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어른을 위한 동화 4
안도현 / 문학동네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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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연 속에서 사는 버들치를 울타리 속에 가두었다고 미안해 하지만, 버들치는 시인 역시도 감옥 속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발길이 닿는 대로 갈 수가 있다고 착각을 하지요. 사람들의 발걸음이 시작되는 곳에서 끝나는 곳까지가 감옥의 내부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구요. 가고 싶은 곳을 지금 막바로 갈 수가 없다면 그건 감옥 속에 있다는 뜻이지요.'

왜 하필 감옥일까? 감옥이라는 곳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죄의 대가로 가는 감옥은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의 삶을 감옥이라고 표현하다니, 버들치의 눈에는 우리가 참 불행해 보였나 보다. 하긴, 나도 간혹씩은 내 삶이 감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감옥 속에 살고 있나? 나는 사회 속에서 '규칙적인 생활'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같은 시간에 잠드는 사람들. 모두 똑같은 모습의 나날들이 그들이 이야기하는 규칙적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도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같은 존재가 아닐까? 사회가 통제하기에 사람들은 너무 많다. 네모난 집에서 나와서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학교에 가서 네모난 책으로 네모난 생각을 배우는 아이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서로의 꼭지로 서로를 찌른다. 동그란 웃음을 원하지만 어색하고 네모난 웃음을 짓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네모난 감옥 속에서 사는 삶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듯 우리 모두가 똑같은 모습의 생활을 하는 삶이 감옥 속에 죄수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감옥이라고 생각하던 곳은, 사실은 감옥이 아니라, 사랑의 밭이었다. 사람들이 사랑을 뿌리고 그 열매를 거두는 사랑의 밭이었다. 모두 다 자기가 살고 있는 작은 일상 생활의 공간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사람들과의 사랑을 키워간다. 이 밭에는 사랑이 있고, 끈끈한 정이 있다. 지금 당장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 밭에다 키워놓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학교에서 지겨운 수업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는 이유는, 나에게 기대를 가지고 나만을 바라보는 부모님과 나의 미래를 위해 노력해 주시는 선생님 때문이다. 어른들이 직장을 벗어나 일상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올망졸망한 자식들과 사랑하는 사람 때문이다. 이 사랑의 밭이 없는 사람은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그들에게는 기댈 수 있는 안식처도 없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나만의 자유를 택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의 삶은 참 소중하다. 가끔씩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 무조건 달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나? 나를 바라봐 주는 사람은 참 많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 관계 속에서 내일을 살아갈 희망을 얻는다. 안도현님의 '관계'는 이렇게 행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갖고 나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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