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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 나를 활자에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글방
양다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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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글쓰기 소상공인'인 양다솔 작가의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부제: 나를 활자에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글방)』 은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띄우는 다정한 편지형 에세이다.

글쓰기를 독려하는 이 책은, 막막한 시작 앞에 주저하는 사람들을 위해 손을 내민다.


한 번이라도 글을 써본 사람은 안다.

A4 빈 문서 화면을 바라볼 때의 막막함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라면 글을 풀어내는 일이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글쓰기는 글을 처음 썼던 순간에도, 몇 번 써봤다는 지금도 그 낯섦과 막막함은 여전하다.


이 책은 그 막막함을 뚫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여전히 글을 쓰고 싶고,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띄우는 책이다.


당신과 내가 모여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쓴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약속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p.9


글이라는 건 뭘까?

책을 읽고, 누군가의 글을 감탄하며 소비하는 내가

이제는 직접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글이란 건, 결국 나와 대면하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소중하지 않은 삶, 무의미한 경험은 없다.

누구의 이야기든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사연이 있고, 그것은 얼마든지 글이 될 수 있다.

양다솔 작가도 그렇게 말한다.

모두의 삶은 글감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글쓰기는 분명 더 쉬워진다.

하지만 꼭 특별한 사건이나 엄청난 감정이 아니더라도,

그저 나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적어내는 것만으로도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나 역시 거창한 경험을 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살아온 날들이 모두 하찮고 쓸모없는 건 아니다.

그 속에도 분명히 글이 될 만한 무언가가 있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얼마나 드러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자기 고백이자 자기 해석의 과정이다.


그래서 글은 문장이 아니라 나를 향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양다솔 작가의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에서도 글을 쓰려는 이들에게 이렇게 권한다

"먼저 당신 자신에 대해 써보세요."


그래서 이 책의 첫 번째 목차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써보는 연습부터 시작한다.

글쓰기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위이기 이전에 나를 이해하고, 나로서 살아낸 시간들을 꺼내 마주 보는 것이다.


이후 이 책은 '나'라는 존재에서부터 시작해, 나의 감정, 관계, 장소와 사물, 순간들로 조금씩 글쓰기의 방향을 확장할 수 있도록 이끌며 마지막에는 익숙한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글쓰기까지 쓰도록 돕는다.

우리는 글을 쓰며 나를 세상과 연결해간다.


누군가 글감을 던져준다면 빈 문서에 첫 문장을 쓰는 일이 조금은 덜 막막할 것이다.

나도 작년에 짧은 글쓰기를 하며 매일 글감을 받아 글을 쓴 적이 있다.

나 혼자 쓰는 것보다 글감을 받아쓸 때 글쓰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느낌,

아니 적어도 일단 뭐라도 쓰게 된다는 점이 참 좋았었다.


양다솔 작가는 누군가 주제를 건네준다면 혼자 글을 쓸 때보다 더 낫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면 일단 무엇이든 쓰게 될 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 책에는 일주일에 한편씩 무리 없이 쓸 수 있는 글감과,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하는 다정한 문장이 담겨있다.


글쓰기를 멈추었던 나에게 다시 글을 쓸 용기를 주는 책이다.

일주일에 한 편, 해볼 만하지 않은가?

한동안 '무엇을 써야 하지?'란 질문 앞에 멈춰 서 있던 나에게 위로를 보내줌과 동시에,

글쓰기의 세계로 다시 한번 초대하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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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 최강 형제가 들려주는 최소한의 정치 교양
최강욱.최강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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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사, 다양한 인간사 속에서 적어도 우리만큼은 보수와 진보라는 양 날개를

균형 있게 펼쳐 더 높은 하늘을 마음껏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p.328


"우리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보수냐 진보냐는 단순한 정치적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떤 시선과 태도로 바라보며 살아가는가를 결정짓는 질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 질문은 너무 오랫동안 이념적 낙인과 프레임 속에 갇혀 있었다.

보수는 기득권, 진보는 불온한 세력으로 치부되며 서로를 향해 비난하고 배척해 왔다.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는 최강욱·최강혁 형제가

"진짜 보수는 무엇이고, 진짜 진보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쓴 책이다.

극단과 대결의 정치가 아니라 공존과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보수와 진보의 진짜 의미를 탐색한다.

이 책을 통해 프랑스 혁명 이후 시작된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개념을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단편적이고 피상적으로 개념을 인식해왔는지 깨달았다.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의미가 왜곡되었다.

'보수=친일=기득권', '진보=좌파=빨갱이' 라는 프레임은 본래의 보수와 진보 이념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기 위한 도구로 쓰여 왔다.


본래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는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처형 문제를 두고 대립했던 지롱드파(우파)와 자코뱅파(좌파)에서 기원한다.

부유층을 대변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선호한 지롱드파는 보수적 가치에, 서민층을 대변하며 급진적 변화를 추구한 자코뱅파는 진보적 가치에 가깝다.

보수의 핵심 가치는 질서, 전통, 안정, 공동체, 책임이다.

기존의 질서와 제도를 존중하며, 급진적인 변화보다 점진적 개선을 통해 사회의 안정을 추구한다.

반면 진보는 평등, 자유, 혁신, 권리 확대, 사회적 변화와 같은 가치를 중요시한다.

사회의 불평등과 억압에 맞서며, 구조적 개혁과 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한다.

그러나 사회는 보수, 진영 어느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진보가 미래를 열면, 보수가 균형을 잡는다.

진보 없는 사회는 정체되고, 보수 없는 사회는 흔들린다.

앞서 소개한 문장처럼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라는 양쪽 날개가 균형을 잡고 가며 움직인다.


보수는 현재를 '과거의 정점'으로 보고,진보는 현재를 '미래의 출발점'으로 본다.

-로버트 니스벳

p.94


사회 뿐 아니라 개인도 보수성과 진보성을 모두 지닌 복합적인 존재이다.

책에서 소개된 다양한 사례들을 읽으며 나 또한 어느 한쪽이 아니라 둘 모두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특별한 장치는 '봉수씨''진봉씨'라는 상징적 인물들이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을 추상적인 이념이 아닌, 실생활의 언어로 접하게 된다.

빈부격차, 복지, 교육, 평등, 성소수자 등 현실의 문제들을 두 인물이 각자의 관점에서 토론하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입장을 비추어 생각해보게 한다.


또한 킹스맨, 죽은 시인의 사회,기생충, 설국열차,머니볼등의 영화를 소개하며, 각기 다른 가치의 충돌과 사회 구조를 보여주며 보수와 진보가 작동하는 방식을 소개한다.

이쯤 읽고 나면 진짜 보수와 진보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보수는 이로워야 하고, 진보는 의로워야 한다.

그러나 보수가 질서를 빌미로 기득권만을 유지하려 하거나,

진보가 정의를 내세워 권위주의에 빠질 때, 본래의 의미와 가치는 변질된다.

진정한 보수는 사회의 뿌리를 지켜나가며 공존을 고민해야 하고,

진정한 진보는 불의를 고발하면서 책임있는 변화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치 언어는 오염되고 왜곡되어 있다.

변질된 언어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우리는 이제 보수와 진보, 좌파 우파에 씌어진 편견을 걷어내고, 혐오와 공격이 아니라 대화와 공존의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를 진보적이라 생각했었다.

불평등에 분노하고,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에도 보수적 감각이 분명히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질서를 중시하고, 변화에 신중하며 현실적 조건과 그 영향을 먼저 고민한다.

그러나 여전히 더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를 바란다.

나또한 한쪽으로 편향된 사람이 아니었다.

늘 균형을 고민하고,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기를 바라는 하나의 시민일 뿐이다.


보수든 진보든, 서로를 적대시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발전하기 위해 대화해야할 상대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각자의 가치를 존중하며, 권위주의적 태도를 경계해야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는 이해하기 쉽게 써진 책이다.

앞으로 보수와 진보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교과서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특히 정치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입문용 도서로 권하고 싶다.

나 역시 내 아이에게 꼭 읽어보라고 할 예정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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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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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 <검은 절벽>의 시작은 섬뜩했다.

빛이 없는 공간, 암흑물질뿐인 우주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파악해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 라미는 우주선 '다이버전스'에서 깨어나고, 어떤 사고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주선의 인공지능 '러브조이'와 대화를 하며 사고의 원인과 어떤 미지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지난달 코스모스를 읽은 뒤라 그런지, 관찰자의 위치에 따른 별의 시상 변화,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이 태양계밖에 있음을 알아가는 모습, 가속운동을 하는 우주선과 시간의 상대성 등 나의 호기심을 잔뜩 발동하는 배경지식들이 잔뜩 깔려있어 순식간에 책에 몰입하였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 사실과 상상력만 이 책에 담겨있는 것은 아니었다.

6편 모두 과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인간이라는 존재와 감정, 윤리 등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검은 절벽>에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와 신뢰, 고립된 우주선 상황 속에서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 그리고 끊임없이 생존을 위한 선택을 내려야 하는 라미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 속 인공지능에는 감정이 있고 인간과 교감을 한다. 인공지능의 감정을 인간의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알고리즘에 의해 표현된 감정이 의식을 가진 존재가 표현하는 감정과 같을까?

 


<텅 빈 거품>은 우주의 진공 붕괴를 피하며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항성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호버만-다이슨 스피어'가 등장한다. 앞으로 태양계 파괴까지 남은 시간은 150. 주인공 상미는 인류의 마지막 유토피아로 떠날 것인가, 아니면 호버만 다이슨 스피어를 타고 지구를 탈출하여 외계행성을 떠돌 것인가 선택을 해야 한다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에 빛 보다 빠른 물체는 존재할 수 없지만, 소설 속에서는 광속을 뛰어넘어 이동을 하는 고차원적 존재(외계인)이 있다는 설정을 했다.

  

소멸을 앞둔 오늘의 안락함을 택할 것인지, 혹은 불확실한 내일이지만 생존을 하며 끝없는 방랑을 할 것인지 갈등하는 주인공을 보며 진정한 유토피아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이 실현 가능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고통 없는 삶과 계속되는 삶 중 무엇을 택해야 할까?

 

<마리 엘리 에스>는 인공 뇌를 이식받은 마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 유진은 인공 뇌 실험을 자원했던 아내를 잃고, 이후 아내의 기억을 바탕으로 마리에게 인공 뇌를 이식했지만 마리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았다.


인간의 뇌신경 데이터를 기계와 연결하는 기술이 언젠가는 실현되지 않을까?

기억이란 데이터로 저장될 수 있다 해도, 그때의 감정과 의미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마리는 아내의 기억을 부분적으로 담고 있고, 아내를 닮은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은 아니다.

심지어 그녀의 인공 뇌의 의식은 길어야 하루 정도만 유지된다.

기억과 의식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어제의 마리가 오늘의 마리와 같다 할 수 있을까?


마리는 아내가 될 수 있을까부터 어제의 마리가 오늘의 마리와 같다는 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 그 자체로 인간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있었다.


비슷했던 내용으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이 떠올랐다. 아내의 일부 기억을 인공 뇌에 이식하여 만든 마리를 통해 부분적인 기억으로 구성된 존재가 여전히 '그 사람'일 수 있을지 하는 문제는, 병약한 아이 조시를 대체할 대체품인 '클라라'를 통해 외형, 태도, 기억을 따라 하는 존재라면 하나의 존재를 대체할 수 있는지 하는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기술로 존재를 복제하는 것이 가능할지라도, 존재는 복제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란 기억을 가진 몸과, 시간과 경험의 누적, 감정의 총합으로 만들어진다.


<콜러스 신드롬>에서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재호가 딸 윤하를 되찾기 위해 과거를 여러 번 반복했지만, 그 선택이 오히려 아내 유슬의 삶을 파괴했고, 결국에는 자신까지도 파괴한다.

그는 사랑을 말하지만 자신의 죄책감을 덮기 위한 이기적인 선택의 반복일 뿐이다.

간을 돌린다고 상실을 복구할 수는 없고, 스스로를 고통 속에 얽매이게 했다.


우리의 삶은 한번뿐이기에 아름다운 것이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있기에 가치 있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가 떠올랐다.

니체는 지금 이 순간에 이루어진 선택과 행동을 무한히 반복한다고 상상할 때 이것을 견딜 수 있느냐고 물으며,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라 말한다.

고통스럽고 후회되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긍정하고 가치 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재호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매 순간을 새롭게 살지 않았다.

그의 반복은 오직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시간은 계속 반복되었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고,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었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

 

마지막 작품인 <안녕, 아킬레우스>도 타임 루프 속을 사는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주인공 피터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시간 역행이라는 SF 단골 소재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식이 너무나 흥미진진했다.

영상화 계약이 체결되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실제 제작까지 연결되지 못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영화로 나와도 너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본 작품이었다.


해도연의 진공 붕괴속 작품들은 과학적 상상력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 의미, 사랑과 감정, 윤리에 대한 다양한 통찰을 주었다. SF 장르 소설이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질문들이 담겨있다.

그동안 SF 장르는 왠지 유치하거나 터무니없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김초엽 작품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SF 소설-특히 단편소설도 과학 전공자들이 쓰면 이렇게 잘 쓸 수 있구나 싶어 감탄을 하며 읽었다.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과 사유가 담긴 다른 장편소설도 읽어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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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 - 2500년을 초월하는 논어 속 빛나는 가르침
김준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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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NS에서 너도나도 따라 했던 유행이 있었다.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사진을 맡기면, 마치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속 인물처럼 변환해 주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기술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수많은 이들이 지브리 세계 속의 나를 경험하며 환호했다.

SNS 속 지인들의 프로필 사진이 지브리 이미지로 바뀌어갈 때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AI가 감성을 흉내 내고, 상상력을 이미지로 구현해 내는 시대.

그렇다면 인간만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으로 남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러 분야에서 각자의 답을 내놓고 있다.

김준태의 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은 놀랍게도 2500년 전 공자의 사상을 다시 꺼내든다.

 

그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인간답게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고전 논어로부터 답을 찾아가고 있다.

작가는 이미 AI 시대가 도래했고 세상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는데, 인간의 정신은 아직 새로운 변화에 완전히 따라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공자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는 전통이 붕괴되고 가치가 혼란해진 시대였다.

그는 그 시대에 등장하여 '인의예지'라는 도덕적 가치들을 통해 인간 중심 질서를 복원하려고 했었다.

이렇게 말하니 AI 시대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인간의 가치와 윤리가 새로운 시대에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논어가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에 알맞은 시각과 성찰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고전들도 많지만 특히 논어가 지금 이 시대에 특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논어속 공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공자는 그 누구보다도 사람의 문제를 고민했었다.

그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하던 '군자(君子)'는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관계 속에서 어떻게 품위 있게 살 것이며, 무엇이 옳다고 판단할지, 어떻게 평생 배울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존재였다.

작가는 공자의 가르침인 '인의예지'를 각각 사람다움, 올바름, 관계, 배움으로 연결했고,

마지막에는 삶이라는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우리가 AI 시대를 살아갈 때 필요한 자세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1. 인

AI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묻는 질문은 'AI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작가는 '()'에서 사람다움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다.

공자가 말하는 인()'공감과 사랑'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끌리던 개념도 바로 '()'이었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어떤 책을 읽어도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과 맺는 관계,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성찰의 결과물에 대한 구체적 실천 양식, 다시 말해 개인 고유의 경험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인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살신성인의 정신, 공감 능력,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노력, 안되는지 알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태도, 윤리적 태도, 다정함을 통해 인의 정신을 설명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과 공감을 흉내 낼 수 있어도, 진짜 공감하고 사랑하는 능력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사람다움'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다면 공자의 ''이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2.

작가는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지, 옳고 그름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기준을 '()'에서 찾았다.

그는 기본과 양심, 공동선, 책임, 신중과 절제, 삶에 대한 충실함, 용기 등 을 강조했다.

공자에게 '()'는 단순한 도덕률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이 상황 속에서 스스로 내려야 하는 올바른 선택의 기준이었다.

AI는 어떤 가치를 두고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AI가 어느 날 인공지능의 특이점을 넘어서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AI가 스스로 가치를 두고 옳고 그름, 진짜와 가짜를 판단하지 못하고 자신이 습득한 윤리 모델과 알고리즘에 따라 가장 '그럴듯한 판단처럼 보이는'결과를 생성하는 수준이다.

AI는 사전에 미리 설정된 규칙과 데이터로부터 계산된 결과만을 보여준다.

진짜로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하는 존재는 직접 사유하고, 책임지고, 결정하는 존재, 인간뿐이다.

 

나는 작가가 말한 여러 내용 중 특히 '기본과 양심'이 제일 와닿았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선택을 할 때, 그 기준이 되는 것은

내가 무엇을 가장 본질로 둘 것이냐 하는 것과,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리고 이 결정을 내릴 때 내가 부끄럽지 않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3.

작가는 '()''관계로 연결했다. 공자는 예를 무척 중요시했다.

공자의 ''에는 효(), (), (), (), 의리(義理)가 포함되어 있다.

이 점들은 시대와 사회가 달라져도 언제나 통하는 내용인 것 같다.

AI 시대든 아니든, 인간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았다.

 

19세기 ~20세기 수많은 문학작품과 철학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주인공들이 괴로워했던 이유도 바로 고독과 소외감, 관계의 부재에서 오는 실존의 고통이 아니었던가?

AI 시대는 인간이 산업시대, 자본주의 시대보다도 더욱 소외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는 관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결정하고, 가장 인간다워질 수 있으며, ''는 자신의 위치에서 품격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AI 시대일수록 사람 사이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4.

AI시대에 지식의 암기만으로는 우리의 배움이 한계를 드러낸다.

이제는 평생 배워야 하고, 지식을 암기하는 것보다 판단하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특히 인공지능을 활용할 때 질문자의 수준에 따라 이용자가 체감하는 업무 효율 면에서도 차이가 크게 발생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따로 생겼을 정도로, AI에게 어떻게 묻느냐가 경쟁력의 차이를 만든다.

 

공자가 말하는 '()'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공자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아느냐 보다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다루느냐를 더 중요시 생각했다.

그가 말한 '익힌다()'는 암기한 지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진짜 삶의 맥락에 적용할 줄 알고, 자신이 아는 것을 잘 연결할 줄 알며, 잘 질문할 줄 아는 것이었다.

AI 시대에는 스스로 배움을 설정하고 질문을 던지며 삶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5.

김준태 작가는 이 책의 마지막에 ''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존재이니, 어떻게 AI 시대에 우리의 삶을 대해야 할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를 추가적으로 말한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이제 바꿀 수 없는 현실이며 미래다.

우리가 AI를 어떻게 학습시키고 프로그래밍 할지, AI가 주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역량을 어떻게 갖출 것인지, 가짜 뉴스는 어떻게 다룰 것인지, 어떻게 AI와 그리고 다른 사람과 협업하여 미래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개인적으로 '인의예지'의 마지막에 ''이라는 주제를 덧붙인 점이 이 책의 여러 장점 중 한 가지라 생각했다.

AI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질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윤리''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것이다.

인간답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으로 주체적으로 사랑 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살아가고 싶은 나의 바람에 대한 답을 마지막 장을 읽으며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었다.

 

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은 단순히 고전을 현대에 끌어온 책이 아니었다.

 

진보하는 기술의 시대에 '사람다움'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이야기한 책이었다.

김준태 작가는 논어의 문장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읽어주었고,

나는 그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오래된 지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의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논어는 여전히 살아 있고,

이 책은 그 고전을 오늘의 질문과 연결해 다시 숨 쉬게 만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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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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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는 식물 그림을 그리며 식물을 연구하는 식물학자 '신혜우'님의 에세이다.

신혜우 작가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원으로 3년간 지내며, 보고 느끼고 아꼈던 메릴랜드 숲속의 사계절, 열두 달 식물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 우리에게 들려준다.

새삼 아이가 어릴 때 이런저런 식물의 이름들이 궁금해서 식물도감을 사 자주 훑어보곤 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식물을 바로 보고 무슨 식물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식물학자를 부러워하기까지 했었다.

식물학자는 어떤 사람일까? 식물학자들은 식물을 보며 어떤 생각들을 할까?

서양배를 먹으면서도 과육의 석세포 이야기를 하고,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리그닌과 큐티클 이야기를 하며, 꽃을 보며 미생물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식물학자들이다.

그럼에도 일 년 열두 달 계절의 변화를 가장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식물학자가 아닐까?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달력이나 시계, 오늘의 날씨보다는 식물을 통해 실감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지금은 봄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하얗게 봉우리 진 목련과, 빨간 열매를 떨구고 피어나는 노란 산수유, 그리고 꽃샘추위 속에서도 하얗게 피어나는 매화를 보며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녹음이 진해지고 나뭇잎 색이 쨍해지면 여름을 느낀다.

낙엽과 단풍을 보면 가을이, 가지마다 쌓인 눈꽃을 보며 한겨울을 실감한다.

계절의 변화에 맞춰 식물들은 각지 제 갈 길을 간다.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를 읽다 보면 그런 식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마구 느껴진다.

낯선 식물들의 이름이 많아서 자주 검색을 돌려봐야 했지만, 이 또한 책을 읽으며 함께 따라오는 즐거움 중 한 가지였다. 알게 되는 식물의 이름이 늘어날수록, 내가 바라보는 세상 또한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서양에서는 봄의 전령이 난초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들이 꽃 축제를 찾아가듯 서양인들도 여러 꽃 축제를 하는데, 그 첫 꽃축제가 '오키드 쇼'(난초 축제)라고 한다.

신혜우 작가의 주 전공은 난초인 걸까?

그래서인지 책에서는 난초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난이라고 해봐야 꽃 보기는 힘들지만 잎 생김새만으로도 우아함을 뽐내는 동양란과, 화려한 선물용 서양란 정도만 구별하는 나로서는 난초가 다 같은 난초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고, 그리고 식물학자는 그 난초를 다 구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가 싶은 호기심이 들었다.

작가가 머물던 메릴랜드에는 배꽃이 지고 나면 벚꽃이 핀다.

벚꽃이 머물다 가는 시간은 여기가 거기나 길지 않아, 사람들의 아쉬움이 큰 것 같았다.

여기도 한참 벚꽃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데, 슬프게도 주말에 비 소식이 있다.

오늘 사람들과 함께 비가 오면 이 꽃이 다 떨어져서 어떻게 하나 아쉬워했는데.

신혜우 작가는 꽃잎이 떨어지는 것 또한 꽃잎의 소임이니 반갑게 바라보라 말한다.

떨어지는 꽃잎에 아쉬워할 줄만 알았지 그 또한 꽃잎의 소임이라 생각하라는 말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연의 모든 것은 존재의 이유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신비로움이 절묘하게 이어지게 되어있다는 것을, 이 글을 읽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꽃잎은 제때 떨어져야 하는 것, 꽃잎이 떨어져야 밑씨가 건강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떨어진 꽃잎이 있어야 땅이 양분 삼아 건강해진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 또한 아쉬워하면 안 된다.

나무는 꽃잎이 떨어진 자리의 상처를 스스로 아물게 하며 자신을 돌본다.

그 또한 마땅히 나무가 해야 할 일이다.

씨앗은 또 어떠한지.

씨앗은 보통 가을에 많이 심는다고 한다.

많은 식물들이 가을에 열매를 맺고 가을에 씨앗을 심는다.

그렇게 땅속에 잠들어 있던 씨앗들은 자신의 때가 다가오면 싹을 틔우고 숲을 깨운다.

아무리 기다리는 자가 재촉해도 더 늦지도 더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때가 되어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떨어진 낙엽은 봄의 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만큼 관심받지 못한다.

떨어진 나뭇잎은 어디로 가는 걸까?

불과 얼마 전에도 학교 앞 도로에 묵은 낙엽을 포대에 가득 담아 실어가던 시청의 트럭을 보며,

그래 이제 곧 꽃이 필 텐데 묵은 나뭇잎은 어서어서 치워야지 생각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 낙엽들은 어딘가로 보내져 숙성되고 분해되어 비료로 바뀔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면 그 자리 그대로 남아 축축한 흙 속 작은 식물과 동물들에게 쓰임을 다했으리라.

사람들의 쏟아지던 관심이 사라진 쓸쓸하고 고요한 순간에도, 식물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튤립도 나무가 있다는 것은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나무 이야기를 통해 자연의 순환과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튤립나무는 죽어 숲을 키우고, 죽은 나무와 꽃잎을 동물과 곤충이 먹는다.

그리고 다시 숲은 튤립나무의 씨앗을 품고 길러준다.

난초는 특정 곰팡이가 있어야 싹을 틔울 수 있다.

그리고 이 곰팡이는 특정 박테리아의 도움이 필요하다.

꽃이 열매를 맺으려면 햇빛과 바람, 동물, 비, 토양이 있어야 한다.

사람과 동물은 또 식물이 있어야 살고, 식물은 태양과 동물이 뱉어낸 이산화탄소가 있어야 한다.

자연은 이렇게 조화를 이룬 채 순환하고 상호작용하고 있다.

식물-자연-인간-우주, 모든 게 연결되고 순환이라는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이 너무 아름답다.

일 년간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고, 나무를 바라보고, 떨어지는 나뭇잎과 함께

자연의 이치와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삶, 그리고 인간까지 엮어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이토록 따스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이 페이지마다 담겨있다.

이성 풀가동인 요즘 나에게, 감성을 마구 두드리는 순간이다.

그도 결국 숲에 사는 다른 생물과 다를 바 없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되묻는다.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의 답을 찾고 있다면, 이치대로 살아가는 식물들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답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렇게 일 년 동안 자연을 이야기하는 에세이가 너무 좋다.

단순히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의 흐름 속에 삶의 변화와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매번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도 매번 다른 모습을 사는 우리들처럼,

자연의 순환이라는 큰 흐름 속에 사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한편으로 특별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내 하루가 조금 더 소중해지고, 지금 이 순간을 더욱 깊이 살수 있는 원동력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따뜻한 이 계절에 식물을 좋아한다면 한 번씩 만나보라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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