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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사람 -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
샌디프 자우하르 지음,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8월
평점 :
내가 알던 사람
샌디프 자우하르
저자의 아버지인 인도계 미국인 과학자 프렘 자우하르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건망증 정도의 사건에서 건망증으로 치부하기에 심상치 않은 징후들의 과정을 거치며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인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 심장내과 의사인 그의 아들 샌디프 자우하르인 저자는 아버지의 알츠하이머를 의심하게 된 순간부터 무려 7년에 거쳐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내어 이 책에 담았다. 알츠하이머라는 단어만 봐도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가슴이 아플지 걱정이 앞섰는데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보다는 덤덤한 말투에서 느껴지는 현실적 고뇌가 먼저 다가와 독자인 나조차도 공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저자가 의사이기 때문인지 아버지의 퇴화된 ‘뇌’에 관한 탐구가 곳곳에 실려있어 기억과 뇌의 퇴화에 대한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알츠하이머의 발병원리와 진행 과정, 치료법의 한계 등 의학적 지식이 없는 우리도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이해와 경험은 전혀 다른 영역이기에 바로 옆에서 아버지를 간병해야 하는 가족 구성원들과의 갈등과 환자와 가족, 그리고 그 너머의 사회가 갖는 책임까지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만 하는 숙제를 내게 남긴다.
샌디프 자우하르의 <내가 알던 사람>을 읽으며 떠올랐던 한국의 책은 올해 4월에 읽었던 김봄 작가의 <우파 아버지를 부탁해>였다. 70대 아버지를 간병하게 된 작가가 들려주는 돌봄 노동 이야기, 그리고 간병으로부터 이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과 의료 현장의 모순, 그 모든 걸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 사회의 부조리함까지 <내가 알던 사람>과 <우파 아버지를 부탁해>는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들을 보여준다.
꼭 알츠하이머가 아니더라도 이미 인구의 무려 20%가 노년층인 현대 사회에서 미래의 가족 간병이나 돌봄 노동은 이제 필수적으로 예언된 일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요즘은 암보험 다음으로 중요하게 떠오르는 게 바로 간병인 보험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간병과 돌봄으로 환자와 가족이 겪는 심리적 고통과 좌절감 그리고 개인과 가족을 넘어 고령화 사회에서의 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필요성을 두 책 모두 강조하고 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잊어버리는 알츠하이머의 끔찍한 특성 앞에서도 그들을 잊지 않고 지켜내고자 하며 기억을 모두 잃은 인간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들의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는 변함이 없으며 우리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영원히 그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