞닥뜨리게 된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가 제시하는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배명훈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낯섦과 모름까지 그의 문장을 쫓다 보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친절한 문장을 건넨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이 소설 <청혼>도 처음에는 우주를 건너는 단순한 로맨스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니다...... 가장 메인 주제는 우주 전쟁이었다. 우주를 떠도는 나와 여전히 지구에 있는 네가 서로 사랑하고 있음에도 17분 44초가 지나서야 답을 들을 수 있는 갑갑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유. 그게 바로 우주 전쟁이기 때문에. 그래서 두 사람의 서사나 사랑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주 전쟁의 양상이나 함선의 기능 등 그쪽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결국 내가 너를 사랑해서, 너에게 바로 달려갈 수 없는 이유를 최대한 구체적이고 주관적이게 나의 시선으로 설명하는 '편지'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독자인 내가 소설 속 주인공에게 편지를 받는 것처럼. 나를 끊임없이 설득시키고 또 이해시킨다. 우리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내가 비록 이런 상황에 있어도.

우주의 간극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인간이 용을 써도 내가 죽기 전까지 우주의 단 5 퍼센트라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 무수한 장벽과 공간을 넘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힘. 그 사랑은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고 또 나눌 수 있는 힘이니까. 언젠가 내가 우주를 떠돌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이가 우주를 떠돌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그래도 여전히 사랑할 것이다. 늘 그랬듯이, '청혼'을 건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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