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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 - 흙 묻은 손, 마음 담은 글
이동호 지음 / 책이라는신화 / 2025년 3월
평점 :
흙 묻은 손, 마음 담은 글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를 읽고
이동호 선생님께.
이동호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를 읽은 독자입니다. 선생님의 책을 읽다 보니 마치 제가 편지를 받은 것 같아 저도 답장을 띄워 봅니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며칠 따뜻하더니, 오늘은 대설주의보가 내렸습니다. 3월 중순에 이렇게 많은 눈이라니요. 설레던 봄을 뒤로하고, 겨울이 끝내 자리를 내어주기 싫은 듯 심통을 부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 산책을 나서니, 나무 위 10cm가량 쌓인 눈이 햇살에 반짝이며 장관을 이루더군요. 하지만 습설(濕雪)은 100년 된 소나무 가지도 꺾어버릴 만큼 무겁다지요. 봄은 이처럼 힘겹게 찾아옵니다.
농부님께선 “농업은 철학”이라 하셨지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이는 일이라서일까요.
3월 초순, 시골 부모님 댁에 갔을 때 이웃집에서 봄배추를 심고 계셨습니다. 5월 출하를 목표로 키우는 이 배추가 농부들에게는 중요한 소득원이라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같은 폭설이 그 배추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 되더군요.
농부님의 글을 읽으며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제 부모님도 평생 흙을 만지며 살아오셨거든요. 정성을 입히고, 욕심은 덜어내며, 지혜를 더하고, 결실을 나누는 일. 그것이 곧 농사라는 걸 알기에, 농부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아침이면 꿀벌에게 문안 인사를 가신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추운 날엔 벌통을 이불로 덮어주고, 아침에는 벗겨준다고 하셨지요. 저희 부모님도 몇 해 전부터 마당에 날아든 벌들을 정성껏 돌보고, 뒷산에 벌통까지 만들어 키우셨거든요. 작년 겨울엔 꿀도 몇 병 수확하셨고요. 하지만 올겨울 유난히 매서운 추위를 이기지 못했나 봅니다. 부모님이 벌들이 다 죽었다며 안타까워하시더군요. 농부님의 글을 읽으며, 부모님이 벌을 돌보는 방법을 좀 더 아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농부님은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교직에 계시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기 시작하셨지요.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자연과 벗하며 몸을 움직이는 길을 택하신 용기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책 제목에 ‘고독한 농부’라 하셨지만, 논밭을 배경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시는 모습이 제겐 ‘고독’보다는 ‘현명한(낭혜한) 농부’로 다가왔습니다.
냉이는 이제 끝물일 테고, 달래가 올라올 때겠지요. 달래 넣은 된장찌개가 떠오릅니다. 농부님께선 두부에 달래간장을 곁들여 막걸리 한잔하시면 좋겠고요.
“그 누구라도 3월이 오면 한번쯤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볼 만합니다. 현재 삶이 고달파도 한때는 누구나 시인 아니었던가요?”(p.19)
농부님의 말씀처럼, 저도 남은 3월을 시인의 마음으로 보내고 싶습니다. 제 소임을 다하면서요. 농부님도 농사짓는 시인으로 이 봄을 찬란하게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흙 한 줌의 이야기, 또 기다리겠습니다.
2025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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