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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사람이다 - 꽃 내음 그윽한 풀꽃문학관 편지
나태주 지음 / 샘터사 / 2024년 1월
평점 :
2012년 광화문글판에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소개되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에 따스한 격려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희망보다 절망이 많았던 그 시절의 내게도 '풀꽃'은 큰 힘이 된 글이다.
풀꽃 시인으로 불리는 나태주 시인의 새 산문집 <꽃이 사람이다>를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시골에서 자랐기에 들꽃을 많이 만지고 놀았다. 진달래꽃(참꽃) 꽃잎을 따서 맛도 보고 토끼풀로 시계와 반지를 만들어 차고 다니기도 했다. 11살쯤이었으려나. 한 번은 손톱에 뭐라도 바르고 싶었던가 보다. 매니큐어는 없으니 애기똥풀을 써 봤다. 애기똥풀의 줄기나 잎을 자르면 노란 유액이 나오는데 그걸 손톱에 발랐다. 독한 냄새에 놀라서 그 뒤로 애기똥풀 근처에도 안 가게 되었는데 모든 게 그윽한 추억이 되었다.
나태주 시인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주 풀꽃문학관이 2014년 문을 열었고 2024년은 1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이 책은 풀꽃문학관에서 십 년 동안 꽃을 심고 가꾸면서 느낀 단상들의 기록이다. 봄부터 여름이 시작되는 즈음까지의 이야기인데 그 시간에 피는 꽃들이 참 많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꽃'이 당연히 떠오른다. 나태주 시인이 그 많은 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때맞춰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정성을 쏟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시인에게 꽃은 사람이다. 꽃씨가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심지도 않은 꽃이 풀꽃문학관에 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꽃으로 보는 사람에겐 꽃이고 잡풀로 보는 사람에겐 그냥 잡풀일 뿐이지만 시인에게는 하나같이 애틋한 생명이다. 아기 꽃이 어른 꽃으로 자라 꽃을 피우는 그런 생명의 연결고리가 고맙고도 안쓰럽다는 그 마음에 충분히 공감한다.
풀꽃문학관에서는 방문객들 발걸음이 느리고 작아진다고 한다. 모두들 풀꽃을 들여다보며 눈을 맞추고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시간이 아닐까.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걸음이 빠르고 바쁘다. 무언가에 쫓기듯 걷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때로는 우울하고 힘들기까지 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 마음속에 피어 있는 꽃들도 찬찬히 들여다볼 때가 되었다." (P.205)
어떤 책은 당장 뭐라도 해야 된다는 동기부여를 일으킨다. <꽃은 사람이다>는 잠시 멈추고 숨 고르기 하는 시간을 안겨주는 책이다. 하찮고 작은 것들에도 따뜻한 눈길을 주고 싶어진다.
우리는 모두 꽃이다. 올봄에 나는 무슨 꽃으로 살아갈까 생각해 본다. 녹지 않은 눈 위로 강인하게 피어나는 노란 복수초가 좋을까. 아니면 '좋은 소식'이라는 꽃말을 가진 아이리스로 피어날까. 기다린다. 우리들 마음속에도 따뜻한 봄이 오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