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7]
자유가 효도에 대하여 물은 즉 
선생ㅡ "요즈음 효도란 봉양만 잘하면 되는 줄 안다. 그것쯤이야 개나 망아지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존경하지 않는다면 다를 데가 없지 않나!"

子游問孝
子日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자유문호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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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면서 도움을 받은 자료들 가운데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풀빛 1990)과 
『광주, 여성』(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후마니타스 2012),
「우리들은 정의파다」(감독 이혜란), 
「오월애」(감독 김태일), 
「5·18 자살자-심리부검보고서 (연출 안주식)에 각별히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밀한 기억들을 나눠주시고 오래격려해주신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 P-1

어둠과 폭력의 세계 속에 상처 입은 존재들을 섬세하게 그려온 한강의 소설이 5월 광주의 시공간에서 벌어진 잔혹한 학살의 참상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증언하는 자의 소명의식과 듣는 자의 상상력이 치열하게 어우러지는 간절한 고백의 서사는 잊을 수 없는 ‘그 도시의 열흘‘을 고통스럽게 되살린다.
물방울이 내쏘는 햇빛의 파편에도 눈이 시린 순결한 ‘어린 새‘의 흔적을 쫓는 이 소설은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환기하고 있다. 백지연 문학평론가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다. 
한국문학사에서 ‘80년 5월 광주‘는 여전히 그러할 뿐아니라 가장 그러한 소재다. 다만 이제 더 절실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응징과 복권의 서사이기보다는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일 것인데, 이를 통해 한국문학의 인간학적 깊이가 심화될 여지는 아직 많다.
『소년이 온다』는 한강이 쓴 광주 이야기라면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 
이 소설은 그날 파괴된 영혼들이 못다한 말들을 대신 전하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이 자기파괴를 각오할 때만 도달할 수 있는 인간 존엄의 위대한 증거를 찾아내는데, 
시적 초혼과 산문적 증언을 동시에 감행하는, 파울 첼란과 쁘리모 레비가 함께 쓴것 같은 문장들은 
거의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표현으로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이라면 이미 나올 만큼 나오지 않았느냐고,
또 이런 추천사란 거짓은 아닐지라도 대개 과장이 아니냐고 의심할 사람들에게,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둘 다 아니라고 단호히 말할 것이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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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능한 이 세계에서, 무력한 연루자의 신세로,
그저 모든 것을 지켜볼 뿐이다


"왜 야구팬은 이토록 자주, 그리고 유난히 화를 내는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화낼 기회가 많아서다. 그런데도 야구팬은 매일 경기를 본다. 
못하면 못한다고 화를 내고, 잘하면 이렇게 잘할 수있으면서 어제는 왜 못했냐고 화를 낸다. 
경기는 늘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쏟아낸다. 감독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고, 믿었던선수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팀이 아무리 잘해도, 사소한 에러 하나로 경기는 뒤집힌다. 그리고 팬은 온 마음을 쏟아도 경기에 개입할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한 이 세계에서 의미를 붙잡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한다.
그럼에도 팬은 경기를 꺼버리지 않는다. 
한번 마음을 준 이상,
손바닥 뒤집듯 팀을 바꾸지도 않는다. 
절망을 끝까지 지켜보며,
다시 뜰 내일의 태양을 기다린다. 
다만, 화를 내면서 말이다." - P-1

나는 야구 규칙을 하나도 몰랐다. 어느 정도로 몰랐냐면, 공격과 수비의 구분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공을 던지는 쪽이 공격이 아니라 수비란 말인가? 몇 해 전의 나처럼 야구를 전혀 모른 채 이 책을 집어 든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상식적으로, 저쪽에서 먼저 공을 던졌다면 이쪽에서 방망이로 막아내는 게 수비여야 말이 되지 않나? 이런 혼란은 야구라는 스포츠를 본질적으로 오해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잠시 다른 스포츠를 떠올려보자. 근대 이후 체계화된 스포츠 대부분은 전쟁의 형식을 닮았다. 축구와 농구는 수비망을 뚫고 상대편 골문 (적진의 요새)에 공을 넣는 것이 목적이고, 배구는 공(폭탄)을 우리 진영에 떨어뜨리지 않고 받아넘겨 점수를 올린다. 럭비 역시 공을 들고 달려가 상대 골라인을 넘거나 땅에 공을 내리찍으면(승전국의 깃발을 꽂듯이) 득점한다.
펜싱이나 양궁은 말할 것도 없다. 추상화의 단계를 거치지도 않은, 싸움의 원형에 가까운 스포츠니까.

그런데 야구는 좀 이상하다. 두 팀이 번갈아 공격과 수비를 맡는데, 득점의 핵심은 공을 빠르게 던지는 것도, 방망이로 멋지게 쳐내는 것도 아니다. 규칙은 복잡하지만 목표는 단순하다. 안타를 쳐서 달리 - P-1

든,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몰래 도망가든, 어떻게든 최대한 많은 선수가 구장을 한 바퀴 돌아 ‘홈‘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스포츠인가!

야구의 요점을 이해하고 나니 익숙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메로스가 쓴 고대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로 나선다. 귀향길은 단순한 항해가 아니었다. 폭풍우와 해류, 유혹과 음모, 신들의 장난과 괴물들의 방해가 끝없이 이어졌다. 순풍이 불어 멀리 나아가는 날도 있었지만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도 제자리인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동료를 잃어도, 배가 부서져도, 지혜롭게 헤쳐나가 마침내 10년 만에 집으로돌아왔다.
야구도 그런 모험담이다. 전쟁이 아닌 귀환의여정. 타석에 선 아홉 명의 타자는 저마다 한 명의 오디세우스다. 이들의 여정에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고, 기회를 상실할 때마다 그것을 ‘아웃‘이라 부른다.
그 안에 살아남아 홈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표다.
공을 방망이에 빗맞혀 파울이 나면 타석에서 스 - P-1

윙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마치 바위를 산 정상까지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또, 타격 후 다음 베이스를 향해 달릴 때는 절대 망설이거나 뒤돌아봐선 안 된다. 지하세계에서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올 때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던 오르페우스처럼. 그렇게 한 바퀴 돌아 무사히 홈을 밟으면 1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귀환을 막는 수비진은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 투수는 공을 던지는 사람이다. 골리앗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다윗의 심정으로 전력을 다해 공을 던진다. 다만 표적은 미간이 아니라 스트라이크존이다. 때로는 바다 위의 님프 세이렌처럼,
타자의 눈과 마음을 홀리는 변화구를 던져 전진을 방해한다. 타자가 그 유혹을 뚫고 공을 쳐내면, 아킬레우스처럼 날렵한 야수들이 공을 낚아채려 전속력으로 들판을 누빈다. 아, 이 얼마나 신화적인 스포츠인가!

그렇게 신화를 닮은 순간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어느새 경기장 전체가 하나의 극장으로 변모한다.
스릴러 영화가 몰입을 유도하듯, 야구도 관객을 긴장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인다.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그것 - P-1

이 서스펜스다. 야구만큼 서스펜스가 가득한 스포츠는 드물다. 아니, 경기 자체가 승부가 아니라 긴장감을 위해 설계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투수가 마운드에 선다. 포수와 눈빛을 주고받고, 사인을 교환한다. 고개를 젓는다. 다시 젓는다.
이윽고 마음을 정한다. 주먹을 글러브 속에 숨겼다가, 몸을 비틀며 팔을 뻗어 공을 던지는 그 순간, 관중의 기대와 불안이 최고조에 달한다. 스트라이크일까?
볼일까? 아니면 파울일까? 심판이 수신호로 판정을 내리는 순간, 하나의 고비가 일단락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투수가 시선을 다른 곳에 둔 사이, 우리는 2루 주자가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본다. 포수가 마스크를 벗어 젖히고 황급히 공을 던진다. 도루는 성공할까? 실패할까? 서스펜스는 다시 이어지고, 관중은 또 한 번 숨을 죽인다. 아, 이 얼마나영화적인 스포츠인가!

야구의 매력을 알게 된 나는 슬슬 프로야구를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중계를 해주는 플랫폼에 접속해, 닥치는 대로 경기를 보며 규칙을 익혔다. 나는 운동신경도 떨어지고 경제관념도 희박하지만 호기심과 집중력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 P-1

이긴 걸로 충분해

야구는 시간제한 없이 ‘초‘와 ‘말‘로 나뉜 아홉개의 이닝을 소화하면 끝나는 경기다. 
9회 말은 홈팀의 마지막 공격이다. 그런데 9회 초가 끝났을 때 이미 홈팀이 1점이라도 앞서 있다면, 9회 말은 생략된다.
경기를 그대로 끝내버리는 것이다.
두 팀이 공수 교대를 반복하며 점수를 겨루는스포츠 중 이런 규칙을 가진 건 내가 아는 한 야구이다. 이긴 팀 입장에선 점수를 더 낼 기회가 있음에도 그냥 판을 덮는 셈이다. 
고스톱으로 치면 손에 좋온 패를 쥐고도 ‘고‘를 외치지 않고 ‘스톱‘하는 것과 같다.
프로야구에서도 득실 차는 순위에 영향을 미친다. 이득을 따진다면 불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야구는 그 중단을 손해라고 보지 않는다. 이미 패배가 확정된 상대에게서 점수를 더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고? 오늘은 이긴 걸로 충분하니까.


당신 손으로 직접

믿음직한 선발투수를 내세워도, 그 어깨에 모든걸 맡길 순 없다. 타자 한 명은 안타를 쳐도 괜찮다. 뒤에 여덟 명이나 대기 중이니까. 하지만 선발투 - P-1

수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혼자서 몇 이닝이고 경기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때 감독은 타이밍을 보고 과감히 교체를 결심해야 한다.

 한 이닝이라도 더 던지고 싶어 하는 투수, 조금만 더 믿어주면 상황을 만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투수라도, 현명한 감독이라면 결연히 끌어내려야 한다.

축구장에서는 호루라기 소리와 전광판 안내로 교체가 이루어진다. 야구는 다르다. 감독이나 투수코치가 직접 마운드로 걸어간다. 멀리서 자신을 향해오는 감독을 본 투수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지만,
이내 공을 내어준다. 
수고했다며 궁둥이를 툭툭 두드려주는 손길. 야구에서 교체는 그렇게, 손으로 직접 이루어진다.


최고의 피아니스트처럼

야구를 잘 몰랐을 땐 타자가 섹시해 보였다. 거침없이 배트를 휘둘리 파울이라도 날려 보내면 관중은 탄성을 터뜨린다. 야구의 묘미를 알고 나신 투수의 매력에 취향저격 당했다. 홈런을 맞을까 봐 피하지 않고, 삼구삼진에 영혼을 걸 줄 아는 게 바로 낭만투수다.

그런데 야구를 보면 볼수록 포수만큼 낭만적인 - P-1

포지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포수는 경기의 전체 흐름을 읽을 줄 알고, 투수를 다독여줘야 할 타이밍을 안다. 
언제나 묵묵히 투수 뒤에 서 있지만, 포수가없다면 투수도 없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2023년 겨울, 오랜만에 열린 콘서트에서 가수 이소라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크게 동요했다. 이소라 언니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야구에 빠졌다니. 어슴푸레한 무대에서 그는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구가 노래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하모니를 이루고 있더라고요. 마치, 제가 어떤 노래를 던져도 이분이 훌륭하게 다 받아주시는 것처럼요."
무대 한쪽에는 그의 오랜 동료, 피아니스트 이승환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서 있었다.


도루에 살고 도루에 죽고

나는 늘, 앞섶이든 등판이든 유니폼이 시커먼흙투성이인 선수를 보면 마음이 움직인다. 
그런 선수는 삼진을 당해도 1루까지 달린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냥 뛴다. 도루할 때도 대충 하는 법이 없다. 베이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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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강의에 영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것이 첫째이유다. 전쟁 바람에 서재에 박혀 있던 책들이 쏟아져 나와 청계천을 따라 4가에서 7에 걸쳐 늘어선 고서점에 산더미로 쌓여 있던 시절이다. 헌 책을 뒤지는 일도 재미있었지만 운만 좋으면 이미 금서가 되어 시중에서 자취를 감춘 귀한 책들을 싼값에 살 수 있다는 덤도 있었다. 
백석의 <사슴>, 가와카미 하지메의 <가난 이야기>, 그 밖에 백남운, 전석담 등의 책을 구해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고서점 순례 덕이다. 고서점에서 여러 친구들과도 알게 되었는데, 이 친구들로부터도 많은 것을 듣고 배우면서 나는 새로운 세상에 서서히 눈떠 갔다.

당시 서울은 전쟁의 참화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맨 불타거나 허물어진 집뿐이었고, 가는 데마다 팔다리를 잃은 상이군인이며 오갈데 없는 거지들이 득시글거렸다. 
서울역 일대와 종로 2, 3가는 창녀로 뒤덮였고, 서울역이며 각 버스 정거장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려드는 젊은이들로 밤낮없이 혼잡을 이루었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는가는 당시의 우리 국민소득이 50달러인 데 비해 북한은 160달러, 필리핀은 300달러라는 한 자료가 잘 말해 준다. 산업 시설이라고는 전국적으로 전무해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고는 빗자루밖에 없다는 자조의 비아냥이 나올 지경이었다. 

경제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승만 독재는 더욱 극성을 부리고 독재 체제라는 온상 속에서 부패는 극에 달하면서 가난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조롱했다. 경제 - P-1

고 정치고 나아질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전국을 어두운 먹구름이 뒤덮고 있었다. 고서점에서 만나는 책과 친구들은 나로 하여금 이러한 현실에 새삼 눈을 돌리게 만들었고, 나는 차츰 회의에 사로잡혔다. 

이런 현실에 살면서 <갈대> 같은 오늘의 삶과는 동떨어진 시를 쓴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뒤에도 <심야>, <사화산>, <그 산정에서>, <유아> 같은 몇 편의 시를 더 써서 발표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시 쓰는 일이 점점 재미 없어지고 신명이 나지 않았다. 마치 헛발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허망함을 좀처럼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다른 여러 사정까지 겹쳐 7, 8년 가까이 방황하면서 시를 쓰지 못하게 됐다. 그동안 시를 버리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돈벌이를 하겠다고 광산에서 일하는 친구를 찾아가기도 하고 장사하는 친구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무슨 시험을 치르겠다고 공부를 해 보기도 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기도 했지만나한테 만만한 일은 없었다. 새삼스레 깨달은 것은 내가 가진 재주라고는 그나마 글 쓰는 일이라는 사실이었으며, 그렇다면 앞으로는 시를 쓰되 지금까지와는 달리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시,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의 삶이 담긴 시를 쓰자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시 쓸 생각을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일 먼저 쓴 시가 <눈길>이다. - P-1

나는 예순이 넘은 지금도 자유, 정의, 인권, 이런 말을 들으면가슴이 일렁인다.

노무현 이름을 들어도 그러하다.
그에게서 희랍 비극의 원형을 본다.
제왕이나 천재가 주어진 거대한 운명에 맞서다가 장렬하게 산화하는 비극으로부터 인간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인권‘을 열 걸음쯤 나아가게 한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이라기보다 시인에 가깝다. - P-1

일본은 군국주의 세력을, 한국은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후과가 오늘의 위험한 우경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 집착하는 한일 양국의 극우 세력은 일본 제국주의의 쌍생아로 국가주의라는 동일한 목표 아래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적실하다 하겠다. 

그러고 보면 박근혜의 강경한 대일 외교는 국내 정치와 함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지 근본적인 역사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밖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비판하면서 안으로는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보다 더 왜곡이 심한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를 극찬하고 노골적으로 교학사 교과서에 특혜를 베푸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단 말인가. 

2006년 3.1절 기념사에서 노무현은 말했다. ‘이웃나라에 대해 잘못 쓰인 역사를 바로잡자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서는우리 역사도 잘못 쓰인 곳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노무현의 역사 인식과 실천적 면모는 민족문제연구소로서도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적어도 역사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도 놀랄 정도로 그 지향이 민족문제연구소와 일치하였다. 아니, 오히려 앞서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의 추측과는 달리 그가 개인적으로 연구소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거나 교감을 하던 관계는 아니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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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모으면 ‘수집‘이라고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무언가를 모으면 ‘집착‘이라고 합니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앉아서 다리를 떨면 ‘습관‘이라고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떨면 ‘상동행동‘이라고 합니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 ‘감정 표현‘이라고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소리를 지르면 ‘도전적 행동‘이라고 합니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그림을 잘 그리먼 ‘재능‘이라고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그림을 잘 그리면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그 무엇이 발달장애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우리는 발달장애에 관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 것일까요? 
25년 동안 발달장애를 공부하며 발달장애 어린이와 발달장애 성인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만나오면서 
고민했던 문제들과 나름의 답에 관하여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발달장애와 발달장애인의 삶에 관해 알고 싶은 분들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한 작은 생각들을 담은 책입니다. 
더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발달장애와그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알리고 싶어 부족한 글을 함부로 세상에 내놓습니다. - P-1

나오는 글
자녀를 대신해 발달장애 부모님들께 드리는 편지

내가 음식을 씹게 하려고 
끝없이 나와 싸워주었고
의사와 치료사, 교사와 복지사들에게
수백, 수천 번 나를 설명해야 했고
나를 미소 짓게 하려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숨겨야 했고
헤아릴 수 없이 긴 치료와 교육의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여전히 내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인내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당신

내가 하루를 무사히 보내게 하려고
당신의 하루는 한 시간처럼 보내는 당신
내가 넘어져도 괜찮은 자리를 위해 - P-1

자신이 넘어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당신
장애 진단이 당신에게 가져다주었을
고통, 억울함, 그 두려움에도
어느 날 다시 일어나며
"우린 할 수 있을 거야!"라고 결심해준 당신

이 길고도 거친 나날들이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음에도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을
여전히 내려놓지 않고
짊어지고 계신 당신

학교에서 걸려 온 전화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복지관에서 걸려 온 전화에
울화가 치밀어도
다시금 나를 그곳에 보내야만 하는 당신

내가 그렇게 발작을 하고 울부짖어도
그건 진짜 내가 아님을 이해해 주는 당신
내가 손을 뿌리치고 당신을 모른 척해도 - P-1

산산이 부서지는 마음을
내게 보이지 않으려는 당신
당신이 매일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당신을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동정해도 참아내는 당신

내 작고 작은 성취 하나에도
마치 세상에서 내가 처음
그 일을 해낸 사람인 양 기뻐하는 당신

이제 아무 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느낄 때조차
다시 내 손을 잡고 일어서는 당신
내 친구들과 그 엄마들에게
끝없이 나를 설명해야 할 때도
나를 부끄럽게 여긴 적 없는 당신

내가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한순간도 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는
당신은 언제나 나의 울트라 슈퍼 영웅입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아 줘서 - P-1

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아 줘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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