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그림책은 내 친구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논장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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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의 작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괄량이 삐삐(내 어린시절엔 제목이 이랬는데 지금은 '삐삐 롱스타킹')의 저자이다.
최근  말괄량이 삐삐를 다시 읽어 보았는데 어른이 되어 읽어도 무척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 작가가 그림책도 썼는 줄은 몰랐다. 작가소개를 보니 동화책, 그림책, 희곡 등 100권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다고 한다.  여섯 살 아들과 함께 읽었는데 아들이 어찌나 재미있어 하던지 이 작가의 다른 그림책도 함께 읽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로​타는 다섯 살 여자아이다. 위로 언니와 오빠가 있는데 그 둘은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린다. 로타도 두발 자전거, 진짜 자전거를 타고 싶지만 세 발 자전거 뿐이다. 로타는 자기 생일 날 진짜 자전거를 받길 기대했지만 자전거는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아직 로타에게 세발 자전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늘 그렇다. 아이는 이미 나보다 100미터 쯤 앞에 가 있는데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여전히 뒤에서 따라오는 줄 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훌쩍 큰 아들을 보고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내가 먼저 아이의 성장에 선을 긋지 말고 앞서가는 아이의 뒤를 잘 지켜봐 줘야 겠다.
 언니 오빠처럼 진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로타는 아주 위험한 계획을 세운다. 베리 아줌마네 창고에 있는 낡은 자전거를 훔칠 계획 말이다.
 로타는 세 발 자전거를 냅다 걷어차면서 말한다.
 "난 너 따위로 충분하지 않아. 그건 아빠 생각일 뿐이라고."
 "그리고 나, 어디서 훔치면 되는지도 잘 알아."
 "나, 그걸 훔쳐 올 생각이야. 그러니까 너도 같이 가."
이 부분을 읽어 줄 때 내 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의 물건을 훔친다니, 도둑질을 한다니 놀랄 수 밖에. 게다가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말이다.
 로타는 베리 아줌마가 잠들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데 그 전에 베리 아줌마에게 예쁜 팔찌를 선물 받는다. 이렇게 착한 아줌마의 자전거를 훔치다니 조금은 양심에 찔린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로타는 결국 자전거를 몰래 훔치는데 성공한다.
아들이 갑자기 로타편을 들면서 말했다.
 "이거 훔치는거, 두 발 자전거도 탈 수 있다는거 보여 줄려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아이들은 책을 읽으며 주인공과 자기를 동일시한다. 특히 공감이 많이 가게끔 잘 쓴 작품들을 읽어 줄 때면 더욱 그렇다.
내 아들은 이미 로타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건 나쁜 거야. 너 절대로 이러면 안 된다.'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흠.. 그래?"
 "응!"
로타는 훔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아주 쌩쌩. 점점 쌩쌩. 너무 쌩쌩. 로타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 오다가 그만 장미 덤불속에 떨어지고 만다. 로타는 통곡 하고 운다. 이마의 혹 때문에, 베리 아줌마의 자전거를 훔친 것 때문에, 무릎에 피 때문에...
나중에는 팔찌까지 없어진 걸 알았다. 미안하게도 베리 아줌마는 상처도 치료해 주고, 팔찌도 로타와 함께 열심히 찾아 본다.
내 아들은 책장을 다시 뒤로 넘겨 보더니 말했다.
 "저기 장미 덤불에 떨어뜨렸구만. 이쪽 그림에는 있는데, 이쪽 그림에는 없잖아."
로타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엉엉 울고 꽥꽥 소리친다. 오빠와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런 로타와 마추친다.
로타가 있었던 일을 언니 오빠에게 털어 놓자 언니 오빠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팔찌를 잃어 버린 건 벌을 받아서야."
 "아줌마는 팔찌도 선물하고 엄청 잘해 주는데, 넌 자전거를 훔쳤어. 벌 받는 게 당연해."
역시 아이들은 솔직하다.
그런데 내 아들의 표정이 심각하다. 입이 반 이상은 나와 있다. 곧 울것만 같다. 로타의 오빠와 언니가 좀 전에 로타가 자전거를 훔치는 것을 정당화 시킨 자신에게 호되게 말한 것처럼.
 
 시무룩해진 로타는 대문 기둥 위에 올라가 아빠를 기다린다. 오빠가 자전거를 양 손을 떼고 타고 있다.
"엄마가 말했잖아. 저렇게 타면 안 된다고! 저러면 안 돼!"
그 때 길 저쪽에 아빠가 보인다. 그런데 아빠가 뭘 끌고 오고 있다. 로타에게 딱 맞는 작은 자전거를! 진짜 자전거를!
 오빠가 로타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 주려고 뒤에서 잡아 준다. 하지만 로타는 이미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내 아들의 말이 맞았다.
로타는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거다. 그렇게 혼자서 진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로타 앞에 베리 아줌마가 나타난다.
​ "이것 보렴. 장미 덤불에 걸려 있더구나!"
 "내 말이 맞죠? 장미 덤불에 떨어뜨렸다니까."
아들은 자신이 맞췄다는 것에 굉장한 만족감을 느꼈다. 또 늘 어리다고만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도 이제 할 수 있어, 나도 이제 이 만큼 컸다고' 하며 대변해주는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를 보고 말했다.
 "이거 진짜 재미있다!"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진정 아이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기가 끝나가는 아이들에게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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