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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의 세계사 - 수렵채집부터 GMO까지, 문명을 읽는 새로운 코드
톰 스탠디지 지음, 박중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띠지에 쓰여진 두 문장만으로도 상당한 호기심을 자아냈다. 농업이 인류 최악의 실수라니, 최초의 식량이 유전자조작식품이라니?!
워낙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인지라 이 책처럼 세계사를 한권에 담은 책도 몇 권 읽어보았는데, 이렇게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세계사를 풀어낼 생각을 한 작가에게 감탄했다. 그리고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독특한 소재라니?! 너무나 가까워서 오히려 잊고 있었을 뿐, 식량이 없이는 사람은 단 하루도(특히 나같은 사람들은) 살 수 없는데 말이다.
먼저 이 책 전반에 걸쳐 등장했던 인류의 역사를 바꾼 주요한 식량으로는 옥수수, 밀, 쌀, 감자, 통조림 캔 등이 있었다. 옥수수도 밀도 쌀도 감자도, 그리고 우리가 알고있는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농작물들이 유전자 변형을 거쳐 나타났기 때문에 야생에서 자생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 크게 놀랐다. 역시 저자가 거듭 강조했듯, 인간이 재배하고 수확하기에 유리한 모습으로 변해가는만큼,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남을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또 놀랐던 것은,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고, 부유한 나라에서 먼저 산업화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농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농업 기술이 좋아지고 그에따라 생산량이 증대될수록 잉여 식량이 생기고, 이것은 바로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도 굶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른 전문직, 그러니까 오늘날의 판사나 검사,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될 만큼 적은 비율의 농업 종사자들이 많은 양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읽으면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데, 지금껏 생각해본적이 없어 몰랐던 사실들이었다.
그밖에도 통조림 캔이 전쟁에서 군사 보급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발명되었다는 사실이나, 오늘날의 화학비료에 필요한 암모니아를 처음 합성해낸 하버는 농업 수준의 향상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동시에 수소를 이용한 무기 개발에도 기여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웠다.
저자도 본문에서 거듭 강조했지만, 어째서 그동안은 역사를 이념과 사상과 사건들로만 풀었을까 싶을 정도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너무나 필요한 것이 바로 식량이었다. 나처럼 역사에 깊이 관심이 있고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의 역사를 다룬 책은 지루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울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아주 쉽고 재미있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측면에서 세계사를 바라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