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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웬디 코프 지음, 오웅석 옮김, 유수연 감수 / 윌마 / 2025년 4월
평점 :
나름 꾸준히 독서를 해오고 있지만 소설에 편중된 독서 습관을 바꾸고자 작년 여름부터 시집 읽기에 도전하며 안희연 작가님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읽었다. 짧지만 강렬한 시의 힘을 처음으로 느끼게 됐는데 소설처럼 길게 풀어쓰는 글보다 짧고 단순한 운율 속에 함축된 의미를 담아내야 하는 시가 오히려 더 쓰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후에 실제로 글쓰기 모임에서 나도 시 쓰기에 도전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시를 쓰는 시인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으며, 국내의 시집도 자주 접하지 않던 내가 처음으로 해외 시집을 읽게 됐다. 강렬하고 상큼한 오렌지빛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웬디 코프의 『오렌지』였다.
작가인 웬디 코프는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 시인으로 1986년 첫 시집인 『Making Cocoa for Kingsley Amis』로 데뷔한 이후 유머와 현실적 감각이 어우러진 시로 여러 세대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The Orange』를 대표작으로 널리 사랑받는 시인으로 자리매김 했다고 한다. 2010년에는 대영제국 훈장(OBE)을 받으며 현대 영국 시문학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시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를 어렵게 느끼기 마련인데, 웬디 코프의 시는 일상의 평범한 사건들과 언어를 사용해 쓰이기 때문에 굳이 어렵게 함축적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유쾌하면서 진지한 시들을 읽을 수 있다. 그 솔직함과 가벼움으로 인해 시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웬디 코프의 시가 너무 가볍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피로가 만연한 시대에 이렇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시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느낀다. 요즘은 TV만 틀어도 복잡한 시사 프로그램보다 일상의 웃음을 담은 예능이 다반사고 유튜브도 평범한 사람들의 V-log가 유행하기에, 이 시집은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즐길 수 있다는 측면에 특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외국 소설을 읽을 때 그들의 문화를 몰라 웃거나 울지 못하는 문장이 있다고 느껴지는 경험이 많았는데 『The Orange』는 그런 부조화 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나처럼 처음 해외 시집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