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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평점 :
-도서협찬
사실 저는 이 책의 개정 전 판본을 예전에 읽은 적이 있어요. 다만 절판된 상태라 집 근처 도서관을 수소문해서야 겨우 빌릴 수 있었는데요.. ㅜㅜ 그때도 신기하고 낯설지만 묘하게 매혹적인 사유들에 매료되었는데, 이번에 이렇게 증보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단순한 재출간이 아니라 새로운 글이 더해진 개역 증보판이라니, 기다려온 팬으로서는 선물 같은 소식이었어요.
저는 원래부터 다와다 요코 팬이라 번역된 책은 거의 모두 찾아 읽었답니다. 어떤 책들은 다 읽고 중고로 정리하기도 했지만, 손에 쥐었던 시간 동안만큼은 제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어요.
이번 증보판 『영혼 없는 작가』는 총 23편의 산문이 실려 있는데,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다와다 요코 특유의 목소리가 가득합니다.
이중 몇 구절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함께 기록해두고 싶어졌어요.
영혼과 함께 살아가는 일
“영혼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동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사한 상상이다… 나는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내 영혼은 항상 어딘가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와다 요코가 그려내는 ‘영혼’의 이미지는 전통적인 신앙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결국 삶과 맞닿아 있는 어떤 것.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말을 걸 수도 없지만, 내가 겪고 쓰는 모든 것이 영혼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유는 몹시 시적이면서도 낯선 울림을 주었어요.
여행과 영혼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 영혼을 잃어버리고 영혼이 없는 채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어찌 되었든 그것이 여행자에게 영혼이 없는 이유다.”
특히 ‘영혼은 기차나 비행기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발상은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유럽으로 향하는 긴 여정 속에서 육체와 영혼이 서로 엇갈려버린다는 이 상상은, 현대 여행자의 고독과 공허를 기묘하게 포착하는 듯했어요. 이동이 곧 정체성을 흔드는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 낯선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몸, 피부, 그리고 경계
다와다 요코는 『목욕탕의 등장인물』 속 대화를 인용하며 피부색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로 피부에 색깔이 있다고 생각해요?… 색깔은 피부 표면에서 빛이 유희를 하면 생겨나는 것이에요. 우리 안에는 어떤 색도 없어요.”
피부를 둘러싼 빛과 색의 은유, 그리고 ‘당신들’과 ‘우리’라는 표현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문화적 경계가 얼마나 은밀하게 사람들의 몸에 새겨지는지를 드러냅니다. 단순한 차별 비판을 넘어서, 인간이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 자체를 흔드는 질문처럼 다가왔어요.
책을 읽는 손가락들의 언어
“책을 들고 있는 손가락들은… 정말로 다양한 표정을 만든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손가락들은 서로 아무도 못 알아듣는 대화를 나눈다.”
저는 이 구절을 읽고 한참 동안 책을 읽을 때 제 손가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게 되었어요. 독자마다 다른 습관과 동작들이 하나의 ‘제스처 언어’가 된다는 발상은 참 독특하더라고요. 다와다 요코의 글은 이렇게 일상적인 순간까지도 낯설고 특별하게 바꿔 놓습니다.
유럽을 혀로 감지한다는 상상
“유럽을 눈이 아니라 혀로 감지하고 싶다. 혀로 유럽의 맛을 느끼고 유럽을 말하면 관찰자와 대상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에서는 ‘시각 중심적 인식’에 대한 전복을 시도합니다. 엽서와 이미지 속 유럽 대신, 미각과 언어로 감각하는 유럽이라니! 세계를 다른 감각으로 인지하려는 상상은,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지각의 방식을 뒤집어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마무리
다와다 요코 『영혼 없는 작가』는 제목처럼 작가 자신이 영혼을 잃어버린 채로 써 내려간 글들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과 떨어져 있음’에서 비롯된 예리한 사유와 문장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절판으로 아쉽게 흘려보냈던 책을 이제는 새로운 편까지 담긴 증보판으로 다시 만날 수 있어 무척 감사한 마음이에요.
다와다 요코의 세계를 사랑하는 분들, 혹은 언어와 정체성, 경계에 대해 새롭게 사유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