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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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인간은 제각각 삶의 추를 가슴에 달고 있습니다. 추의 무게도 사람마다 제각각이지요. 나이가 어리다 하여 나이가 많은 이들보다 반드시 가벼운 삶의 무게를 지닌 것이 아니니

 

  - 까치에게 이르노니(능운의 시에서 차운하다)

        달이 뜨면 오마고 약속하고 가신 님이면,
        님 계신 곳은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뜬다 위로하면 될 터이고,
        꽃이 피면 오마고 약속하고 가신 님이면,
        님 계신 곳은 봄이 늦어 꽃이 더디 핀다 위로하면 될 터인데,
        까치야! 부질없는 너의 노래로 위로 삼는 탓은,     

        아무 약속도 않고 가신 나의 님을 차마 원망할 수 없음이다. 

 
  - '율곡전서' 임금은 나라에 의존하고, 나라는 백성에 의존한다.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지만, 백성은 식(食)을 하늘로 삼는다. 백성이 하늘을 잃으면 나라가 의존할 데를 잃어버리게 되니 이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 '장자' 교비비고(交臂非故) :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두 손을 모아 읍을 할 이 짧은 순간조차 이미 두 사람은 이전의 두 사람이 아니다

 
  - 저건 구름일세. 중천의 해와 달을 가리는 간신배라 불리고, 기름진 비를 뿌리는 운사로도 불리지. 허나 어느 백성이건, 어느 양반이건, 어느 왕이건, 모두 다 저걸 가리켜 구름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잖은가. 가끔은 우리도 그저 구름으로만 즐길 줄도 아세나. 
 


 - 남녀의 정욕은 하늘이 품부한 것이고, 남녀 분별의 윤리 기강은 성인의 가르침이니, 하늘이 성인보다 높은즉, 차라리 성인의 가르침을 어길지언정, 감히 하늘이 품부한 본성은 어길 수 없다 하였습니다. 귀형께서는 지금 귀형의 하늘뿐만이 아니라, 저의 하늘까지 끊어 내시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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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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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적어도 삶을 살아보고 가야 하지 않는가. 때로 죽는 데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삶은 살라고, 살아보라고, 누려보라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야 한다면. 그것도 굶주려서.  

 끔찍한 일이다.  

 살려야 한다.  

 2만원이면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 300명에게 고단백 영양식을 줄 수 있단다. 유니셰프 후원금을 만 원에서 3만 원으로 늘렸다.  

 그러나 여전히, 

 먹먹하다.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는 "당신들은 구호를 받는 가난한 자들을 원하지만, 나는 가난이 없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타인의 가난과 고통을 자신의 행복감을 배가하는 재료로나 여기는 무정하고 인색한 부자들이 즐비한 현실에서 버핏과 게이츠의 선행은 분명 돋보인다. 하지만 갑부들의 거액 기부를 마냥 찬양해도 될 만큼 세상사는 단순 명쾌하지 않다. 위고라면 당연히, 그런 거액의 희사를 예찬하기 전에 특정 개인들이 웬만한 국가들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능가하는 돈을 기부할 만큼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을 수 있고 또 그런 거액을 뿌려야 할 정도의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사회체제 자체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을 것이다.>     - 한계레21 
 
내 먹먹함의 이유는 이것이다. 이런 모순 구조를 고발한 이 책. 책을 읽는다는 게 단순한 앎에 그치기 위함이 아니라면 뭔가 해야하지 않는가. 무엇을, 무엇을???
  
 
 

  부끄럽고,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다.  최루탄, 지랄탄이 터지던 시위현장에서 내가 꿈꾸던 세상은 무엇이었던가. 최루탄에 머리가 깨져 헐떡이던 숨통, 한쪽 눈이 실명된 후배, 빵에 다녀온 후 정신이상자된 그들이 이루려했던 세상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그런 사회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88만원이라. 그것도 98%의 사람들이.
  
 그것이 현실이 될 것 같아 두렵다.  
 
 전국민에게 이 책을 읽게 하라!!!  
 그리고 전국민이 토론을 하게 하는 거야. 중요한 정책결정, 다 같이 하는 거지.  
 안 된다구? 왜? 어째서? 
 
 그래도 궁금하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경제분야에 별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위의 책들까지 읽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가면 뒤의 얼굴은 어떤 모습인지,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나처럼 경제분야에 무지한 사람도 잘 알 수 있을 터.   
 
 
 요즘 읽고, 읽게 될 책들을 통해 보는 세상은 암울하다.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느낌. 빈익빈 부익부를 넘어 '승자독식'으로, 모든 사람들이 노예인지조차 모르고 노예가 되는 '매트릭스'처럼. 종교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간은 인간의 탐욕으로 멸망하게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쳐든다.
 부끄럽고, 먹먹하다.  
 
 "네오, 이제 너도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될 거야."(영화 매트릭스. 88만원세대 인용)  
 
 허나,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걸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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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密陽) - 밀양? 밀양아리랑? 제목을 들었을 때 연상되었던 건 경남에 위치한다는 동네. 밀양이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밀(密)자의 뜻은 빽빽하다, 비밀로하다, 가깝다, 친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동네 밀양은 어떤 뜻으로 쓴 걸까? 햇볕이 빽빽한, 햇볕이 가득한, 햇볕으로 충만한 동네? 영화 밀양의 영어 제목은 secret sunshine - 비밀의 햇볕? 비밀스런 햇볕? 비밀을 간직한 햇볕? 숨어있는 빛?

 그 뜻을 무엇으로 해석하든... 무릇 햇볕이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그야말로 평등한 얼굴의 이름이 아니던가. 그런데 비밀이라....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나 그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세상 만물을 드러나 보이게 하나 그 자체는 보이지 않는, 하여 빛은 신이 되고 도(道)가 되며 어둠과 무명(無明)을 사는 인간에겐 희망과 구원이 되는 동시에 빛의 세상으로 가려하나 끝내 가지 못하는 인간을 시지프스로 만드는, 빛이란 그런 것이다. 햇볕은, 때로 빽빽할 정도로 이렇게, 가득한데...

 영화 중반부턴가. 눈물이, 쉬지 않고 줄줄줄 흘러내렸다. 물론, 주인공의 아들이 유괴됐으니까. 더구나 낯선 땅 밀양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있지도 않은 돈이 있는 것처럼 떠벌린 이유로 아들이 유괴를 당했고, 주검으로 돌아왔으니까. 전도연의 연기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면서 가슴을 후벼파니까.

 그런데, 내 눈물의 이유는 그것만은 아니었다. 유괴, 죽음, 찢어지는 아픔으로 이어지는 그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햇볕이 바로 옆에 있는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데, 아니 자신 안에도 분명 존재할 터인데 그것을 보지 못하는, 그곳으로 한 발 내딛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거. 상처받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잘못을 저지른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 그토록이나 징하게 어렵다는 거. 그게 내 눈물의 이유라면 이유였다.

 죽은 남편의 외도 사실을 그녀는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음으로 남편이 살고싶어했던 땅, 밀양으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간 것이다. "밀양은 어떤 곳이에요?" "어떤 곳이라...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지예." 그녀는 몰랐던 것이리라. 자신이 치유되지 않는 한 어느 곳으로 가든 상처는 계속된다는 사실을. 그녀가 원하는 새로운 땅이 될 수 없음을. 하여 도피는 또다른 상처를 만든다. 아들의 주검도, 자신의 잘못도 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으며 인정할 수 없었으므로 또다른 도피처, 신에게로 향해 간 것임을.

 그러나, 신 앞에서조차 그녀는 발가벗지 못했다. 유괴를 도왔을, 유괴범의 딸이 맞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냥 지나쳤음에도 유괴범을 만나 '용서'란 걸 하러가는.... 그녀는 자신이 아직 그들을 용서치 못했음을, 용서하지 못한 자신을 보지 못하고, 보지 않고.... 결국은 유괴범의 입에서 "신에게 용서받았다"는 말을 듣고서야 소리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어떻게 신이 먼저 용서할 수 있느냐"고. ...

 쓰다보니 어제의 먹먹함이 잠깐 다시 스친다. 어제는 영화보고 와서 먹먹함이 내내 가시지 않아 도저히 감상평을 쓸 수 없었는데...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 이제 신애는 자신의 머리를 자신 스스로 자른다. 길고 징한 터널의 끝자락에서 그녀는 간신히 한 발을 내딛은 것으로 보였다.

 다가온 종찬(맞나? 송강호의 연기는 언제나 실제인지 연기인지 구분이 안 갈 만큼 자연스럽다. 멋진 배우!)은 "거울이라도 들어들이지예."라고 말한다. 만약 그가 "내가 잘라 들릴게예."라고 말했다면 영화는 한 순간에 추락했으리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은 딱 그만큼인 거다. 그녀가 자르려는 머리를 대신 잘라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잘 보이게 거울을 들어주는 거. 전도연의 연기가, 송강호의 연기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던 것처럼 영화는 마지막까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햇살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

인간 사는 곳이 어디든 그곳엔 때로 지옥처럼 느껴지는 상처가 있고, 꼭 밀양이 아니더라도 인간 사는 곳 그곳이 어디든 햇볕은 때로 빽빽할 정도로 가득차 있다. 다만, 우리는

상처에서 도피하지 않고 상처를 끄집어내어 햇볕에 말려야 하리라.

 

오늘은 세상 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한 줌이라도 좋을 햇빛이 넘치길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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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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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치유' - 그걸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마음을 비워라!' 가 아닐까.

 허나, 그 한 마디를 자기화하는 일은 ... 평생을 두고 하려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무의식, 사랑, 대상 선택, 분노, 우울, 불안, 공포, 의존, 중독, 질투, 시기심, 분열, 투사, 회피, 동일시, 콤플렉스'(사람풍경 세 가지 목차들 중 두번째까지) - 그 모든 것을 나는 다 가지고 있었다.  그 마음들을 들여다보기까지, 그 모든 것을 다 지닌 괴물같은 나라는 인간을 인정하기까지 내가 쏟아낸 눈물은 얼만큼이었을까.

 힘겹게, 아주 간신히 '자기애, 자기 존중, 몸 사랑, 에로스, 뻔뻔하게, 친절, 인정과 지지, 공감, 용기, 변화, 자기 실현'(사람풍경 세 번째 목차들) 에 근접하기까지 내가 쏟아낸 토사물은 얼만큼이었을까.

 내 눈물의 어디쯤에서, 토사물을 게워내는 어디쯤에서 이런 책을 만났더라면 조금은 쉬웠을까. 그 과정들이.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또한 겪었어야 할 시간들이었으리라.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을 마음의 난장판을 정확히 보아야하리라.

 

'천 개의 공감' 은 독자들의 사연에 대답해주는 방식으로 쓰여있다.

모든 문제들이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시작된다는 숱한 이야기 어디쯤에선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되짚어보았다.(이상하다. 왜 어린 시절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을까. 크면서 엄마가 해주신 얘기로밖에 기억이 나지 않으니... ) 아직도 아기인 채로 남아있는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런데 한 편으론 화도 났다. 대체 인간은 부모로부터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 건가. 멀리는커녕 결국 몸만 바뀌었을 뿐이지 자식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고 그렇다면 그 부모는 다시 그 부모의 부모의 문제고 또 그 부모는 ... 그건 결국 한 사람이 아닌가.  그 근원은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런데 나는 왜 그토록 발전해야 한다는 명제에 목을 매는가. 청출어람이라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가 되어야 하고, 부모보다 나은 자식이 되어야 하고.... 인간 중에서 최상의 인간이 되어야 하고, 지금 이런 갖가지 마음이 부리는 농간에 놀아나는 인간이 아닌 그 이상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드러나지 않은 부처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그것 역시 내가 만들어낸 환상은 아닐까.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무엇이 있을 거라는, 하여 살면서도 참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예전보다야 줄었지만) 불쑥불쑥 드는 것은........................ 여기가 내가 막혀 있는 지점이었다. 목표는 갖되 목적은 가지지 않겠노라, 지금, 여기를 살겠노라, '더 나은 삶을 끝장내라'는 말을 지니고 살리라 했으면서도..........

  "정신분석을 받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맞닥뜨렸던 것 역시 방어의식이었다.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종류의 방어의식이 나의 내부에 있었으며 방어 의식에 갇혀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는 듯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는 낯선 숙소에 머무는 듯한 삶, 저편 언덕에 닿지 않는 다리 위를 걷는 듯한 삶, 거대한 방패에 갇혀 있는 듯한 삶, 그 속에서 정신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생은 진퇴양난의 계곡에 방치되어 있을 것이다."                               - '사람풍경' 중에서
 그런가. 그런 것인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 괴테('천 개의 공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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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최세진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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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엠마 골드만

 젊은 시절, 혁명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이 사회이든 개인이든 잘못된 사회, 못마땅

한 자신을 그 뿌리부터 뒤집어버리고 싶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유토피아를 건설하고픈, 그런

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 혁명 욕구는 사회로 향해 있었던 20대를 지나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말과 함께 나 개

인에게로 방향이 틀어졌다. 이후 정치에 무관심,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뭐 지식인도 아니지만)으

로 살아왔다. 뭐, 그것이 자랑도 아니고 이제와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도 않다. 다만, 어차피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이 아니던가. 적어도 이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사회라는 커다란

그물망에 속지 않고 제대로 된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만큼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그러니까 제대로 된 시각을 갖고자 하는 그런 의도로 선택된 책이다. 물론, 제목 때문에

눈에 확 들어오기도 했다. 

 재미있다. 어려운 얘기라도 어렵지 않게 써야 한다는 내 기본적인 생각에 들어맞는다. 

 게임을 전혀 해보지 않은 나에게 게임의 뒷면을 알려준다. 

 여기 소개된 SF 소설을 읽어야겠다, 애니도 몇 편 봐야겠다. 목록 작성.

 아, 그런 뜻이었구나, 그런 일도 있었구나.

 그런데, 그냥 지식의 선에서 끝난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들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과거의

사실 나열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와 접목시키면서 갔으면 참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생들이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 광장 편은 그래도 눈여겨 볼 만하다. 촛불 시위의 처음부터 끝까지 토막토막 알고 있었

던 게 쭉 정리된다. 인터넷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체 게바라는 너희 상품이 아니다'

홍세화씨의 추천사 중에서

 <그러나 모든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삶'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건강에 관심을 가집니다. 한국사회에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보신문화가 발달했는데, 그것이 정력을 좇는 일탈적 현상이라고 말하기엔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몸의 건강상태에는 그렇게 높은 관심을 보이는데 반해, 의식세계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는 점입니다. 나의 의식세계가 '나'라는 존재를 위해 균형 잡힌 것인지 아닌지 묻지 않습니다. 실로 놀랍지 않은가요? 사람은 몸이 건강하지 않을 때 대부분의 경우 이를 자각합니다. 그러나 의식 세계가 균형 잡힌 것이 아닐 때, 심지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형성해도 이를 자각하지 못한 채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이를 고집합니다.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 그래서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삶을 유지하려고 신경 쓰는 일이 당연하다면, 적어도 그 십분의 일이라도 의식세계에 대해서도 신경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의식세계를 송두리째 내주었습니다. 과거 사람들이 종교와 전통에 의식세계를 송두리째 내주었다면 오늘날엔 대중미디어에 내주었습니다. 과거에 종교와 전통을 장악했던 세력이 지배계급이었듯이, 오늘날 대중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자본입니다. 그리하여,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가 16세기에 말한 '자발적 복종'이 쉽게 형성됩니다. 소인배들로 들끓고 마름들로 들끓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누구에게나 한 번밖에 오지 않는 소중한 삶입니다. 예술가들을 벗 삼아 상상력을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

 
몸의 균형, 마음의 균형, 의식의 균형. 그리고 몸과 마음과 의식의 균형. 그리고 또 세상과 나의

균형. 아프지 맙시다. 그리고,

'소인배들로 들끓고 마름들로 들끓는' 세상에서 소인배가 되지 않는, 마름이 되지 않는 길은 무

엇인지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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