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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의 산책
안리타 지음 / 홀로씨의테이블 / 2025년 4월
평점 :
#도서제공
🚶♀️나는 걷는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기분으로.
🔖여전히 이곳엔 뻗어나가는 데 온 힘을 쓰느라 웅크리지 못한 자연과, 웅크리는 데 온 힘을 쓰느라 뻗어나가지 못하는 인간이 대치하고 있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우리를 이룬다고 믿는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유순하고, 맑고, 청아한 것만 눈속에 담고 싶다. 푸르름과 생기 같은 것, 무르고 동그란 것들, 무해하고 무구한 것들, 물방울, 물망초, 열매, 도토리, 이런 귀여운 단어만 사는 세계.
🔖산책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마음 쓰는 방식이고,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저편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바람과 뒤섞인다. 그 순간, 나는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창조적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개체로서의 삶. 오늘의 태양을 맞이하며 황홀하다고 느낄 수 있는 심장을 지녔다는 것.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는 사실은 살아감에 있어 부족함 없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
보통 위로라는 단어를 수식할 땐 ‘따뜻한‘이라는 표현이 붙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받은 위로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위로였다.
호들갑스럽지 않으면서 산책을 하며 만나는 자연의 모든 것에 세밀하게 귀기울이는 작가의 태도가 어딘가 위안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성찰하라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자아와 감정을 버리고 비워내라 한다.
그 방법이 바로 산책이다.
나에게 있어 산책이란 연중행사꼴로 잠깐 한반도를 거쳐가는 좋은 날씨를 피부로 누리기 위한 호사, 특별 행사에 가까웠다.
그것도 굳이 귀에 이어폰을 꽂거나, 무의식적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눈앞의 풍경과 자연의 소리가 아닌 나와 내 세상에 둘러싸인 채였다.
이 책을 읽고서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아니 한 세계를 통째로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서울의 복잡한 도심 한복판에 살다가 아이를 키우며 지천이 공원이고 얕은 산이고 심지어 해변 산책로까지 있는 곳으로 옮겨온 지 3년이 되어가면서도, 지천에 깔려있는 수많은 가능성들을 놓친 채 살아왔다.
당장 문 밖을 나서 내가 나인 것을 잊을 때까지 걷고싶은 심정이었지만 다리에 찬 깁스가 아쉬울 따름이다.
다리가 다 나을 때까지 더 바라고 기대하면서 다음 산책을 기다려야겠다.
익숙한 장소에서 매일 새롭게 펼쳐질 새로운 세상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