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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다
김태연 지음 / 시간여행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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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하늘의 인드라신, 즉 제석천 궁전 벽은 사방이 유리거울로 되어 있대. 그런데 인드라신 보석반지에서 나온 빛이 사방 벽을 비추고 또 비추고 거듭 비추어도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반복된다고 해. 그림자와 상이 서로 침투되어 상을 더해간다는 비유지. 어려운 말로 하면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작용과 중중무진重重無盡의 구조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어. 작은 것 혹은 부분 속에 무한한 우주가 다 들어와 전체와 부분이 서로 침투한다는 거지. 한 점 먼지 속에도 무량 우주가 담겨 있고, 무량 우주라 할지라도 한 점 먼지와 다름없다는 일방무량방一方無量方 무량방일방無量方一方을 강조하는 예라고나 할까. 큰 세상 안에 작은 세상이 있고 작은 세상 내부에 큰 세상을 담고 있다는, 그 연결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무한중첩구조」
 

 「 예수와 부처 이상으로 1에는 심오한 뜻이 숨어 있다. '수학의 원리'라는 책에 1에 대한 정의가 345페이지에 걸쳐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예컨대 0을 0으로 나누어봐. 무엇이 나오나? 1이 나오잖아. 1외에 어떤 수도 나올 수 있지.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나누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나와야 정상인데 1이라니?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말하는 빅뱅(대폭발),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자 또는 창조주도 알고 보면 0과 1의 문제인지도 모르니라. 실제로 미국의 유명한 과학자 알렉산더 빌렝킨은 크기 0인 무로부터 우주가 탄생했다고 보니까.

  어떤 수를 0으로 나누면 무한대가 나오고, 어떤 수를 무한대로 나누면 0이 되는 원리를 잘 생각해보라고. 물론 현대수학은 0의 나눗셈을 금지하고 있긴 하지만.... 우주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 황금열쇠가 0과 1에 있을지도 몰라. 대다수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총에너지가 0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는 것만 봐도, 우주상수(우주 공간을 표현하는 물리학의 한 상수)가 거의 0에 가깝다는 것만 봐도. 이 값은 10의 120제곱 분의 1정도 이내의 정확도를 나타내고 있어. 과학의 역사에서 이 값만큼 정확히 측정된 값은 없어. 우주 상수가 0이라는 말은 텅 빈 우주 공간은 거의 절대적으로 평면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거야. 그런데 그 값이 왜 0일까? 그 이유를 아무도 모르는 기라. 그것만 알아도..... 결론은 0과 1의 연구에 평생을 걸어볼 만하다는 기라. 내 말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건 첨단기술의 알파요 오메가인 컴퓨터를 보면 알아. 0과 1로 모든 것을 해결하잖아.」

 

 「 슈뢰딩거의 고양이 패러독스를 생각해보아라. 양자역학에서는 반생반사가 얼마든지 가능하잖아. 생과 사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를 상기하면 좋을 듯싶다. 내가 너희 우주에서는 우주에서는 죽은 것 같지만 고차원에서는 살아 있는 현상을 과학에 무지한 사람들은 낯설어하겠지만, 어지간히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잖아. 양자역학의 반생반사원리와 온오프라는 컴퓨터의 원리 사이에 교차점이 분명히 있거늘....
  내가 손쉽게 컴가면과 휴가면이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차원 덕이지, 뭐. 마치 2차원 냅킨을 3차원 공간에서 대각선으로 접을 수 있는 것처럼 4차원 공간에서는 3차원 공간 두 부분을 접을 수 있다. 구길 수도 있고. 그러니 거리 따위는 문제가 안 되겠지? 4차원 공간에서 두 개의 면은 하나의 점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이만하면 처음에 내가 왜 점으로 등장했는지에 대한 힌트가 되겠니?  어쨌든 너희 우주 전체도 작은 점에 불과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

 
「 지구 전체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고 
    우리가 사는 곳은
    그 점의 한 구석에 지나지 않는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 상식은 우리가 열여덟 살에 얻은 편견에 불과하다.  - 아인슈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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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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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그 개인에게만 보이는 '새로운' 사실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누구나 뻔히 보면서도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기존의'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야말로 천재다.』
 

  『 고령자라서 완고한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육체의 쇠약이 정신의 동맥경화 현상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훌륭한 업적을 쌓은 고령자에게 나타나는 완고함은 그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훌륭한 업적을 거둠으로써 성공자가 되었기 때문에 완고해진 것이다. 나이가 사람을 완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 사람을 완고하게 만든다. 성공자이기 때문에 완고한 사람은 변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되어도, 성공으로 얻은 자신감 때문에 다른 길을 선택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근본적인 개혁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과거의 성공에는 가담하지 않았던 사람만이 달성할 수 있다. 흔히 젊은 세대가 근본적인 개혁을 성취하는 것은 그들이 과거의 성공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로마인 이야기2

 

 『 문장은 거기에 쓰이는 언어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평소에 쓰이지 않는 말이나 동료끼리만 통하는 표현은 배가 암초를 피하는 것처럼 피해야 한다.』-카이사르

 

 『 내전의 진정한 비극은 내전에 희생된 사망자 수가 아니다. 진정한 비극은 내전에 희생됨으로써 생겨나는 앙심과 원한과 증오가 오랫동안 이어져, 그 꼬리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데 있다.』

 

 『 내가 석방한 사람들이 다시 나에게 칼을 들이댄다 해도, 그런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는 않소. 내가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거요. 따라서 남들도 자기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오.』-카이사르

 

 『 역사는 이따금 하나의 인물 속에 자신을 응축시키고, 그후 세계는 이 인물이 지시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좋아하는 법이다. 이런 위대한 개인에게는 보편과 특수, 멈춤과 움직임이 한 사람의 인격에 집약되어 있다. 그들은 국가나 종교나 문화나 사회의 위기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존재다....... 위기에는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뒤섞여 하나가 되고, 위대한 개인에게서 정점에 이른다. 이런 위인들의 존재는 세계사의 수수께끼다.  - 부르크하르트의 '세계사에 관한 고찰'에서』

 

 『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모든 게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밖에는 보지 않는다. - 카이사르』
 

『 통찰력과 표현력은 상호관계에 있다. 날카롭고 깊은 통찰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다음에 올 일을 더욱 날카롭고 깊이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 머릿속에 들어 있을 때보다 문장으로 표현되면, 그 통찰은 어는 누구보다도 그 문장을 쓴 당사자에게 가장 강한 충격과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 로마인 이야기5

 

  「 균형 감각이란 서로 모순되는 양극단의 중간점에 자리를 잡는 것은 아니다. 양극단 사이를 되풀이하여 오락가락하고, 때로는 한쪽 극단에 가까이 접근하기도 하면서,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한 점을 찾아내는 영원한 이동 행위이다.」

 

 「 지성은 지식만도 아니고 교양만도 아니다. 지성은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않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도 꿰뚫어보는 재능이라고 생각하지만, 꿰뚫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상황을 통찰한 뒤에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최선인지도 이해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지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창조성이 결여된 현실인식은 백점 만점의 지성이 아니다.」

 

 「 행운의 여신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약속이 지켜진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니 하루하루를 살아가라. 한 시간 한 시간을 살아가라.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은 산 사람의 세계에서는. - 로마의 묘비명 중에서」
                                                                                                                              - 로마인 이야기

 

  「 괴팍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는 소심한 경우가 많다. 소심한 사람은 남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애쓰기보다는 자기편이 확실한 사람들로 주위를 에워싸고 싶어한다.」

 

  「 우리가 오랜 전통으로 믿고 있는 일도 처음 이루어졌을 때는 모두 새로운 것이었다.  - 클라디우스 황제」

 

  「 인간은 문제가 없으면 불만을 느끼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사소한 문제라도 찾아내서 그것을 불만거리로 삼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 동정이란 현재 눈앞에 있는 결과에 대한 정신적 반응이고, 그 결과를 낳은 요인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반면에 관용은 그것을 낳은 요인까지 고려하는 정신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지성과도 완벽하게 공존할 수 있다.」
                                                                                                                                  - 로마인 이야기 6 

 

'오랫동안 타민족에게 지배당한 역사를 가진 민족은 현대인의 사고방식으로는 핍박받은 민족이고, 따라서 동정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오랫동안 핍박받은 역사를 갖은 것은 정신구조에 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자위본능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지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신의 유연성을 잃고 완고해진다. 또한 매사에 과민하게 반응하기 쉽다. 그리고 가혹한 현실을 참고 견디며 꿋꿋이 살아가야 할 필요성 때문에 꿈에 의존한다. 유대교에서는 구세주에 대한 기다림이 여기에 해당한다.' 

                                                                                                                                   - 로마인 이야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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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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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네는 두려워하고 있어. 예전에 바티칸 사람들이 지동설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천동설에 절대로 오류가 없다고 믿었던 건 아니야. 지동설을 받아들이는 것이 몰고 올 새로운 상황이 두려웠을 뿐이지. 거기에 맞춰 자신들의 의식을 재편성해야 한다는 게 두려웠던 것뿐이야.'
 

   '아버지의 인생이 어떤 것이었는지, 거기에 어떤 기쁨이 있고 어떤 슬픔이 있었는지, 잘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거기에 충족되지 못한 게 있었다 해도, 아버지는 남의 집 문 앞에서 그걸 찾아선 안 돼요. 가령 그곳이 아버지에게 가장 익숙한 곳이고, 그것이 아버지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 해도.'

 

   '그 말은 내 영혼의 가느다란 주름 틈새에 조용히 스며들더란 말이지.'

 

   '그들이 그때 발을 들인 곳은 문이 없는 방이었다. 거기에서 나갈 수는 없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다른 누구도 그 방에 들어올 수 없다. 그때의 두 사람은 알지 못했지만, 그곳은 세계에 단 하나뿐인 완결된 장소였다. 한없이 고립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고독에 물들지 않는 장소.'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아오마메는 덴고의 가슴에 귀를 댄다. "나는 오래도록 외톨이였어. 그리고 여러 가지 것에 깊이 상처를 입었어. 좀더 일찍 너와 재회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을 거야."
 덴고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걸로 좋은 거야. 지금이 마침 적당한 때야. 우리 둘 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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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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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진짜를 찾기 위해 가짜를 하나하나 수집하는 중이다. 세상의 가짜를 다 모아서 태워버리면 결국 진짜만 남을 것이다. 시간은 좀 오래 걸리겠지만, 그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나는 첫 번째로 가짜아빠를 태웠고, 그리고 가짜엄마를 태웠고, 그리고 장미언니를 태웠다. 백곰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바싹 마른 종이인형처럼 활활 잘도 타올랐다. 다 타버린 그것들은 모두 공평하게 재가 되었다. 그래, 가짜니까 타버리는 거야. 진짜는 아무리 태워도 타지 않지. 나는 올바른 선택을 한 나를 칭찬했다.
 

  하지만 아무리 스스로를 칭찬해도 괴로움 같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 식당은 너무너무 고요해졌다. 위잉위잉 냉장고의 심장 소리, 바람이 문을 두드리고 도망가며 다라락 웃는 소리, 연탄난로 안에서 불꽃들이 둘러앉아 딱딱 고스톱치는 소리, 수도꼭지가 깜빡 졸다가 침 흘리는 소리만 간간히 들리는 그 세계에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 낡은 문 너머의 바깥세상을 구경했다. 할머니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나는 할머니보다 앞서 갔다.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 할머니의 시간이 어서 오기를 기다렸다.'

 

  '사랑한다는 말은 어떻게 표현하지? 오랫동안 그 문제로 고민을 했지만, 사랑한다는 걸 행동으로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 결국 할머니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할 수 없었다. 아쉬운 대로 벽에 그 글자를 붙여두기만 했는데, 할머니는 가끔 그 글자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맛있다. 밥 먹어. 잘 잤어. 할머니가 '사랑해'란 글자를 보며 상상하는 어떤 단어든, 결국은 다 사랑에 표함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사랑은 원래 그런 거니까.'

 

  '할머니의 주름 속 응달까지 넘나드는 봄 햇살' 

 '나는 바이올린이란 악기를 연주하는 상상을 해보려고 했지만, 바이올린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바이올린은 어떻게 생겼냐고,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마음대로 생각해봐.
 내 맘대로?
 응.
 ......작고
 응, 작고.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그래. 
 밝은 노랜색에.
 응.
 나비처럼 생겼어.
 응. 
 날개를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 크게 움직이면 아주 높은 소리가, 작게 움직이면 아주 낮은 소리가 나고.
 그래. 
 연주가 마음에 들면 색깔이 바뀌어. 여러 가지 색으로. 
 연주해봐. 
 응?
 상상으로. 
 나는 내가 만든 바이올린이란 악기를 연주하는 상상을 했다. 창밖에선 귀뚜라미가 울고, 찬란한 보름달. 힘이 빠지면서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 바뀌었어?
 먼 곳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 응?
 ........ 색깔.
 ........ 응.
  나는 겨우 대답했다. 몸과 정신과 기억 같은 것이 물에 빠진 수채화처럼 점점 흐려졌다. 
  분홍색 나비 두 마리가 폐가를 맴도는 꿈을 꿨다. 나는 댓돌 위에 누워 햇볕을 쬐며 곤한 낮잠에 빠진 얼룩 고양이였다.  



  '내 앞에 나타난 나는 지나치게 흔한 세계
   그것만이 전부였던 그 시절.
   나는 반짝이는 나를 봤다. 내 불행의 시발점. 모든 행복의 이면.'
 

 '웅크리고 앉아 내 혀로 내 상처를 핥아댄다.'
 

 '진짜엄마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니까 각자 모른 채 살면 행복할 수도 있는데, 만나서 불행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진짜엄마를 찾아야 하나?
 찾아야 한다. 
 왜냐면, 그것 외엔 할 일이 없으니까. 
 진짜엄마를 찾겠다는 목적마저 사라진다면 나는 더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 목적이 없으면, 가짜아빠처럼 쥐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다.'

 
 '불행한 사람은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자기 가슴속만 보고 산다.'

 
 '저 사람이다. 
 저기 있다.
 나의 진짜엄마는.
 거리를 떠돌며 내가 정했던 진짜엄마의 조건은 모두 껍데기고 포장이며 환상이고 거짓말이다. 나의 진짜엄마는 어떤 얼굴이라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서 결국,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다. 맞는 대신 때리는 자이고 때리는 게 번거로우면 죽여 없앨 수도 있다. 그 모든 게 귀찮을 땐 외면한다. 상관없는 척한다. 그 뿐이다. 오직 중요한 건 자신의 생존이다. 불행이나 행복 따위엔 관심도 없다. 이제야 알겠다. 그런 사람을 찾기는 너무 쉽고, 너무 쉽기 때문에 나는 여태 못 찾고 있었다. 너무 흔하니까. 어디에나 있으니까. 
 거울을 보면, 그 속에도 있다.'

 


 '예술가의 사명은 논쟁의 여기가 없도록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삶에 애착을 지니게 해주는 것'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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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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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토프 이야기를 해주겠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크리스토프는 가나안 사람이라네. 거인으로 알려져 있지. 힘이 장사였던 그는 무서운 게 없었지. 자신은 오직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사람에게만 봉사하겠다고 결심했지. 하지만 아무리 여기저기 떠돌아도 자신을 바칠 만한 위대한 인물을 찾을 수 없었다네. 모두가 그를 실망시켰지. 자기 자신을 바칠 존재를 찾는 일에 지친 크리스토프는 실의에 빠져 어느 강가에 집을 짓고 그곳에 머물렀어. 강 저편으로 건너가려고 하는 여행자들을 건네주는 일을 하며 지냈다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크리스토프는 겨우 삿대 하나만 지닌 채로, 강물이 아무리 불어나도 그 삿대로 강물을 헤쳐나가며 사람들을 강 저편으로 건네주곤 했다네. 그에겐 그저 소일거리였지. 배도 없이 맨몸으로 사람들을 태워 건네주는 뱃사공 역할을 한 셈이라네.

  어느 날 밤이었어. 크리스토프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희미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네. 이 한밤중에 누군가 싶어 문을 열어보았으나 아무도 없었어. 어둠뿐이었지. 문을 닫고 들어와 다시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 또 크리스토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다시 나가보았으나 마찬가지로 짙은 어둠뿐이었네. 세 번째 부르는 소리는 바로 곁에서 들리는 것 같았어.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어. 기이하게 여긴 크리스토프는 삿대를 챙겨들고 집 바깥으로 나가 강으로 갔지. 어둠 속의 강가에 한 아이가 서 있었어. 아이는 오늘 밤 안에 강 저편으로 건너가야 한다면서 크리스토프에게 강을 건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 아이의 청이 간절해 크리스토프는 깊은 밤이긴 하지만 이깟 아이쯤이야! 여기며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네. 그런데 크리스토프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강물이 마구 불어나기 시작했네. 순식간에 장신의 크리스토프 키를 넘을 지경으로 강물이 범람했지. 뿐인가. 처음엔 가벼웠던 아이도 강물이 불어남에 따라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어.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철근 같은 무게가 크리스토프의 어깨에 내려앉았지. 강물은 점점 더 불어나고 아이는 엄청난 무게로 그를 짓눌렀다네.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크리스토프는 처음으로 자신이 강물에 빠져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어. 삿대로 겨우 균형을 유지해가며 아이를 어깨에 태운 채 불어난 강물을 헤치고 간신히 강 저편에 이르렀지. 강가에 아이를 내려놓으며 크리스토프가 말했네. "너 때문에 내가 죽는 줄 알았다. 너는 이리 작은데 너무 무거워서 마치 이 세상 전체를 내 어깨에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머물면서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강 이편으로 건네주었지만 너보다 더 무거운 사람을 실어나른 적이 없구나." 그 순간이었네. 아이는 사라지고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예수가 눈앞에 나타났지.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네. "크리스토프! 그대가 방금 짊어진 건 어린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 그리스도다. 그러니 그대는 저 강물을 건널 때 사실은 이 세상 전체를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험난한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며 강 저편으로 건너가는 와중에 있네. 우리 모두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그러나 물살이 거세기 때문에 그냥 건너갈 수는 없어. 우리는 무엇엔가에 의지해서 이 강물을 건너야 해. 그 무엇이 바로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이기도 할 테지. 지금 여러분은 당장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배나 뗏목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할 거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 실어나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여러분이 그것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여러분에게 문학이나 예술은 여러분을 태워 강 저편으로 건네주는 것만이 아니네. 여러분이 신명을 바쳐 짊어지고 나가야 할 필생의 일이기도 한 것이네.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들이네. 강 저편으로 아이를 실어나르는 자들이기도 하지. 거대하게 불어난 강물 속에 들어가 있는 운명을 지닌 자들이란 말이네. 강물이 불어났다고 해서 강 저편으로 아이를 실어나르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되네. 강을 가장 잘 건너는 법은 무엇이겠는가?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는 것이네. 함께 아이를 강 저편으로 실어나르게. 뿐인가. 강을 건너는 사람과 강을 건너게 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네. 여러분은 불어난 강물을 삿대로 짚고 강을 건네주는 크리스토프이기만 한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 전체이며 창조자들이기도 해. 때로는 크리스토프였다가 때로는 아이이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를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실어나르는 존재들이네. 그러니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히 여기게.'

 

  '사랑하는 테오
........ 나는 반드시 땅을 파는 사람, 씨 뿌리는 사람, 경작하는 남녀를 쉬지 않고 그려야 해. 농촌생활에 속하는 모든 것을 면밀하게 그려야지. 다른 사람들이 그러했고 또 지금 그러하듯이 말이야. 나는 이제 더이상 자연을 앞에 두고 무력하지는 않아'     - 고흐

 

 '이 도시를 알기 위해 걷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걷는 일은 스쳐간 생각을 불러오고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게 했다. 두 발로 땅을 디디며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책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숲길이 나오고 비좁은 시장통 길이 등장하고 거기에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걸고 도움을 청하고 소리쳐 부르기도 한다. 타인과 풍경이 동시에 있었다.'
 

   널빤지에서 널빤지로 난 걸었네.   

   천천히 조심스럽게
   바로 머리맡에는 별
   발밑엔 바다가 있는 것 같아 난 몰랐네 - 다음 걸음이
   내 마지막 걸음이 될는지
   어떤 이는 경험이라고 말하지만
   도무지 불안한 내 걸음걸이.
                                          - 에밀리 디킨슨

 

  '1964년 3월 13일에 일어난 제노비스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훔쳐 온 책에서 읽었다. 미국 뉴욕의 주택가 새벽 세시 십오분에 캐서린 제노비스란 이름을 가진 여성이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파트로 귀가하다가 괴한을 만나 칼에 찔려 죽어가는 것을 서른여덟 명의 이웃이 듣거나 봤으면서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칼에 찔린 제노비스가 도와주세요, 라고 외쳤을 때 아파트에 일제히 불이 켜졌으나 누구도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오진 않았다고 한다. 밖으로 나오지는 않고 창 안에서 누군가가 그 여자를 내버려둬-라고 고함을 치자, 괴한은 도망쳤다. 제노비스는 피를 흘리며 길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누구도 제노비스를 돕기 위해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파트의 불들은 곧 꺼졌고 거리는 다시 조용해졌다. 황급히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도망치던 범인은 조용해진 거리를 보자 다시 돌아와 상처입고 쓰러져 있는 제노비스를 또 찔렀다. 제노비스가 다시 비명을 내지르자 아파트의 불들이 다시 켜졌다. 범인은 다시 도망쳤다. 제노비스가 칼에 찔린 몸을 간신히 이끌고 자신의 집 쪽으로 가는 사이 좀 전처럼 아파트의 불은 또 일제히 꺼졌다. 몸을 숨기던 괴한이 다시 제노비스에게 다가와 범해을 마저 끝냈다. 삼십오 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연속적으로 칼에 찔린 제노비스는 결국 숨을 거뒀다. 도움을 청하는 제노비스의 비명에 불이 켜지면 멈췄다가 불이 다시 꺼지면 이어진 범행. 제노비스가 칼에 찔리고 쓰러지는 것을 창가에서 구경만 한 사람의 숫자는 서른여덟 명이었다고 씌어 있었다. 이것이 인간일까. 나는 훔쳐온 책을 다시 그 자리에 갖다놓고 싶었다.

 

 귀기울여 듣던 윤은 제노비스의 비명소리를 서른여덟 명이 아니고 한 사람이 들었다면 그녀는 살았을지도 몰라, 라고 말했다. 네 생각이야?라고 물으니 윤은 심리학!이라고 대답했다. 사람의 심리 속에 그런 게 있대. 위험에 처한 대상을 혼자 보게 되었을 땐 바로 행동하게 되지만 다른 사람들과 동시에 공유하면 무의식이 행동을 지연시킨대. 상대방에게 미루는 건가? 내가 말하자 윤은 떠맡긴다기보다는 분산되는 거겠지. 누군가 희생당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적어지는 것으로 봐. 심리학에서는..... 윤은 내 손을 잡으며 혼잣말을 했다. 불이 꺼질 때마다 제노비스는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숨을 거둘 때까지 칼에 찔린 고통보다 그 공포가 더 컸을 거야.'
 

 '나는 지금 장난꾸러기들의 조롱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는,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처럼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나는 가겠나이다.  - 프랑시스 잠'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가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 에밀리 디킨슨

 

  '우리는 지금 깊고 어두운 강을 건너는 중입니다. 엄청난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강물이 목 위로 차올라 가라앉아버리고 싶을 때마다 생각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짊어진 무게만큼 그만한 무게의 세계를 우리가 발로 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산다는 것은 무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살아 있다는 것은 곧 다른 모양으로 변화할 것을 예고하는 일이고,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희망이라고 했던 윤교수.'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함께 있을 때면 매순간 오.늘.을.잊.지.말.자,고 말하고 싶은 사람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그.쪽.으.로.갈.게,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사방에서 새벽빛이 툭툭, 터진다. 눈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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