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사의 부름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12월
평점 :
책을 고르는 데에는 여러가지 기준이 있다. 베스트셀러라서, 제목이나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지인에게 추천받아서, 평점이 높아서, 작가의 전작을 재미있게 읽어서 등등. 비단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작가가 누구인가일 것이다. 어느 작가의 소설을 처음 접했는데 별로였다면, 아마 평생 그 작가의 소설을 다시는 읽으려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곤 한다. 반면에,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나는 종종, 그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좋아하는 작가'라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경우가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외수, 그리고 이 책의 작가 기욤 뮈소가 그랬다. 인간의 감정은 아주 미묘한 것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인해 이들 작가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좋아해버리게 된 것인지는 나도 알 길이 없다. 기욤 뮈소라는 이름은 언제 어느 서점을 가더라도 베스트셀러 코너에 그의 책이 빠지지 않고 들어 있어서 금새 익숙해졌다. 신작이 나와 책은 계속 바뀌는데도, 나오는 족족 베스트셀러 코너를 차지하는 그의 소설이 궁금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손을 뻗은 것은 현재까지 그의 최신작인 '천사의 부름'이었다. 표지 때문에 달달하고 가벼운 사랑 이야기로 착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스릴러, 추리, 미스터리, 러브 스토리가 모두 결합된, 그러나 결코 과하거나 잡다하지 않게 잘 버무려진 맛있는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뉴욕 JFK 공항에서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에 살고있는 셰프 조나단과, 영국 출신으로 프랑스에 살고있는 전직 형사 플로리스트 매들린의 휴대폰이 바뀌면서 시작된다. (이야기의 끝에 덧붙여진 작가의 말에서 과거에 공항에서 휴대폰이 어떤 여성과 뒤바뀌었던 경험에서 이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세계 최고의 셰프였던 조나단은 아내의 불륜으로 한순간에 가정과 명성을 잃고 뉴욕의 작은 레스토랑 주방장으로 전락했고, 전직 형사였던 매들린은 자신의 어린시절과 닮은 한 소녀의 실종사건이 소녀의 사망으로 종결되자 은퇴하고 파리로 건너와 꽃집을 차린다. 얼핏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는 이 둘은 과거의 끔찍한 상처로 인해 자살을 기도했다는 점과 3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 상처가 모두 아물지 못했다는 점이 같았다. 그러나 매들린이 지켜내지 못해 절망했던 소녀 앨리스는, 그녀의 사망이 발표된 후 6개월 뒤에 조나단과 우연히 만나 그의 자살을 막은 적이 있었고,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범인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지는 후반부는 숨 쉴 틈 없이 내달리듯 읽혔다. 그러나 마무리는 기분 좋게 책을 덮을 수 있게 알콩달콩하게 끝을 맺는다. 결국 '천사의 부름'이란 조나단과 매들린같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조나단을 위해 큰 결심을 한 전 부인 프란체스카와 조르주, 매들린이 영국에 친구 만나러 간 줄 알고 있던 약혼자 라파엘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걸까? 이 책에서 불행해진 것은 이들 셋 뿐인 듯 하다.
어쨌거나 이 책은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암시와 사건들의 연속으로 지루할 틈이 없고, 특히 후반부는 숨가쁘게 읽을 수 있는 흡인력 강한 소설이었다. 이제 확실하게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 할 수 있게 된 기욤 뮈소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옮긴이의 말대로 천사의 부름 속편도 대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