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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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허지웅이란 사람을 봤다. 훤칠한 키에 눈이 매서워 보였다. 자동차 청소 도구들, 세정제들을 종류별로 가지고 있고, 그것들로 세차하는 데만 몇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었다. 그때 아, 저 사람 보통 까탈스러운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더랬다. 어느 날 그가 혈액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완치 되었다고 한다. 천만 다행이다. 사람이 생사를 오가는 사투를 벌인 뒤 쓴 글은 아무래도 그 깊이가 남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고 싶어졌다. 감사하게도 책 출간 전 가제본으로 읽을 수 있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은 그가 들어가는 글에서 말했듯 전부 다 그만두겠다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절망과 분투하기를 포기한 모든 이들을 위해 쓴 책이다. 그는 그의 경험, 그가 본 영화, 그가 생각하는 작가, 그가 말하는 감독, 그가 생각하는 철학, 심리학 등으로 이야기를 엮었다.

이 책을 읽으며 알았는데 저자 허지웅은 작가이자 영화 평론가이기도 하다. 영화 평론가 답게 영화를 깊고 예리하게 바라보았다. 특히 영화 <라라랜드>를 『만약에』의 제목으로 쓴 글이 인상 깊었다. 살면서 ‘만약에’로 무너져 내린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만약에, 라는 말은 슬프다. 이루어질 리 없고 되풀이 될 리 없으며 되돌린다고 해서 잘될 리 없는 것을 모두가 대책 없이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 만약에,는 슬픈것이다. 당신이 <라라랜드>에 무너져 내렸다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p.60

『당신 인생의 일곱가지 장면』을 읽고는 나도 내 인생을 일곱가지 장면으로 요약해 본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장면들이 희는 아닐거다. 희노애락이 다 녹아 있는 나의 인생이 대강 생각해도 짠하고 기특하다.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p.74

저자 허지웅은 굉장히 힘든 20대를 보냈다고 했다. 이 책에는 그런 그가 지금의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도 담아 있다. 읽는 내내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과 통찰 그리고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청년들에게 등대 노릇을 해줄 어른을 만나 지혜를 빼먹으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어른을 찾지 못했기에 이미 죽은 어른 글에 기대었다고 한다. 비록 그는 등대 노릇 해 줄 어른을 만나지 못했지만 본인 스스로 지금의 청년들에게 등대노릇을 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을 다 읽고 내가 가장 크게 다가온 단어는 ‘피해의식’이다. 나는 완전 무결한 피해자라는 생각, 그러니 나는 언제나 옳다는 생각 즉 피해의식. 피해의식은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는 말이 크게 와닿는다. 그간 나는 얼마나 많은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피해 의식은 사람의 영혼을 그 기초부터 파괴한다. 악마는 당신을 망치기 위해 피해의식을 발명했다.

결코 잊어선 안 된다. p.152

이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저자가 말한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며 불행을 피할 수 없으니 짊어지고 껴안고 공생하는 수 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행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저자는 말한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불행을 다스린다면, 그리고 그걸 가능한 오래 유지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얼마든지 불행을 동기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나는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 째는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해 후회와 괴로움으로 힘겹게 사는 사람, 두 번째는 현재를 즐기는 사람, 세 번째는 미래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온갖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는 사람. 나는 첫번째 유형에 아주 가까운 사람이다. 두 번째 유형으로 살고 싶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이런 나에게 <살고 싶다는 농담>은 두 번째 유형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책이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며 불행을 피할 수 없으니 짊어지고 껴안고 공생하는 수 밖에 없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여야 겠다.

피해 의식과 결별하기, 나를 객관화 하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나의 의지에 따라 살기, 나만의 시간을 살아내기. 이런 결심들을 안겨 준 저자 허지웅님께 감사드린다. 포스가 허지웅님과 함께 하길. 건강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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