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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ㅣ 책세상 세계문학 11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대 옮김 / 책세상 / 2024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싯다르타』라는 책의 제목은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붓다의 본명인 ‘고타마 싯다르타’에서 따온 것이다. 고타마는 성이고 ‘싯다르타’는 이름인데 헤르만헤세는 그의 작품 『싯다르타』에서 고타마와 싯다르타를 두 사람으로 분리하여 이야기를 전개 시킨다. 인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수행한 친구 고빈다와 이곳, 저곳을 떠돌며 수행하는 사문이 되고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길을 떠난다. 싯다르타는 스승으로 모셨던 사문들과 함께 오랜 시간 떠돌며 수행하다 결국에는 어떤 설법과 가르침도 스스로 깨닫지 않는 이상 지혜로써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수많은 학자와 사문들 중에서도 자신의 깨달음을 대중에게 전파하여 수천 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세존 고타마를 만나고 그의 설법을 직접 듣기도 하였지만, 세존의 설법과 가르침을 포함하여 온갖 가르침과 스승을 떠나 오직 스스로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유에서 친구 고빈다와 이별하고 싯다르타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구도의 길을 찾아 다시 떠난다.
그러다 여인 카밀라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사랑을 얻고자 부유한 상인 카마스와미와 동업을 하게 되면서 돈벌이와 사소한 즐거움, 하찮은 명예, 세속 안에 오래 머물렀다. 세속 안에 머무르는 수년동안 싯다르타는 스스로 알지는 못했지만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고, 그들의 삶을 동경했으나 그럴수록 그의 삶은 더 불행하고 비참해졌다. 싯타르타는 세속의 삶이 자신이 찾는 진리와 맞지 않음을 뒤늦게 깨닫고 내면의 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지만 세속에서의 삶에 얼룩진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강에서 생을 마감하려 한다.
그때 우연히 잠이 들어 꾼 꿈에서 우주의 근원적 진리와 지혜를 깨우치는 ‘옴’의 소리를 듣게 되면서 다시 정신을 차린다. 잠에서 깨어난 싯다르타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처음 이 강을 건네주었던 뱃사공을 찾아간다. 싯다르타는 강으로부터 삶의 깨달음을 얻어 구도하게 된 뱃사공 바주데바의 집에 머물며 제 자리를 찾은 듯 매일 강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수행하는 평온한 삶을 누리다 우연한 계기로 카밀라 사이에 태어난 아들과 강가에 함께 살게 되면서 다시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지혜와 진리는 온갖 가르침과 스승을 떠나 오직 스스로 깨우쳐야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평생에 거쳐 몸소 배운 싯다르타지만 아들 앞에서는 그도 세속의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었다.
자신의 진심과 정성 어린 기다림으로 도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아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결국 아들은 싯다르타를 견디지 못하고 그로부터 도망쳐 도시로 떠난다.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음에도 아들만큼은 쉽사리 놓지 못하던 싯다르타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쫓아가지만, 아들의 모습을 놓치고 만다. 이야기는 이처럼 일생에 거쳐 얻은 깨달음을 친구인 고빈다에게 전하는 형식으로 매듭지어지는데,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의 인생을 통해 불교의 철학과 동양 사상에 대한 진리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나는 기독교든 불교든 특정 종교를 믿지 않지만 『싯다르타』가 꼭 종교적인 진리만을 논하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싯다르타』는 헤르만 헤세가 일 년 반 동안 창작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정신치료를 받은 후에 발표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가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 그의 수많은 작품을 집필하는 과정, 싯다르타와 마찬가지로 그가 살아온 일생을 통틀어 깨우친 진리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누구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욕망과 충동을 넘어 내 존재 속에 있는 가장 내밀한 나의 자아를 발견할 때 헤르만 헤세와 싯다르타가 전하고자 했으나 절대적으로 전할 수 없었던 깨달음을 우리 역시 스스로 깨우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