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의 바깥
이제야 지음 / 에피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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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계절이 끝나고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때, 우리는 매번 같은 물음을 던진다. 지금까지 지나온 날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반대편의 진심을 마주하며 우리는 용기 내어 서랍을 열어 본다. 그러나 지나간 기억들은 손에 쥐려고 하면 할수록 빠져나가고, 다시 닫힌 서랍 속에서 우리의 믿음은 굳어지고 만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도 간직할 수 없는 각자의 계절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이유 없는 느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눈사람이 한 계절을 살고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 또한 특별한 근거 없이 찾아와 마음속에 밑줄을 긋는다. 그리고 그 밑줄들이 쌓여,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일을 쓰는 기초가 된다. 근거 없는 믿음도 언젠가는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날씨에 상관없이, 세상이 어떻든 간에, 사랑하는 일을 계속 사랑하고 싶다.

어린 나는 그렇게 미래로 돌아갔고 밀린 눈물을 닦으며 일기를 빼곡히 채웠다. 그때는 미래였던 순간을 현재의 내가 살아가며 결국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것을 배운다. 때로는 괜찮다는 변명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미래의 희망을 믿으며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날들이 쌓여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다락방의 책갈피를 넘기며 우리는 우리가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들을 마주한다. 우리는 사랑받았던 순간도, 슬픔을 겪었던 순간도, 모두 나 자신으로 체득하며 살아간다.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외워버린 것들을 품고 있다. 그래서 뿌옇게 살다가도 언젠가 문득, 어떤 장면이 떠올라 선명해지는 것이다. 이 모든 조각들이 우리를 이루는 작은 요소들이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고 믿으려 하지만, 깊이는 이해될 수 없는 이야기다. 밤새 일기를 읽으며 서로를 이해하려 해도 결국 우리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부둥켜 안는것, 서로의 일기장을 사랑하는 것이 관계의 깊이가 아닐까.

빛은 다양한 얼굴로 살아간다. 희망을 확신할 수 없어도 간절히 모은 빛들이 결국 우리를 비춘다. 내일은 더 슬펐으니까, 어제는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시간을 지나간다. 10년 전의 우리는 오늘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결국 우리는 어제가 되고... 내일이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을 배우고 기억을 쌓아간다.

서로의 바다를 건너며 우리는 볼 수 없는 틈을 바라본다. 틈을 좋아하는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곳에서도 존재하고 틈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를 투명한 존재로 만든다. 때로는 희망이 아니라 낭만으로 살아가고, 노력으로 사랑을 지켜낸다.

맹목적인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서도 여전히 온전한 나일까? 사랑이 우리에게서 걷어내어져도 우리는 그대로 우리일까? 한 철을 사는 새처럼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끝나지 않는 장마를 볕이라고 믿으며 모순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다.

모닥불 앞에서 시간을 태우지만 잊으려 애쓰던 기억들은 또 다른 이야기로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간직하고 잊지 않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밀도마저 사랑할 수 있을까? 서로가 너무나 빽빽하게 가득하면 다치고 마는걸까? 깊어지는 관계 속에서 안전한 틈을 두고 완벽하게 하나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서로를 흩어두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꿈꾸고, 기대하고, 간직하고, 흩어지는 모든 과정이 있었다. 우리는 영원을 약속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모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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