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의 시간 - 조금씩 천천히 건강하게
이양지 지음 / 김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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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요리 - 토마토 된장덮밥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먹을때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를 반복한다. 가능한 고기를 배제하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를 충분히 활용하자는 생각이다. 


오늘 멀리서 지인이 요리책 한 권을 보내주었다. <채식의 시간> (이양지, 2013, 김영사)이다. 요리책은 요리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라지만 재료가 구하기 힘들거나, 조리 도구가 없어서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한마디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아니면, 요리책 대로 근사하게 만들어 먹어볼 요량이면 재료비가 많이 들어 차라리 밖에서 사 먹는게 나을때가 많다. 


<채식의 시간>을 눈으로 훑어면서 느낀 것은 ‘해보고 싶다’는거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갖고 만들면 될 것들이다. 몇가지는 오븐이 없거나 재료를 구하지 못해 아쉬운 것도 있지만. 방학이라 집에서 잠만자고 있는 조카에게 “첫페이지부터 차례로 만들어 볼까?”하고 제안해보지만 시큰둥하다. 내 혼자 할 일이다. 


이 책은 ‘생활의 지혜’같은 내용들이 몇 있다. 가령 맛간장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법 같은 것 말이다. 시중에는 100% 양조간장을 구하기 쉽지 않거나 비싼데 눈에 쏙 들어온다. 그리고 대부분의 요리는 익숙한 재료를 이용한 것이라 마음이 가볍다. 


<채식의 시간>을 보며 얻은 깨달음 – 이것은 순전히 나만의 깨달음 – 은 모든 음식에는 재료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양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만드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토마토 된장 덮밥”이다. 



먼저 된장찌개를 자작하게 끓인다. 거기에 토마토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는다. 아는 사람들은 토마토를 익혀먹는데 익숙하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얼굴부터 찡그리며 ‘토마토를 된장찌개에 넣어?’, ‘된장찌개의 맛이 시큼해지는거 아냐?’하는 눈치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된장찌개를 끓이는 방법은 – 이것 또한 정해진 법은 없다 – 말린 표고버섯이나 다시마를 넣고 물을 끓이다가 감자, 당근 등의 야채를 넣고 끓인다. 익을 때 즈음 된장을 풀어 넣으면 된다. 


오늘은 햇고사리가 있어 그것을 조금 볶았다. 기름을 살짝 두르고 물에 불린 고사리를 넣고 볶다가 다진 마늘과 간장을 조금 넣고 더 볶았다. 고사리볶음은 이것으로 끝.


자, 이제 준비된 재료들을 밥 위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밥 위에 된장찌개를 살짝 올린다. 토마토 된장찌개를 말이다. 그리고 고사리볶음을 올리고 쑥갓을 올렸다. 


천지만물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올리고 맛을 볼 시간. 평소에 밥보다 다른 재료를 더 많이 올려 먹기 때문에 간을 맞출 때 약간 싱겁게 맞추어야 한다. 역시 오늘도 재료가 많다. 밥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토마토는 토마토대로 식감이 살아있다. 식후에 먹는 과일로서의 맛이 아니라 음식에 섞여 있는 식재료로서 말이다. 약간 새콤하고 달콤한 것이 연하게 입안에 퍼진다. 고사리는 채취한 후 삶아서 말린 것을 다시 삶아서 물에 불려서 조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산에서 막 뜯어다가 입에 넣은 부드러움이 그대로 있다. 다른 생 야채는 그대로 풍성한 맛을 준다. 오늘 밥은 현미 옥수수밥이라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촉감이 살아있네~. 


세상에 없는 요리, 오늘 처음 만들어 맛 본 것 치고는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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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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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은 아버지의 자유에 대한 몸부림이다.

 


여름이 오고 있다. 불볕더위가 예상된다고 일기예보는 여러번 강조하지만 귓등으로 흘린다. 며칠 전 비가 온 뒤 잠깐 더웠다가 내내 흐리다. 저녁으로는 춥다. 하나 둘 퇴근들 해서 모여든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각자 시간이 되면 돌아온다. 집으로, 가족들이다. 뚜렷한 목적으로 가지고 모여서 가족을 이룬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역할을 맡게 되고, 톱니바퀴마냥 크고 작은 역할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매일의 일상이 똑 같다. 아침에 겨우 눈을 뜨고, 부랴부랴 출근준비해서 나갔다가 저녁되면 돌아온다. 휴일이거나 주말이 되면 간혹 그 질서가 달라지거나 무너지기도 한다. 또 어떤 모임이 있어 들어오는 시간이 조금 달라질 뿐, 큰 틀에서 바뀌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소설《소금》을 읽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동안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일탈의 여정에서  만났다. 그동안의 일상이 ‘새로움’과 ‘다름’을 추구하는 나에게는 ‘위기’이자 ‘두려움’이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며 누나집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며 ‘그들의 가족’을 새롭게 바라본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라짐’에 대해 막내 딸이 찾아나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끝간데 없는 소비욕망의 상징으로 아내와 자식들은 자본이 주는 단맛을 위해 아버지에게 빨대를 꽂고 살아가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외로움으로 의도적으로 숨어버렸고, 새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 선명우의 과거 어린시절의 삶과 사랑, 이후 돈버는 기계로 살아가는 이 땅의 아버지1, 아버지2, 아버지3과 같은 존재, 핏줄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새 삶에 대한 이야기다.

 

오직 자기를 찾기 위해 떠난 ‘가출’이 가족속에서 돈 버는 기계로만 살아가는 자신의 ‘외로움’때문이었다는 선명우의 삶에서 이 땅의 아버지1, 아버지2, 아버지3...아버지100은 떠나지 못하는 ‘망설임’을 같이 보았다. 아내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가족 때문에... 라는 끈끈하고 감동을 줘야만 하는 ‘핏줄’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젊은이를 위한 소설’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버지’들이 보아야 할 책들이다. 물론, 아내들은 ‘내 남편’의 삶과 생각, 외로움이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아이들은 ‘우리 아빠’의 고뇌에 대해, 나아가 자신들이 꽂아 둔 ‘빨대’를 들여다 볼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자신의 온 몸에 꽂힌 ‘빨대’를 발견하지 못하고, 발견하더라도 사명감으로 스스로를 죽여가며 헌신하는 아버지들은 다르다. 자신을 바로 보아야 하고, 사회구조를 바로 직시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사명과 역사로 묻어버리기에는 자신의 삶을 너무 초라하게 만든다.

 

실밥터진 메리야스를 떠올리는 첫사랑의 알싸한 추억이 있고, 평생을 간직해 온 그 사랑이 있고, ‘가족’이라는 것은 ‘핏줄’이 아니라 ‘관념’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다시는 결혼하고 싶지 않고, 더더욱 아빠가 되는 것은 싫은 남자의 책임도 읽을 수 있다. 누가 누구를 비판하고 뭐라 할 수 없는 가슴먹먹한 사랑을 읽을 수 있다. 따뜻하다.

 

한 남자와 여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부부의 연을 맺고, 다시 한 공간에 모여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고 산다. ‘가족’이라는 끈끈함을 이유로 지금 여기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묻어버릴까. 과연 나는 지금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산다고 하지만 그런 관념의 거짓이 아닌 진정한 자아를 찾고는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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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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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이 책의 제목이다.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상세하게 리뷰를 달지 않아도 충분한 키워드를 표지에서 말해주고 있다. 오연호는 오마이뉴스 대표로 노무현대통령과의 마지막 인터뷰로 유명하다. 또 조국교수는 요즘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강연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조국교수, 어느 날 갑자기 내 옆에 다가왔다. 트위터에 등장하고 페이스북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광적으로 열광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젊은(?) 여성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마치 아이돌가수의 등장과 소녀팬의 열광 정도라고 묘사하면 적절할까? 젊은 지식인이 얼굴도 잘 생겼고, 말도 잘하는데, 거기다가 사상도 진보적이니 그러려니 생각했다.

나는 이 책<진보집권플랜>을 몇장 넘기면서 사람들이 왜 열광하는지 조금은 짐작된다. 그들은 나보다 먼저 그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학력과 외모, 그리고 활동의 이력에 대해 나보다 먼저 알았고 그를 먼저 만났기 때문이리라. 나또한 그들처럼 일찍 알았다면 환호성을 지르고 가까이 만난다면 기꺼이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먼저 페이스북에서 친구맺기를 해야겠다. 그가 친구로 맞아줄지, 말지는 중요하지 않다.

진보의 입장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거칠고 쉼없이, 주저함 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의 얄팍한 나의 사상적 조류(가 있기는 했나?)에 낯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치열한 자기구도적 열정을 새롭게 배운다. 진보에 대한 거침없는 자기성찰적 비판을 보면서 감히 선승의 풍모를 가졌다고 찬하고 싶다.

왜 진보가 차기정권을 집권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고 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성과와 한계들을 짚어보면서 앞으로의 당당한 준비를 주문하고 있다. 또 현재의 야당에 대해서는 ‘왕이 되기를 포기한 영주들’이라고 대놓고 꼬집기도 한다. 철저한 자기성찰에 대한 요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속시원하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구체적 대답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적이고 그것에 대한 대리만족이다.

이 책은 <진보>에 대해 개념적 정의부터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희망메시지다. 최근 베스트셀러 <정의란무엇인가?>를 통해 우리사회에서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고 대화와 토론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면, 다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통해 우리사회 - 자본주의를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의식의 성장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육체적으로 정신으로 무장한 사회구성원들이 <진보집권플랜>을 통해 <사회참여>라는 강스파이크를 내리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사회, 경제 민주화 영역에 대해서는 복지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현재 우리사회는 진보든 보수든 ‘복지’가 화두가 되고 있다. 무상급식, 전세대란, 저출산, 고령화, 일자리 등 다양한 영역의 민생영역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짚고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복지’문제를 들고 나왔으면서도 각자의 영역과 입장을 중심으로 비판만 있지, 대안이 없고 대안마련을 위한 대화도 없는 것이 현실정치 세계이다. 구체성이 결여된 채 포풀리즘이라고 상호비방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서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들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특히 진보진영에서는 ‘복지가 밥 먹여준다’ 또는 ‘진보가 더 좋은 밥을 먹여준다’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교육분야’에 대해서도 청년들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언급하고 있다. 대학가지 않으면 뒤처지는 인생이 되어버리는 사회, 우리나라를 두고 하는 말이다. 크게 배우는 대학(大學)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직업기능인을 길러내는 직업훈련원이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하되,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유럽의 경우와 대조적이다.

기성세대는 20대의 대학생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없고 취업을 위한 개인의 스펙쌓기에만 치중하는 것에 대해 지적할 것이 아니라 그 잘나가던, 사회의식 있던 386의 자녀들이 지금 20대이지 않은가? 지금의 386이 ‘생활우파’가 되어 찌들어 살고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먼저 대답해야 할 것이다.

통일분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의 MB통일정책을 두고 비난을 넘어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김일성 사후 ‘북한붕괴론’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걸어 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고 받으며 영향을 주는 사람사이의 관계문제와 유사한 것인데 그것을 못 풀고 있다. 감정만 건드리고, 자존심 상하게 하여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는 것 같으니 답답할 뿐~)

조국교수는 ‘北 도우며 비판하는 법륜스님 <연합뉴스>’를 인용하며 법륜스님의 북한인권 접근법을 적극 찬성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사회는 남한내 인권문제는 다루지 않으면서 북한의 인권문제만 민감하게 다루려고 하고 있다. 또 북한의 인권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그 인권문제로 피해를 입고 있는 북한민중의 배고픔에 대해서 대북인도적 식량지원이라는 것으로 연결지어 보지 못하는 진보와 보수진영을 포함한 우리사회 전반의 한계다.

‘검찰개혁’을 언급하며 권력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무현대통령 초기 ‘평검사와의 대화’에 눈 부라리며 나섰던 검사들은 지금 MB정부하에서 어떤 태도로 지내고 있을까? 최근에는 국회에서 검찰에 대한 법개정의 움직임에 검찰총장이 맞대응하는 장면들이 언론에 보도된 적 있다. 어디나 개혁은 쉽지 않다. 진보영역의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내부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서는 자신이 성찰과 내려놓음이 함께 동반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해하면서도 용서가 안되는 검찰의 행태에 대해서 ‘웃기는 검찰’이라고 욕이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다.

마지막 부분에 사람들(정치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작할때에는 <뒷부분에서 사람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이야기하겠다>던 것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듯 하다. 좀 더 세게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것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여기서 언급된 거물급(?) 정치인들은 개인의 영역이 아닌 공적영역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새로운 진보집권을 위한 비판이라면 분명히 할 소리는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약해서 조금 불만이다.

이 책은 처음 시작할때의 이야기만큼 이야기가 깊지는 않다. 그렇다고 불만은 아니다. 아마도 더 깊었다면 전문서적이 되어 석박사급들의 연구논문처럼 읽기도 이해하기도 난해했을 것이다. 진보-보수, 좌-우, 여-야 등의 용어와 그들의 말싸움에 골머리 앓을 많은 일반대중들이 읽으면서 ‘우리사회의 전반적 흐름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군~’하고 책을 덮는다면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개운하다. 그동안 알듯 모를 듯 한 정치인들의 발언과 행태도 불만이었고, 그것이 잘 이해 안되는 나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기만족을 찾을 수 없었는데 적어도 ‘앞으로 진보가 왜 집권해야 하는가?’, ‘진보가 밥먹여주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연구해야겠군~’하는 생각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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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마을 - 김용택 산문집
김용택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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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봄을 저만치 보내고 손에 손수건을 쥐고 땀을 닦고 있다. 어린 시절을 두메산골에서 보낸 나에게는 <고향>이라는 말 속에는 아련히 그려지는 그림들이 몇 가지 있다.
방학이 시작되면 첫날 동그라미를 크게 그리고 방학동안 어떻게 지낼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생활계획표를 먼저 그린다. 그리고는 계획표대로 지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어김없이 그랬던 것 같다.
다만 기억에 남는 것은 방학내내 물가에서 지냈던 거다. 아침햇살이 뜨거울때면 발가벗고 물에 풍덩풍덩 들어가고 뜨겁게 달구어진 자갈돌 위에 몸을 이리 저리 굽기도 하고, 점심먹고는 한 숨자고 일어나 해떨어지기 전까지 또 물에서 풍덩풍덩하던거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더 어렸을때는 형에게 덤비다가 맞아서는 강가에서 서럽게 울다가 엄마손에 이끌려 아랫도리를 벗은 채 시골장에 돌아다니다가 옷 한 벌 얻어 입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고기잡는다고 그릇위에 비닐에 구멍뚫어 고무줄로 덮어서는 안에 된장발라 흐르는 물속에 걸쳐두면 2-30분에 한 그릇이 가득 들었다. 제법 컸다. 왼손 손바닥을 보면서 오른손으로 엄지손가락으로 왼손 손목을 잡으면서 크기를 이야기해줄 정도로 큰 물고기들이 가득 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강가에 소를 몰아 놓으면 알아서 풀을 뜯어먹었다. 소먹이러 다니는 이야기를 하면 신기해 하는 사람들도 몇 있다. 소 먹이러 다닌다고 소를 잡고 내내 지켜보는 것은 아니다. 강가에 풀어 놓으면 알아서들 먹는다. 소먹이러 다닐때는 친구가 중요하다. 그런데 동네가 작아 친구가 별로 없었다. 한 명 있었는데 함께 소먹이러 다녔다. 소를 풀어놓고 강가에 대나무밭에 오솔길을 내고 안쪽에 대나무 몇그루 잘라내고는 두어 명 넉넉히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우리들의 아지터다. 사과서리를 해서는 여기서 사과를 먹었는데 사과밭 주인이 우리동네까지 와서 말을 흘리고 갔다. 사과서리 하다가 한 번 걸리기만 걸리면 그동안 없어진 사과값을 모두 물겠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겁을 먹고는 그동안 소먹이러 다니던 다리 아래쪽으로 당분간 가지를 못했다. 함께 소 먹이러 다니던 그 친구는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죽었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졸업할 때 18명이 졸업했다. 간혹 도회지로 전학가는 인원을 빼고 남은 인원이다. 이 사람들이 6년간 같은 반에 다니는 것이다. 동네는 틀려도 집안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모두 농사를 지었지만 나는 농사를 잘 모른다. 간혹 지금 시골길을 걸으면서 농사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하면 우리 형제들이 듣는다면 웃을 일이다. ‘네가 무슨 농사일을 해 봤냐?’할 거다. 그래도 지금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낫질도 잘하고 괭이질도 잘한다. 이 모든 것을 학교에서 배웠다. 어린나이지만 열 살이 넘어면서 학교에 토끼를 키우기로 했다. 서너마리에서 시작된 토끼는 번식률이 높아 대번에 토끼 사육장을 가득 메웠다. 토끼가 먹을 풀을 베어오는 것이 토끼당번이 할 일이다. 시골학교에 인원이 적다보니 4학년과 5학년이 모두 토끼당번이다. 이때 낫으로 풀베는 것을 배웠다.

6학년이 되어서는 염소를 사육했는데 아침에 등교하면 염소를 학교 뒤 강가에 매어두고 수업마치면 다른 친구들은 교실청소를 하지만 염소당번들은 염소 사육장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새 풀을 깔아두고 매우 둔 염소를 사육장 안으로 몰고 오는게 일이었다. 방학때도 염소 때문에 염소당번들은 돌아가면서 학교에 갔다. 학생수가 적다보니 지금 기억으로 약 5일에 한 번씩은 학교에 갔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겨울에는 난로 석탄대신 땔감으로 솔방울 주우러 산에 간 일, 난로위에 도시락 올려서 데워먹던 일 등이다.

<김용택 산문집 - 오래된 미래>

봄을 가만히 느껴보면서 이리도 꽃을 보고 환장했던 적 있던가 싶다. 그냥 달력넘기며 세월만 죽이는가 싶었는데 내게도 이런 어릴적 감수성이 남아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다. 봄꽃이 매화가 피고 산수유꽃이 피고 진달래 피고 물싸리꽃, 벚꽃, 배꽃, 사과꽃 순으로 피는 것을 모르고 그냥 봄에는 꽃이 피는구나 하는 심정으로 봄을 보내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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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언덕 푸른 강물과 흰 모래 깔린 강변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매화 꽃, 꽃, 꽃, 이 환장한 봄날의 매화꽃. 바람이라도 불어보라지, 바람에 날리는 흰 꽃 이파리들을 보며 어찌 인생을,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견디겠습니까. 어찌 환장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홀로 저 꽃들을 다 견디어 낸단 말입니까.
강 언덕 푸른 강물과 흰 모래 깔린 강변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매화 꽃, 꽃, 꽃, 이 환장한 봄날의 매화꽃. 바람이라도 불어보라지, 바람에 날리는 흰 꽃 이파리들을 보며 어찌 인생을,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견디겠습니까. 어찌 환장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홀로 저 꽃들을 다 견디어 낸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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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회비를 내지 않아 먼 길을 다시 돌아와 회비를 마련해 간 이야기는 40대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주 공감할 이야기일게다. 집이 넉넉해 이런 어려움 겪어보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누구도 이 이야기 들으면서 회비마련하느라 아등바등 했을 어머니의 분주함과 마음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지 않을 수 없다.

<꾀꼬리 울음소리 듣고 참깨 난다>의 글에서는 김용택시인이 농촌에서 살긴 살지만 농사짓는 사람이 아닐진데 농사일을 제대로 알기는 아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로 섬세하게 이웃농부들의 마음과 발걸음을 그려내고 있다.
<아내>의 가슴 먹먹한 따뜻한 행동들을 보면 참 남자들은 철들때가 아직 멀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다 그런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뭐그리 다른것도 없기 때문에 감히 말한다.
<두 할머니>의 긴 여백이 있는 대화는 답답함이 아니라 여유라는 느낌마저 든다. 글이 그래 써여져서 그런게 아니라 그 사이 전해오는 느낌이 그렇다는거다. 요즘처럼 바쁘게만 살아가는 사람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인터넷이나 메일을 통해서 금방 금방 대답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서는 이해가 안되겠지만 두 할머니의 모습은 그 자체가 우리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질문이다.  

<2부 봄날은 간다>에서는 이웃집 사람들과의 삶, 가르치는 아이들의 마음이 만나는 글들이다. <지렁이 울음소리>에서는 욕이 통하는 친구들과의 삶이 부럽다. <왼손과 오른손>에는 좌파 우파 등으로 나눠 싸우는 시대의 아픔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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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꽃은 보라색이네
이 마을 저 마을 없는 데가 없네
나는 오동꽃을 처음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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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를 쓰는 아이의 마음들을 읽으며 시골에서 선생님으로, 시인으로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몇몇은 부러울 수도 있을게다.

우리들에게 부러운것들은


도시가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우리들은 발전이라는 이름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앞을 향해 달려갔다. 지금도 토목공사를 대대적으로 벌려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하는 계획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돌아보는 옛날의 추억은 과거가 아니라 우리들의 미래가 되고 있다.  

산에서 어떤 새가 어떻게 울고, 들에는 어떤 풀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면서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한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은 쳐다도 보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들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을까? 제대로 가고 있을까 두려움마저 든다. 모두가 가는 갈이라 함께 휩쓸려 달려가고 있지만 거기가 벼랑끝인지 아무도 모르는 그 길을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다. 그것도 뒤질세라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말이다.

오늘 김용택의 <오래된 마을>을 덮으며 지난 추억을 곱씹을 수 있어서 좋았고 지금 내가 선 자리를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일 내 디딜 발걸음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편으로는 그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불러보고 아버지를 안아드리면서 수고하셨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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