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순이 언니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앨범을 뒤적이다가 빛바랜 흑백 사진을 유심히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아현동 골목길에서 소꼽친구 여자애와 찍은 사진이었다. 여자애는 원피스에 양장 구두 차림이었고, 난 흑백의 백색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아마 5살(1972년)쯤 되었으리.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를 읽다가 낯익은 동네가 나왔다. 아현동. '봉순이 언니'에 나오는 짱아처럼 유년기를 보냈던 곳이다.

책을 접하고 단숨이 읽어내려갔다. 내가 아는 공지영이라는 작가는 '고등어'라는 작품을 접한 것 밖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간간히 신문을 통해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것 빼고는 나는 작가 공지영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고등어'를 읽으며 끝자락에서 뭔가 허전함을 느꼈는데, '봉순이 언니' 또한 뭔지 모를 허전함이 다가왔다. TV 매체에서 하도 떠들어대서인지 동료 직원이 읽고 건네준 '봉순이 언니'는 내게 그저 신변잡기 같았다.

흑백 사진 속에 담긴 앨범을 보며 나누는 세태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 속의 발문에서 박혜연 평론가는 '이 소설은 60년대 세태를 다룬 소설만은 아니다. 공지영은 그 시대에 대한 서사적 접근과 아울러 서정적 자아를 통한 내면화도 시도했다'고 했는데 그 서사적 접근이나 서정적 자아라는 것은 작중 화자인 5~7살박이 짱아의 관점 때문인지 강하게 다가서지는 않는다. 그저 간간히 비쳐지는 서구식으로 살고자 했던 아버지와 그런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기득권을 유지해 가면서 동정어린 눈으로 봉순이를 살피는 어머니의 이중적 태도 등이 서사적 접근 모습을 보일 뿐.

소설의 끝자락에서 작가는 반전을 꾀하며 독자에게 뭔가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전하려 한 것 같은데, 씁쓸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난, 박완서의 소설이 떠올랐다. 제목을 기억할 수 없지만 70줄이 넘은 작중 화자가 자신의 집안 살림을 거들던 이종 사촌 여동생이 환갑이 넘은 나이에 남쪽 외딴 섬의 노인에게 재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소설이었다. 그 소설에서 난 주체로서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여 섬으로 재가한 그 이종 사촌 여동생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다. 그러나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가 쉰 살이 되어 개장수와 함께 도망쳤다는 내용에서 같은 희망을 찾기에는 봉순이 언니의 삶은 주체적이라기 보다는 도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봉순이 언니'가 나를 껄끄럽게 한 것은 바로 작중 화자였는지 모른다. 남부러울 것 없이 곱게 자란 짱아의 관점에서 바라본 '봉순이 언니'의 삶은 어머니가 바라보는 관점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길들여지듯이 살면서 바둥바둥 자신의 삶을 찾아 가지만 결국 '점점 더 가난뱅이가 되어갔다'는 작중 화자의 발언에서 나는 성조기를 떠올렸다. 너무 심한 비약일까. 책 장을 덮으며 좀 씁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