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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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소설 :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And Every Morning the Way Home Gets Longer and Longer


  '오베라는 남자'로 유명한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전 작인 '오베라는 남자'와 '브릿마리 여기 있다'를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소외된 인물이 점차 세상과 둥글게 소통해나가던 과정을 인상깊게 그리던 프레드릭 배크만이 이번에는 세상과 작별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기에 기대가 많았다.


지금이 제일 좋을 때지. 노인은 손자를 보며 생각한다. 세상을 알 만큼 컸지만 거기에 편입되기는 거부할 만큼 젊은 나이. 벤치에 앉아 있는 노아의 발끝은 땅바닥에 닿지 않고 대롱거리지만, 아직은 생각을 이 세상 안에 가두지 않을 나이라 손은 우주에 닿는다. 옆에 앉은 할아버지는 어른답게 굴라고 잔소리를 하던 사람들이 포기할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어른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런데 그 나이 역시 나쁘지는 않다.  - pp. 10 - 11


  책은 할아버지와 손자, 아버지와 아들의 작별에 관해 다루고 있다. 알츠하이머 병을 다룬 이야기.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이 세상과 작별하는 법... 이제 백세시대를 향해 가는 시기이니만큼 노인병인 치매를 앓고 있는 주변인도 참 많을 것이다. 가까이는 우리 할머니. 점점 총기를 잃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서 이 이야기가 참 많이 아팠다.


"노아한테 뭐라고 하지? 내가 죽기도 전에 그 아이를 떠나야 한다는 걸 무슨 수로 설명하지?" - p. 31

할아버지는 아이의 사고는 확장되고 할아버지의 사고는 수축돼서 둘이 중간에서 만나는 날이 올 거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 p. 40

"여기는 내 머릿속이란다, 노아노아. 그런데 하룻밤 새 또 전보다 작아졌구나." - p. 43

"나는 계속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항상 중요한 부분이야." - p. 85


  손자의 이름을 남들보다 두 배 더 좋아하기에 '노아노아'라고 부른다는 할아버지. 그는 하루하루 생각의 광장이 작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된다지만 자아를 상실해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밟아나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점점 기억이 사라지고 세상이 좁아진다. 모두에게 당연한 것이 이제 자신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남자는 가장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인 손자를 붙들고 이야기를 나눈다.


“매일 아침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점점 길어질 거예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이유는 당신의 머리가, 당신의 세상이 남들보다 넓었기 때문이에요. 그게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견딜 수 없을 만큼 당신이 보고 싶어.” - p.98  

"할머니를 잊어버릴까봐 겁이 나세요?" 아이가 묻는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많이." "할머니의 장례식은 잊어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이가 묻는다. 아이는 장례식을 잊어버리는 날을 꿈꾸었을지 모른다. 모든 장례식을 잊어버리는 날을. 하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를 젓는다. "장례식을 잊어버리면 내가 할머니를 절대 잊을 수 없는 이유를 잊어버릴 게다." "복잡하네요." "인생이 가끔 그렇단다." - pp. 128-129


  노인은 아들과 손자를 착각하기도 하고 노인은 먼저 보낸 아내를 그리워하며 잊어버릴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만큼 아내에게도 기억속에서 말을 걸며 조언을 듣고 추억을 읊으며 천천히 작별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숫자만 고집하던 노인과 글쓰기를 좋아하던 아들의 세대간의 갈등도 서서히 해소가 된다.


"노아노아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약속해주겠니? 완벽하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되면 나를 떠나서 돌아보지 않겠다고. 네 인생을 살겠다고 말이다. 아직 남아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거든." - p. 133

"그리고 저를 잊어버릴까봐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이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그래?" 아이의 입이 귀에 걸린다. "네. 저를 잊어버리면 저하고 다시 친해질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건 꽤 재미있을 거예요. 제가 친하게 지내기에 제법 괜찮은 사람이거든요." 할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리자 광장이 흔들린다. 할아버지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 - p. 134


  세상에서 가장 길고 긴 이별. 노인의 광장에서 손자 노아와 나누는 이야기들로 한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동화같은 책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치매에 걸릴 수 있다. 이미 고연령층이 많은 일본에서는 '엔딩일기' 등등 자신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한 여러가지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한다. 나도 나만의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해 생각을 해보고, 이미 그 길로 접어든 주변 분들과 함께 걸어가며 두려움 없이 작별하는 법을 배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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