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와 그의 주인 - 드니 디드로에게 바치는 3막짜리 오마주 밀란 쿤데라 전집 15
밀란 쿤데라 지음, 백선희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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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자크와 그의 주인>은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의 변주다. 변주라는 표현은 쿤데라가 쓴 것인데 이것은 각색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작품이라고 했다.

나는 『자크와 그의 주인』이 각색이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온전히 나의 작품이고, 내 고유의 ‘디드로에 대한 변주’이며, 또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므로 ‘디드로에게 바치는 나의 오마주’다. - 변주서설8 p.27

밀란 쿤데라는 변주 서설에서 <자크와 그의 주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구성은 이렇다. 자크와 그의 주인의 여행이라는 빈약한 토대 위에 세 가지 사랑 이야기가 놓인다. 주인의 사랑, 자크의 사랑, 그리고 포므레 부인의 사랑이다. 앞의 두 사랑은 여행이 결말과 살짝 연결되는 반면(두 번째 사랑은 아주 살짝.) 2막 전체를 차지하는 세 번째 사랑은 기술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저 단순한 일화다. (주된 줄거리를 이루지 않는다.) 이는 연극 구성의 법칙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 지점이 내 판돈을 걸어야 할 곳이라고 보았다. p. 27

그는 그저 단순한 일화일 뿐이라는 지점이 자신의 판돈을 걸어야 할 곳이라고 했다. 그 부분을 찾아 자세히 읽어보니 포므레 부인의 사랑 이야기가 포므레 부인의 멋진 복수극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크가 개입해서 다른 결말로 바꾼다.

이 세상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바람이 불듯 방향이 바뀌는 법이지. 그리고 바람은 쉬지 않고 부는데, 당신은 그걸 알지 못하는 거요. 바람이 불면 행복은 불행으로 바뀌고, 복수는 보답으로 바뀌지. 그리고 가벼운 여자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숙한 여자가 되고…….p. 103

아마도 이 부분이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에서는 포므레 부인의 복수극으로 결말이 났을 듯하다. 쿤데라가 쓴 <자크와 그의 주인>에서 달리 한 것은 다른 ‘선택’으로 결말을 바꿀 수 있다는 걸 표현하는 부분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밀란 쿤데라는 또 이 아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건 저 높은 곳에 씌어 있다는 말을 자주 반복한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는 그저 씌어 있는 대로 사는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자크와 그의 주인의 마지막 대화에 그 답이 있다.

주인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
자크 누구도 알지 못하죠.
주인 누구도.
자크 그러니 저를 인도해 주세요.
주인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인도할 수 있겠느냐?
자크 저 높은 곳에 쓰인 대로 가는 거죠. 나리께서는 저의 주인이시니 저를 인도할 의무가 있으십니다.
주인 그래, 하지만 조금 더 먼 곳에 쓰인 것을 네가 잊었구나. 명령을 내리는 건 주인이지만, 명령을 선택하는 건 자크 너지 않느냐. 그러니 내가 기다리마!
자크 좋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나리께서 저를 인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 앞으로…….
주인( 주변을 둘러보며 당혹해 한다.) 그러고 싶지만 앞이 어디냐?
자크 나리께 큰 비밀 하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인류가 태곳적부터 알아 온 계략이죠. 어느 쪽으로 가도 앞입니다.
주인 (주위를 빙 둘러보며) 아무 쪽이나?
자크 (팔을 크게 돌려 원을 그리며) 나리께서 어디를 보건 사방이 앞이죠!
주인 (열의 없이) 멋지구나, 자크! 멋져!

(그는 천천히 몸을 돌린다.)

자크 (침울하게)네, 나리, 저도 아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주인 (적절한 연기를 잠깐 한 뒤 슬프게) 자, 가자, 앞으로!

(두 사람은 무대 안쪽을 향해 대각선으로 걸어간다…….)

(막)



자크와 그의 주인은 어느 쪽으로 갈지 선택한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그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어디로 가든 앞이라는 것은 인생에는 정답이란 게 없다는 말일 게다. 우리의 인생 여행이 어떨지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자크와 그의 주인>을 읽고 이런 결말을 내어 놓고 보니 최근 최복현 선생님이 쓰신 글 <나의 자유 의지란?>이란 글이 자꾸 떠올랐다. 이 글의 마무리는 최복현 선생님의 글로 마무리 하는 게 좋겠다.

그렇다. 나는 인간이다. 그리고 신은 인간이란 이름을 내게 주었으니신은 자유의지를 보장한다고 믿는다. 때문에 나는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고민한다. 나는 나의 삶을 선택한다. 신이 일일이 내게 명령을 내리지 않으니 항상 섭리를 알려주지 않으시니, 나는 내 행위를, 말을 선택한다. - 나의 자유 의지란?/ 최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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