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살인 1
베르나르 미니에 지음, 윤진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프랑스 추리 소설 : 눈의 살인 1

 

  프랑스 판 스티븐 킹이라고 불리며 코냑추리소설 대상을 수상하고 6부작 TV드라마로 제작되어 최우수 TV시리즈까지 수상한 베르나르 미니에의 데뷔작 '눈의 살인'을 읽어보게 되었다. 독특한 재질의 표지에 1, 2권이 대비대는 색채로 제작되어 더욱 눈길을 끌던 책. 20개국 출간에 프랑스에서만 40만 부 판매 성과를 올린 대작이라고 하니 더더욱 기대가 되었다.


  1권의 목차는 '제1부 말을 사랑한 남자''제2부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의 두 파트로 나뉘어진다. 1권에서는 총 2번의 살해가 각 파트에서 한번씩 잔혹한 살해방식으로 이루어진다. 2008년 12월 피레네 산맥의 골짜기에는 사람들이 쉽게 출입하지 못하게 고립된 바르니에 치료감호소가 있다. 그 곳에는 40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쥘리앙 이르트만을 비롯해 정신병원이나 교도소에서 수감할 수 없는 심각한 살인을 저지른 정신병자들이 수감되어 있다. 외부세계와 단절되고 절대 출입이 불가능한 이 곳에서 어느 날 말을 끔찍하게 살해해 엽기적인 방식으로 로프로 매달아 놓은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평생 잊지 못할 광기어린 작품을 넋을 잃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p. 14


  말은 '롱바르 그룹'의 총수인 에릭 롱바르가 가장 아끼던 말로 노숙자 살해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툴루즈 경찰청 강력반 반장 마르탱 세르바즈 경감과 포 헌병대의 이렌 지글레르 대위를 중심으로 한 특별수사팀이 꾸려진다. 사건 당일 밤에 수력발전소를 지킨 경비원 두 명과 현장을 발견한 수력발전소 직원 등을 조사해가지만 경비원들이 입을 맞추고 무언가를 숨기려한다는 기색만 발견했을 뿐 사건에 진척이 별로 없던 그 시점에 이번에는 살인이 발생한다.


그야말로 위험한 자들이죠. 여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자들이 오는 곳입니다. - p. 358


 생마르탱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쥘 그림이 계곡 다리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쥘 그림이 살해당하면서 수사팀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진다. 심지어 말 사체에서 있을 수 없는 DNA가 검출되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치료감호소에 수용된 환자들은 탈출이 불가능하다. 매일 인원점검을 하는데 결원이 생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탈출 또한 불가능한 건물이다. 그럼에도 사체에서 그들 중 한 명의 DNA가 검출이 된다. 과연 누군가 환자의 DNA를 채취해 묻혀놓은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밖으로 나가 죽이고 복귀했을 가능성이 있는 건지. 세르바즈 경감은 환자의 면회실 등에 관해 질문을 하며 관련된 사항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해본다. 그리고 그는 자살한 아이들에 대한 한참 전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이 사건과 뭔가 연관이 있다는 강한 직감을 받게 된다. 


  확실히 독특한 전개다. 살인자를 알 수 없는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많이 봤지만, 살인자가 대략적으로 특정되어 있고 그는 밀실에 갇혀있는 이야기는 처음 봐서 흥미진진하다. 피해자들은 오히려 개방된 공간에서 살해를 당했다. 살인자는 어떻게 철통같은 감시와 출입 불가능한 시설을 지나 살해를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살인자가 수감되어 있는 환자의 DNA를 묻혀놓은 것일까.


  이 소설에서는 세르바즈 경감의 수사 진행 과정 뿐 아니라 임상심리사 디안 베르그의 시선에서도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녀는 치료감호소에서 밤마다 계속되는 누군가의 외출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폐허가 된 건물에서 묘한 인물을 마주치기도 한다. 1년동안 바르니에 치료감호소에서 일해야 하는 그녀의 호기심이 2권에서 사건에 어떻게 도움을 줄지도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어는 3단어로 - 내일 당장 대화가 되는 초간단 영어법
나카야마 유키코 지음, 최려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어 회화 : 영어는 3단어로

 

영어를 바꾼 인생 영어책! 이 문구를 보고 귀가 또 팔랑팔랑.. 집에 영어책을 그렇게 쟁여놓고도 또 눈에 들어오는 영어책이 있더라. 학교에서 배운 수많은 문법들이 있는데 정작 영어로 말하려고 하면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그냥 영어가 무서운 것. 말을 하기 전에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하고 가는데도 정작 다시 되물어오면 내 영어가 잘못됐나 하는 마음에 얼굴이 빨개지고 머리는 하얘지는 나날.

 

그런데 3단어로 바꾸면 영어가 된다니! 직관적인 영어가 답이 될 때가 많다. 이렇게 축약해서 말하는 법을 자주 익히면 대응이 빨라질 거라 기대하며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목차도 흥미롭다. 내 영어의 3가지 약점 학교에서 배운 숙어는 버려라 be동사를 많이 쓰지 마라 There is/are 버려라 it을 버려라 수동형을 버려라 숙어를 버려라 not 문장을 버려라 등등. 뭘 그렇게 버리라는 걸까. 여태까지 배워 온 영어 공식들을 대부분 버리라고 말하는 이 책. 그럼 대화가 되나? 긴가민가하며 읽어봤는데 오호, 대화가 된다!

 

저자는 토익 만점, 공인영어검정시험 1급이라는 공식 점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면 나랑은 출발선부터 다르지 않나. 이런 사람이 가르쳐주는 영어가 과연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저자 또한 회화에서는 영어를 서툴게 사용했던 사례를 들며 실전에서 배운 테크닉을 가르쳐준다.

 

맨 끝에는 특별부록이 있어 3단어 영어를 만들기 위한 편리한 동사들을 알 수 있다. 모든 문장을 주어+동사+목적어 3단어 패턴으로 말하는 3단어 영어의 장점과 3단어 영어를 만드는 실전패턴도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간결하게 정리해 놓았다.

 

누군가 원할 유창하고 또 폼나는 문장은 아닐 수 있지만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직관적이고 쉽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급하게 영어 회화를 해야할 때 정말 유용하게 볼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웬디 워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영미 스릴러 소설 :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All Is Not Forgotten


  여름엔 스릴러를 참 많이 읽는다. 몸이 공포를 느끼는 동안 더위를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인데, 이 책은 초반부부터 중반부까지는 열을 내며 화를 내다가, 중반부부터 후반부까지가 그랬다. 이 책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는 웬디 워커의 심리스릴러 데뷔작이다. 첫 스릴러 소설임에도 탄탄한 소설을 집필한 그녀는 2번째 스릴러의 출간을 앞두고 있고, 현재는 3번째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고 한다.


제니는 강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공포는 몸속에 살아 있었다. 신체의 기억, 프로그래밍이 끝난 정서적 반응은 제자리를 잃고 말았다. 기반이 되는 사실 자체가 지워졌으니까. 그래서 공포는 몸속을 자유로이 돌아다녔다. 그 강간이 남긴 유일한 실체는 놈이 새긴 흉터였다. - p. 51


  책의 도입부를 읽고 흥분하고, 또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미국의 작은 도시 페어뷰에서 15세 소녀 제니 크레이머가 처참하게 강간당한다. 그리고 범인은 작은 제니를 우악스럽게 유린한 후 등에 상처를 새겨 자신의 표식을 만든다. 제니는 쇼크에 빠졌고, 진정제를 맞은 후 망각 치료 약물을 처방받는다. 아버지 톰은 반대했으나, 어머니 샬럿의 강력한 주장에 따른 처방이었다. 타이밍도, 치료도 좋았다. 예후도 좋은 것으로 보였다. 제니는 강간에 대한 사건을 아예 잊는다. 그 사건은 없어진 일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날 제니는 자살을 시도한다.


죄다 헛소리다. 누가 당신 자식을 해치려고 작정했다면 어떻게든 뜻을 이루고야 말 것이다. - p. 53


  이 책은 그런 제니에게 기억을 돌려주기 위해 애쓰는 정신과 의사 앨런의 시점으로 쓰여졌다. 앨런이 맡고 있는 환자인 숀, 글랜 셸비. 앨런의 아내 줄리와 아들 제이슨. 그리고 제니와 샬럿, 톰 가족과 그들의 주변사람들까지. 관계 없어 보이는 환자들의 이야기도 절대로 헛투루 넘겨서는 안된다.


어둠을 걷어내지는 못했다. 얼룩을 씻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창조한 저 결함 많지만 멋진 생명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그늘 속에서 더럽게 살아가도 좋다고 체념했다. - p. 284


  이미 일어난 일을 없었던 것으로, 기억을 지우는 것으로 해결하는 선택지가 있다고 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또한 그 선택으로 인해 좋지 않은 징후가 이어진다면 없앤 기억을 다시 되돌리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앨런은 '용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현상을 마땅히 이해할 수 있을 때 다시 누군가를 믿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라고.


  모든 것이 잊히지는 않는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누군가는 불륜을 저지르고, 누군가는 자신을 믿지 못하고, 누군가는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누군가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 그들은 비록 그 것이 얼마간의 고통을 수반하겠지만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인정하게 된 다음에 미래를 향해 한 보 진전한다.


  정신과 의사 앨런이 그들 모두를 치유하는 듯 보이지만 그런 '나'를 바라보는 면이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그의 치료요법을 가만히 따라가고 있으면 '나'의 불안감과 이기적인 마음, 또한 변화하는 상황과 심정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몇 장까지 반전이었던 제대로 된 심리 스릴러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일본소설 : 야행


 

  일본 소설을 즐겨 읽던 사람이라면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독특한 연애판타지 소설로 나오키상 후보에도 오른 전적이 있는 소설인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작가인 모리미 도미히코는 그 후 10년 만에 신작을 발표했는데 바로 그 작품이 이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소설 '야행'이다.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모두가 하나의 '밀실'에 갇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p. 72


  구라마 진화제를 구경하러 간 날 밤 하세가와 씨가 사라진다. 영어 회화를 같이 배우던 동료들은 그 뒤 10년 만에 같은 축제에서 모인다. 그리고 그 중 오하시는 10년 전 사라진 하세가와 씨와 비슷한 사람을 발견하고 쫓다가 기시다 미치오 작가의 동판화를 전시하는 화랑에서 '야행'이라는 동판화들을 발견한다.


"저 풍경 속에 서 있고 싶다." 저는 설경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통과하지만 언젠가는." "내 경험에 비춰 말씀드리자면 그런 소원은 대개 다 이뤄져요." 고지마 군이 말했습니다. "저런 역에서 내릴 일이 있을까, 차창 밖으로 본 저건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들이 마음을 스칠 때는 반드시 언젠가 거기로 가게 돼요. 이런 곳에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하고 생각하더라도 말이죠. 참 신기한 일이에요. 마치 운명에 이끌리는 것처럼." - p. 127


  야행은 야행열차의 야행이기도, 또 백귀야행의 야행이기도 하다. 함께 축제에 온 동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는 각자 '야행' 동판화와 관련한 기이한 경험이 있음을 알게 되고,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야행'의 모든 작품에는 묘하게 얼굴이 없는 여자가 함께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의 모험담에도 또한 이 얼굴 없는 여자가 함께 나온다.


사실 기시다 미치오 씨에게는 「야행」과 대칭을 이루는 「서광」이라는 비밀스러운 연작이 있다고 했습니다. 「야행」이 영원한 밤을 그린 작품이라면 「서광」은 딱 한번뿐인 아침을 그린 작품이라고 기시다 미치오 씨는 말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동안 기시다 미치오는 그 「서광」을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었습니다. - p. 168


  내가 아는 사람이 정말 내가 아는 사람이 맞을까? 각각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은 사람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혹은 잃어버린 과거 기억 속 누군가가 생각나기도 하며 그 동판화 '야행'시리즈에 갇히거나, 갇혀있음을 깨닫는 등 기묘한 체험담들이다. 그 체험담들을 읽으면 읽을 수록 점점 실체에 가까워지는 '기시다 미치오'.


밤은 어디로든 통해요. - p. 217 

세계는 언제나 밤이었어. - p. 218 

문득 나를 감싸고 있는 어둠이 광대하게 느껴졌다. "세계는 언제나 밤이야."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 p. 220


  교토의 아틀리에에 틀어박혀 야행이라는 수수께끼의 연작을 발표한 화가 기시다 미치오. 그는 3년 전에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한 교토의 야나기 화랑. 그 곳에서 주관해 연작인 '야행'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개인전이 도쿄에서 처음 열렸다.  해가 뜨기 전에 잠들고 해가 진 뒤 일어나는 연속되는 밤의 세계에 살던 '기시다 미치오'. 연작인 '야행'은 모두 마흔여덟 작품인데, 모두 여행지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사실 기시다 미치오는 어디에도 간 적이 없다. 그는 여행을 가지 않았다.


멀리에서 열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문득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한밤중의 세계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듯한 느낌이 덮쳐왔던 것입니다. 그렇게나 밤이 깊고 광대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내가 밤을 헤메고 있을 때 아무리 먼 도시라 해도 같은 밤의 어둠에 싸인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꿈을 꾸고 있다. 이 영원의 밤이야말로 세계의 진짜 모습이지 않을까. 그때 「야행」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 p. 262


  이야기는 '서광'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 그의 유작 중 '서광'이라는 작품은 없었다. 그리고 오하시는 '야행'과 '서광'을 오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서광'이 시작된 밤이기도 했고, 또 '야행'이 시작된 밤이기도 한 그 날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모험담들로 시작해 결국에는 기시다 미치오와 10년 전에 사라진 하세가와에게도 닿게 되던 기묘한 밤.


거기에는 테이블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차창 같았다. 야행 열차 같았다. 설령 창밖에는 어두운 밤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해도 열차 안에는 여행의 동료가 있고, 따뜻한 빛이 있다. 이렇게 긴 밤의 밑바닥을 달리면서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 p. 269


  같은 아침은 한 번도 없었다. 딱 한 번뿐인 아침. 그렇기에 '야행'과 '서광'은 맞닿아 있었다. 실제 지명들이 등장하고 현실과 환상을 계속해서 넘나드는 작품 '야행'. 기묘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음에도 정작 화자들은 오싹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담담해하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더 묘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아름답고 괴이한 밤의 모험'이라는 수식어가 딱 알맞게 느껴지는 '야행'. 여름 밤에 읽을 소설로 꼭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일소설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And Every Morning the Way Home Gets Longer and Longer


  '오베라는 남자'로 유명한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전 작인 '오베라는 남자'와 '브릿마리 여기 있다'를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소외된 인물이 점차 세상과 둥글게 소통해나가던 과정을 인상깊게 그리던 프레드릭 배크만이 이번에는 세상과 작별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기에 기대가 많았다.


지금이 제일 좋을 때지. 노인은 손자를 보며 생각한다. 세상을 알 만큼 컸지만 거기에 편입되기는 거부할 만큼 젊은 나이. 벤치에 앉아 있는 노아의 발끝은 땅바닥에 닿지 않고 대롱거리지만, 아직은 생각을 이 세상 안에 가두지 않을 나이라 손은 우주에 닿는다. 옆에 앉은 할아버지는 어른답게 굴라고 잔소리를 하던 사람들이 포기할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어른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런데 그 나이 역시 나쁘지는 않다.  - pp. 10 - 11


  책은 할아버지와 손자, 아버지와 아들의 작별에 관해 다루고 있다. 알츠하이머 병을 다룬 이야기.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이 세상과 작별하는 법... 이제 백세시대를 향해 가는 시기이니만큼 노인병인 치매를 앓고 있는 주변인도 참 많을 것이다. 가까이는 우리 할머니. 점점 총기를 잃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서 이 이야기가 참 많이 아팠다.


"노아한테 뭐라고 하지? 내가 죽기도 전에 그 아이를 떠나야 한다는 걸 무슨 수로 설명하지?" - p. 31

할아버지는 아이의 사고는 확장되고 할아버지의 사고는 수축돼서 둘이 중간에서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 p. 40

"여기는 내 머릿속이란다, 노아노아. 그런데 하룻밤 새 또 전보다 작아졌구나." - p. 43

"나는 계속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항상 중요한 부분이야." - p. 85


  손자의 이름을 남들보다 두 배 더 좋아하기에 '노아노아'라고 부른다는 할아버지. 그는 하루하루 생각의 광장이 작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된다지만 자아를 상실해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밟아나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점점 기억이 사라지고 세상이 좁아진다. 모두에게 당연한 것이 이제 자신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남자는 가장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인 손자를 붙들고 이야기를 나눈다.


“매일 아침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점점 길어질 거예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이유는 당신의 머리가, 당신의 세상이 남들보다 넓었기 때문이에요. 그게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견딜 수 없을 만큼 당신이 보고 싶어.” - p.98  

"할머니를 잊어버릴까봐 겁이 나세요?" 아이가 묻는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많이." "할머니의 장례식은 잊어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이가 묻는다. 아이는 장례식을 잊어버리는 날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모든 장례식을 잊어버리는 날을. 하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를 젓는다. "장례식을 잊어버리면 내가 할머니를 절대 잊을 수 없는 이유를 잊어버릴 게다." "복잡하네요." "인생이 가끔 그렇단다." - pp. 128-129


  노인은 아들과 손자를 착각하기도 하고 노인은 먼저 보낸 아내를 그리워하며 잊어버릴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만큼 아내에게도 기억속에서 말을 걸며 조언을 듣고 추억을 읊으며 천천히 작별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숫자만 고집하던 노인과 글쓰기를 좋아하던 아들의 세대간의 갈등도 서서히 해소가 된다.


"노아노아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약속해주겠니? 완벽하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되면 나를 떠나서 돌아보지 않겠다고. 네 인생을 살겠다고 말이다. 아직 남아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거든." - p. 133

"그리고 저를 잊어버릴까봐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이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그래?" 아이의 입이 귀에 걸린다. "네. 저를 잊어버리면 저하고 다시 친해질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건 꽤 재미있을 거예요. 제가 친하게 지내기에 제법 괜찮은 사람이거든요." 할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리자 광장이 흔들린다. 할아버지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 p. 134


  세상에서 가장 길고 긴 이별. 노인의 광장에서 손자 노아와 나누는 이야기들로 한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동화같은 책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치매에 걸릴 수 있다. 이미 고연령층이 많은 일본에서는 '엔딩일기' 등등 자신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한 여러가지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한다. 나도 나만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해 생각을 해보고, 이미 그 길로 접어든 주변 분들과 함께 걸어가며 두려움 없이 작별하는 법을 배워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