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하나 하나가 시적이면서도 만연하고, 비유적이면서도 의미가 분명하다. 다만 서사의 맥락은 불친절하기가 이를데 없다. 알 수 없고 내가 작용할 수 없는 원리로 움직이는 곳에서 헤매는 느낌이다.


갑자기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데, 동쪽 하늘은 뒤늦게 제 소임을 떠올린 양 이제야 막 훤해지는 중이다. 어둑한 지평선이 불그스레하게 물든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거지가 교회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가슴 아픈 모양으로 태양이 떠올라, 흡사 빛으로 세상에 그림자를 드리우겠다고 다짐하는 듯이, 간밤의 하나같이 차갑고 강고하던 어둠 속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속박돼 있던 나무와 땅과 하늘 그리고 짐승들과 인간들을 마침내 분리하여 풀어준다. 그러고는 패망하여 절망한 군대처럼 아직도 도주 중인 밤과 밤의 끔찍한 요소들이 하늘의 경계 너머로, 서쪽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광경을 태양은 가만히 응시한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좀 외로워 보였어.
상연이도. 상연이 방도.˝

이 대사가 좋았다. 특히 ‘집‘이 아니라 ‘방‘이라고 말해서 그랬다. ‘집‘은 추억과 기억이 쌓이고 성장하는 공간이지만, ‘방‘은 견디고 생존하는 공간이다.

집은 가족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함께 지내지만, 방은 쓸쓸하고 고독한 인내의 공간이다.

HOUSE I USED CALL HOME 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WILL JAY의 노래이다. 이사 하기 전날 새로 들어올 사람에게 말하는 내용의 가사이다.

나는 내 추억을 잘 싸서 이 집을 떠날께요. 당신이 새로운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다만 내가 기어다녔다던 바닥과 첫발을 딛었던 2층 복도, 첫 키스를 했던 가로등 아래 그 장소들을 잘 보살펴 달라

이런 내용이다.

아마도 작가가 ˝상연이도 상연이 ‘집‘도˝, 라고 써야 할지, ˝방˝이라고 해야 할지, ˝상연이가 있는 ‘그곳‘˝이라고 대명사를 써야 할지 고민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초라한 방을 집으로 만들어 준 기억들이 새삼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지만 느낌이 이상하다.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 그녀가 사용하는 표현들, 이를테면 ‘잔인한’, ‘야만적인’, ‘무정한’ 같은 표현들이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들은 그 모든 걸 촉발시킨 오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공황과 혼란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떨림, 땀, 서늘한 공포도 빼놓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용의자를 붙잡았다는 사실이다! 현재 경찰이 심문 중이라고 한다. - <액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삶에서 중요한 건 머리카락이 아닙니다." 나는 그때 그렇게 말했는데, 반만 농담조였다. 그 말은 사실이지만, 머리카락은 삶을 말해 준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머리카락은 육신이라는 초의 불꽃이고, 그 불꽃이 잦아들면 육신도 쭈그러들어 녹아 없어진다. 한때 정수리에 높이 틀어 올려 묶는 머리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나도 따라 할 만큼 숱이 있었다. 올림머리의 시대에는 뒷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올렸다. 그러나 이제 내 머리카락은 아르두아 홀에서 우리가 먹는 끼니 같다. 듬성듬성하고 부족하다. 내 삶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있다. - P-1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구니 2025-10-04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녀이야기>에 이어서 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을 읽고 있는데 정말 철학적인 책이다. ‘머리카락은 육신이라는 초의 불꽃‘이라니! 나 또한 내 삶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있다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도 요 몇 년간은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왔다든가 어디라든가 아무튼 맥주 효모로 만든 알약을 주신 분, 적외선 나오는 헬맷을 빌려주신 분, 이런 훌륭한 분들 덕분이다. 이분들은 특별히 추석을 잘 보내시길^^

광주행 버스를 탔다. 한 다섯 시간 정도 걸리려나?
 
[전자책] 김민수전
정재영 지음 / 온리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지만 그는 잘 잊을 수 없었고 이는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어떤 건물을 보거나 어딘가를 지나가거나 어떤 냄새를 맡거나, 어떤 달이나 날짜가 오면 떠오르는 과거의 고통스런 일들에 그는 어려움을 겪곤 했다."

-알라딘 eBook <김민수전 86p> (정재영) 중에서-

며칠 전에 읽었던 소설 <김민수전>에서 주인공 김민수에게 처음 매료되었던 문장이었다. 나는 아주 가깝게 지냈던 사람 중 이런 사람을 몇 명 알고 있다. '3년 전 OO동 까페 안쪽 자리에 앉아서 상호가 말 한 다음에 네가 그 문제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잖아. 그런데 지금 말은 그때와 모순이 있는 것 같은데?' 대화가 이런 식이면 나는 그 상대들에게 곧 질리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들도 이 미친 기억력 때문에 괴로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었다. 가끔은 괴물취급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감추기도 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내가 한 말과 행동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이는 걸까, 아니면 말라 비틀어져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일까? 사람은 기억하는 족속에 가까울까, 망각하는 쪽에 가까울까? 김민수라면 '사람은 ~이다'라고 규정하는 주사파식 관념론적 문장에 반대의견을 피력할 것이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마르크스의 여섯 번째 테제를 인용하며 말했을지 모른다.
"인간의 본질은 어떤 개개인에 내재하는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이다(김민수전 203p)"

그러나 인간의 본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김민수라는 소설 속 주인공의 특성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겠는데, 김민수는 잊어도 좋을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인생이 괴로울 정도로, 잘 잊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자신이 겪었던 사건, 배신, 부조리와 방황에도 불구하고 무려 30년 동안 기억과의 투쟁속에서 승리한 한 사람의 복귀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민수는 서대문구 안산 자락과 종로구 인왕산 자락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며 이른 나이에 의식화가 된다. 탁월한 기억력의 소년은 서울대에 입학하여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을 접한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나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등을 접하고 비판적 이성을 키우던 김민수는 의외로 처음부터 학생운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신입생때는 소개팅으로 만난 김유정과의 연애에 빠져있었다. 다른 동기들이 유행처럼 데모에 나섰다가 시들해지기 시작했을 때 그는 더욱 진지해졌다. 그러다 함께 세미나 하던 친구들과 읽은 <사람됨의 철학>을 비판하는 문건을 작성한다. <주체사상에 대하여 비판>을 쓴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따돌림과 적대를 경험하고 혼란에 빠진다. 1989년에 전교조가 출범했다. 수 많은 해고자가 나왔고 정권은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해 전대협은 평양축전에 학생대표를 파견하여 통일운동을 절정으로 몰고갔다. 전교조에 대한 엄호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김민수는 이 단식농성에 참여했고, 그 직후에 입대했다. 전역 후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김민수가 할 수 있는 일은 민중당과 백기완에게 표를 던지는 일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졸업 후에 김민수와 김유정은 괜찮은 대기업에 취직을 했고 결혼을 했다. 그러나 둘의 평탄한 삶을 IMF는 가만히 두지 않았다. 둘은 나란히 퇴사를 했고, 민수는 학원가에 들어갔다. 훌륭한 영어강사였던 김민수와 그의 학원은 크게 성공하지만 학원의 실권자였던 학생운동 선배는 불투명한 학원운영에 협조하지 않는 김민수를 밀어낸다. 그는 학원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배척과 배신을 경험한 것이다. 이때 학원 선배는 학원 돈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했고, 그 자신이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학원에도 지금은 586이라 부르는 '그들'이 있었다. 김민수는 이제 학원을 정리했다.

민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말과 글을 매개로 정치에도 개입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아마도 이 책은 작가 정재영이 김민수라는 인물을 빌어서 '나는 어떻게 해서 다시 돌아왔는가'라고 자문한 후에, 스스로 대답을 하는 내용이다. 이제 나이 50이 넘은 정재영이 30년간의 생을 정리하고 평가한 글이다. 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작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정치에 관심을 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을 그가, 책읽고 영화보고, 개콘과 1박2일에 빠져 분을 삭였을 그가, 30년의 생을 정리하여 다시 세상에 던지는 출사표였구나 하는 생각에 나의 격정도 꿈틀거렸다. <김민수전>은 옛날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80년대 학번 아저씨의 후일담 이야기가 아니었다. 연재 초기에는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이렇게 정성들여서 자신의 세대와 자신의 운동과 삶을 돌아보고 불필요한 관계와 단절을 해내며 새로운 삶을 기획함으로서 시대를 살아갈 준비를 해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너무 좋은 작가가, 기다렸던 사람이 우리에게 왔다.

이 책을 완독하자 마자 내 머리에 딱 떠오른 소설과 영화가 있었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그리고 샐린저의 일생을 그린 '호밀밭의 반항아'였다.
샐린저는 이 소설을 세상에 내놓고 일약 스타가 된다. 그가 그려냈던 홀든 콜필드는 어른들의 시시한 세상에서 탈출해 서부로 떠나지만 그곳에서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병원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의 이 반항 소설은 존 레넌 살해범이 끝까지 손에 쥐고 있던 책이기도 했고, 캐네디 대통령 암살범 오스왈드도 이 책을 좋아했다 한다. 출판된 시기의 청소년들이 경전처럼 읽었다고도 한다. 나는 누구나 방황을 한다고 생각한다.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 방황과 자신의 반항을 함께 마감하기 마련이다. 그 다음부터는 적극적으로 순응하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방황을 마감하며, 본격적인 저항의 서사를 써내려간다. 샐린저는 순응하는 삶의 위선과 시시함을 말한 것이다. '호밀밭 한켠에 비록 낭떠러지가 있지만 내가 그곳을 지키고 있을게. 맘껏 휘젓고 다니렴'이라는 메시지는 대단한 울림이었다.
그러나 샐린저는 책에서 말한 것과는 달리 죽을 때까지 은둔생활을 이어갔고 세상에 섞이지 않았다. 이래서야 파수꾼이라고 할 수 있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정재영은 <김민수전>에서 말한대로 은둔이 아니라 반항의 삶으로 돌아왔다.

민음사가 펴낸 문학전집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 <호밀밭의 파수꾼>이고 그 다음이 <데미안>이라고 한다. 각각 50만부와 37만부 팔렸다. 두 책 모두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제 진보정치/사회운동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성장소설 하나 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