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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일주일
조너선 트로퍼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이런 책은 처음 봤다. 책장이 정신없이 휙휙 넘어갈 만큼 읽기 쉬우면서도, 내용은 매우 불편하다. 결말이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빨리 읽으려고 서두르게 되지도 않는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유언이 함께 있고싶지 않은 가족들과 일주일간 집에 쳐박혀있어야 하는 것이며, 아내는 상사와 바람이 났다는, 그야말로 최악중에서도 최악인데도 웃다가도 갑자기 눈물흘릴만큼 예고없이 슬프다. 과연 이 책을 정의내릴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책을 덮은 후에 이 책의 소개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니, 모든 표현들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폭소를 터뜨리면서 읽다가도 알싸한 슬픔과 함께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보석 같은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에 익숙하거나 잘 알지도 못 할 뿐더러, 유대인들의 문화 또한 전혀 알지 못하는 내게, 어떻게 주인공 가족들이 이렇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묘사가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실감난다. 물론 콩가루집안에 하나같이 제멋대로인 이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주인공 저드는 한꺼번에 아버지와 아내와 상사와 직장과 집을 모두 잃었다. 그런데 바람난 아내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며 찾아왔다. 자기 자신이 실제보다 더 못난 놈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 힐러리는 자녀 양육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모두 그런 어머니의 덕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자랐으며, 이웃집 린다 아줌마와 연인사이다. 한마디로 양성애자인것이다. 큰형 폴은 이런 집안에서 유일하게 기대를 받고 자란 야구 유망주였지만, 대학 입학 직전에 저드를 때린 친구를 흠씬 두들겨패주러 갔다가 그 집 사냥개에게 어깨를 물려 여러번의 수술을 거치고 인생이 바뀌었다. 그리고 저드를 원망하게 된다. 그의 아내 앨리스는 저드의 첫 잠자리 상대였다. 저드의 첫 여자친구에서 형수가 된 앨리스는 불임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누나 웬디는 학창시절부터 화려한 남성편력을 자랑했고, 이웃 린다 아줌마의 아들인 호리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가 불의의 사고로 뇌에 문제가 생기면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웬디를 때리게 된 후에 그를 떠나 현재의 일벌레(지만 부자인) 남편을 만나 아이를 셋 두었다. 늦둥이 동생 필립은 제멋대로에 여성편력도 심하지만 항상 유쾌하고 때때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주는 의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사연 많고 복잡한 이들이 아버지의 추모 행사 때문에 일주일간 한 집에 갇혀 있는 것이다. 한 식탁에 둘러앉을때면 언제나 싸움이 나지만, 이들만큼 서로를 잘 아는 가족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이들이 이렇게 다투기만 하는 건, 서로를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저드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읽으면서 저드가 아내 젠에게 돌아갈지, 아니면 학창시절 좋아했던 페리에게 돌아갈지 궁금했는데, 그 둘 모두에게 갈 수 있는 갈림길에서, 저드는 그 둘 모두에게로 가지 않았다. 저드는 그 모든걸 이 소설이 끝나기 전에 결정할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도 그의 인생은 펼쳐져있고, 가능성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가족간의 사랑과 인생의 가능성. 표현이 진부하지만 언제나 옳을수밖에 없는 이 것이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아니었을까. 이 진부하고 뻔한 주제를 이렇게 재미있게, 독자들을 주물러 울리고 웃기며 표현해내 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번역에도 민감한 편인데, 거슬리는 부분 없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옮긴이의 탁월한 단어 선택과 문장력 덕분이었으리라.

끝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을 덧붙여본다.

"문제는 풀 수 있는 게 문제지." 필립이 말했다. "해답이 없다면 그건 문제가 아니야. 그러니까 이걸 문제로 보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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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들여다보다 - 동아시아 2500년, 매혹적인 꽃 탐방
기태완 지음 / 푸른지식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관심이 갔던 건, 꽃을 좋아하는 엄마 덕분이었다. 함께 길을 걷다가도 눈에 보이는 모든 꽃과 나무들을 하나하나 만져보며 이건 무슨 나무인데 잎이 어떻고, 이건 무슨 꽃인데 꽃잎이 어떻고 하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도통 그 꽃이 그 꽃이고 그 나무가 그 나무로 보일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기한 건 멀리서도 소나무와 잣나무를 구별하는 능력이었는데, 이 책에 소개된대로 소나무는 잎이 3개, 잣나무는 5개씩 붙어있다니, 이제부턴 나도 가까이에서는 두 나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이름도 모르는 꽃들을 좋아했고, 그렇게 조금씩 이름을 익혀나갔던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엄마에 비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 수준이지만 말이다.

이 책은 동아시아, 그러니까 고대 한반도와 중국, 일본의 국가들에서 지어진 시 속에 담겨진 꽃들에 해석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한자어나 현재는 쓰이지 않는 말들이 많아 해석을 읽어도 내용이 도통 이해되지 않는 시가 많았지만, 저자의 해설을 읽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려운 한자어나 다른 시에서 차용해온 시구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꽃과 나무들 중에 인상깊었던 것들을 꼽아보자면,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목련은 일본에서 온 품종이 대부분이라는 것. 흔하게 보아온 이 나무가 우리나라 품종이 아니었다니. 또한 열매가 너무 친숙해서, 그 열매를 맺기 전에는 반드시 꽃이 피었을 거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배꽃, 석류, 귤, 심지어는 꽃이 있는줄조차 몰랐던 차나무. 그러나 역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벚꽃과 무궁화였다. 벚꽃놀이 문화 자체가 일본에서 일제시대때 건너온것이며, 가장 유명한 벚꽃놀이 장소인 여의도에 심겨진 벚꽃들이, 과거 일제가 한 나라의 궁궐을 한낱 놀이장소로 격하시켜 일반인들에게 유희장소로 공개했던 창경궁에 심겨있던 벚꽃들을 옮겨 심었다는 것, 또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념하는 진해의 군항제는 전국 최대의 벚꽃 축제로 전락해버렸다는 것. 입이 떡 벌어지는 놀라운 사실들 뿐이다. 또한 무궁화에 대해서는,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사랑받는 무궁화를 각종 돌림병의 근원이라는 괴이한 소문을 퍼뜨려 뿌리뽑고자 했다는 것, 우리 나라에는 무궁화의 자생지가 없다는 것, 그래서 나라꽃으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다는 것 등이 인상깊었다. 그러나 저자의 의견처럼 나 또한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의 정서에 뿌리깊히 박혀 있었고, 나라꽃으로써 강제적으로 지정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주위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무심했는지 깨달았다. 이름도 낯설고 그 꽃이나 나무에 대해 읽기 시작해도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모르겠다가도, 다음 페이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서야 '아! 이거!' 하면서 놀라기를 반복했다. 원추리나 배롱나무는 정말이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생김새는 놀랄만큼 친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 봤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는것을 보면, 특별한 곳이 아닌 내 생활반경 안에서 보았을텐데, 그것들의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음에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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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의 세계사 - 수렵채집부터 GMO까지, 문명을 읽는 새로운 코드
톰 스탠디지 지음, 박중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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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띠지에 쓰여진 두 문장만으로도 상당한 호기심을 자아냈다. 농업이 인류 최악의 실수라니, 최초의 식량이 유전자조작식품이라니?!

워낙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인지라 이 책처럼 세계사를 한권에 담은 책도 몇 권 읽어보았는데, 이렇게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세계사를 풀어낼 생각을 한 작가에게 감탄했다. 그리고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독특한 소재라니?! 너무나 가까워서 오히려 잊고 있었을 뿐, 식량이 없이는 사람은 단 하루도(특히 나같은 사람들은) 살 수 없는데 말이다.

먼저 이 책 전반에 걸쳐 등장했던 인류의 역사를 바꾼 주요한 식량으로는 옥수수, 밀, 쌀, 감자, 통조림 캔 등이 있었다. 옥수수도 밀도 쌀도 감자도, 그리고 우리가 알고있는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농작물들이 유전자 변형을 거쳐 나타났기 때문에 야생에서 자생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 크게 놀랐다. 역시 저자가 거듭 강조했듯, 인간이 재배하고 수확하기에 유리한 모습으로 변해가는만큼,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남을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또 놀랐던 것은,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고, 부유한 나라에서 먼저 산업화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농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농업 기술이 좋아지고 그에따라 생산량이 증대될수록 잉여 식량이 생기고, 이것은 바로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도 굶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른 전문직, 그러니까 오늘날의 판사나 검사,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될 만큼 적은 비율의 농업 종사자들이 많은 양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읽으면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데, 지금껏 생각해본적이 없어 몰랐던 사실들이었다.

그밖에도 통조림 캔이 전쟁에서 군사 보급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발명되었다는 사실이나, 오늘날의 화학비료에 필요한 암모니아를 처음 합성해낸 하버는 농업 수준의 향상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동시에 수소를 이용한 무기 개발에도 기여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웠다.

저자도 본문에서 거듭 강조했지만, 어째서 그동안은 역사를 이념과 사상과 사건들로만 풀었을까 싶을 정도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너무나 필요한 것이 바로 식량이었다. 나처럼 역사에 깊이 관심이 있고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의 역사를 다룬 책은 지루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울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아주 쉽고 재미있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측면에서 세계사를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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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랑 이야기
마르탱 파주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제목과 표지 일러스트를 보고 가벼운 느낌의 연애 소설이겠지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주인공 '비르질'은 한마디로 이상한 녀석이었고, 비르질이 겪는 사건 또한 이상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일들이었다.

 

어느 날 일상적인 외출 후 집에 돌아온 비르질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클라라로부터의 헤어지자는 메시지가 담긴 자동응답기. 문제는, 비르질은 클라라라는 여자와 사귄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르질의 짧은 모험이 시작된다. 친구들을 만나(대부분이 예전에 비르질이 짝사랑하다 싱겁게 포기했던 여자친구들) 다친적도 없는 마음에 위로를 받으며 실연당한 남자 연기를 하던 것에도 질린 비르질은 마침내 클라라를 찾아 나설 결심을 하게 되고, 여러 다리를 건너 마침내 그녀의 오빠 집에까지 방문하게 되지만, 잠시 후면 클라라가 오빠를 방문할거란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이렇게 스토리만 요약해놓고 보니 책을 읽은 내가 봐도 헛웃음이 나오는 어이없는 줄거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비르질의 감정의 변화들을 따라가며 읽다보면 어느새 그와 동화되어, 도대체 클라라라는 여자는 어떤 사람이고, 도대체 왜! 그런 깜찍한 장난을 쳤는지가 궁금해진다. 이 책은 불친절한 결말을 취하고 있다. 클라라가 어떤 여자인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도 밝혀주지 않는다. 심지어 비르질과 클라라가 만나지도 않는다. 비르질이 클라라의 실체에 코앞까지 접근한 순간, 그녀에 대해 알기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비르질은 미지의 여인 클라라와 만났던 순간의 다른 모든것을 기억한다. 그 파티에 참석했던 이름모를 사람들의 얼굴들까지도. 그런데 정작 중요한 클라라와 만났던 순간부터의 기억이 없는 것이다. 클라라의 머리색도, 눈동자색도, 그저 환한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비르질은 클라라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사랑할 수는 있었다. 그동안 그가 만났던 여자친구들이나, 짝사랑했다가 금새 포기했던 친구들과는 다른, 정말로 사랑할 수 있는 여자였던것이다. 그렇지만 비르질은 클라라를 잃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가진적이 없다면 잃을 수도 없는 것이므로. 비르질은 비겁한것일까, 현명한것일까? 잃기 싫어 가지지 않겠다는, 말도 안 된다 싶으면서도 이해는 되는 묘한 선택이다.

 

클라라가 어떤 여자이든간에, 성매매 알선 혐의로 경찰서도 가고, 회사에서 억지로 승진을 시키려는 바람에 노동자 조합을 찾아가 항의도 하고, 전기가 끊긴(엄밀히 말하자면 '전기를 끊은') 아파트에서 전등이 달린 탐험용 헬멧을 쓰고 생활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녀를 쫓은 2주간의 시간동안 비르질은 살아있음을 느꼈다. 비르질을 따라 클라라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내가 이런 불친절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책을 덮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온전히 비르질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폐소공포증도 없고 강박증도 없는, 비르질이 생각하는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지만, '비정상적인' 비르질을 통해 보통의 인간들이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인생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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