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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다이어리
케빈 브룩스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영미소설 : 벙커 다이어리
케빈 브룩스는 청소년 소설을 주로 써온 작가로 카네기 상에 3번이나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리고 이 자신의 13번째 작품 '벙커 다이어리'로 카네 상을 움켜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수상하고 나서 청소년이 보기에 너무나 절망적이고 잔혹하고 위험하고 지독하다는 이유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방 안은 그 어떤 곳보다 더 깜깜했다. 빛이 없었다. 보이는 것이 없었다. 나는 더듬더듬 문을 찾아 복도로 나왔지만 그렇다고 나아진 것도 없었다. 칠흑처럼 어두웠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몇 시인지 알 수 없었다. 시계를 볼 수 없었으니까. 몇 시쯤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짐작할 거리가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창문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하늘도 없고, 소리도 없었다. 그저 단단한 어둠과 벽 속에서 불안하게 웅웅 울리는 낮은 소음뿐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속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 pp.13-14
이 작품은 납치되어 벙터에 갇힌 소년이 두 달에 걸쳐 쓴 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예술을 하는 아버지와 변호사였던 어머니. 그 사이에서 유복하게 살았던 소년은 아버지의 예술혼으로 인해 자신이 싫어하는 환경에 방치되자 스스로 다른 길을 향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시각 장애인의 짐을 들어주는 선행을 베푼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약에 의해 잠들었다가 깨어난 소년 라이너스는 벙커 안의 첫 인질이었다. 6개의 방이 있고, 6개의 수저가 있는 그 벙커안으로. 화장실에는 카메라가 붙어있고 모든 것을 감시당하는 비관적인 상황. 라이너스는 생존을 위해 환경을 샅샅이 뒤져본다. 그리고 어느 날 9살짜리 여자아이 제니가 벙커 안으로 들어온다.
그로부터 2주뒤까지 계속해서 사람은 들어온다. 성별도, 직업도, 성격도, 모든 것이 겹치지 않는 여섯 사람. 그들은 왜 자신들이 잡혀들어왔는지도 모르고 또한 무슨 목적으로 그들을 잡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아는 것은 자신들이 나쁜 상황에 처해있으며 납치범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런 상황 속에서 점점 무력해지기도 하고, 또 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한다.
감시자는 그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다뤘다. 분열을 위해 술과 담배를 푼다. 그리고 나가려고 하면 먹을 것을 주지 않고 가스로 재우는 등 벌을 준다. 그렇게 되어 나가려고 애를 쓰는 라이너스는 눈총을 받게 된다. 심지어 음식에 마약을 타서 그들을 괴롭히기도 하는 감시자는 소설 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어둠 속에 숨어있다.
그러다가 그들은 감시자에게 쪽지를 받게 된다. "들어라- 내 말을 : 다른 사람을 죽이는 남자는 자유를 얻을 것이다."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자유를 얻을 것이다도 아니고 다른 남자를 죽이는 남자는 자유를 얻을 것이다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남자는 자유를 얻을 것이다. 굶주림과 중독에 허덕이며 여러주 갇혀있어 나약해진 사람 중에는 제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도 있던 것이다.
그다음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는지? 나는 생각했다, 바로 이거다. 이게 지금 일어나는 일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라이너스, 이게 네가 가고 있는 곳이다. 이것 - 이 침묵, 이 정적, 이 감정의 부재 - 이것이 네가 가고 있는 곳이다. - p. 294
범죄에 희생된 그들의 마지막은 정말 처절하다. 희망도 꿈도 찾을 수 없는 절대적인 절망이 있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절박하게 생존을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혼란과 공포를 야기했다. 마지막의 빈 페이지가 정말 끔찍한 느낌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굉장히 인상깊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