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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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한 책. 이름부터가 참 특이하다.'요시모토 바나나'.어째서인지 그 이름은 초등학교 때의 음악시간을 연상시킨다. '바나나'라는 이름은 꼭 선생님이 열심히 밟아 주시던 풍금 같고, '요시모토'라는 성은 내가 신나게 쳐대던 탬버린 같다. 일본인의 이름이 이렇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다니. 아니, 책의 옆면이 이렇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다니. 그저 놀랍다. '키친' 부엌이군. 요리는 물론, 설거지도 즐기지 않지만 부엌 없는 집은 없으니까. 부엌 또한 나에게 친숙했다.그래서 나는 '친숙'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들었다.

키친이라는 두 편의 이야기는 모두 죽음이 깔려져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미카게의 할머니가 죽었다. 그리고 꽤 오래 전일 테지만 요이치의 어머니도 죽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에리코가 죽었다. 흐음, 솔직히. 미카게 할머니의 죽음과 요이치 어머니의 부재는 그리 슬프지 않았다. 원래부터 없던 사람들 같다고나 할까.

뭐, 나로선 알 수가 없지 않나. 미카게의 할머니나 요이치의 어머니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고, 어떤 음악을 즐겨들었으며, 어떤 일을 하고싶어했는지. 딱 잘라 말하면 그 들은 내 관심 밖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에리코의 죽음은 무척 슬펐다. 나는 그, 혹은 그녀가(나는 에리코가 어떤 호칭으로 불리기를 더 좋아할는지 마저도 궁금하다) 뭐든지 그냥 사고 마는 취미가 있었으며, 파인애플을 아내와의 기억 때문에 기른다는 것과, 바의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토록 아픈 일 이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해준 에리코였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어둡고 칙칙하다는 느낌 따위는 전혀 들지 않았다. 부엌이 가지고 있는 생동감이라는 고유의 분위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죽음조차도 친숙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풍겨 나오는 친숙함은 그 도가 지나쳐서 유이치가 빼어난 미녀인 에리코를 두고 '그 사람, 남자예요.'할 때는 내가 '원래 이 세상 여자들이 태어날때는 전부 남자였었지'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이 책은 단편집이다. 단편집임에도 불구하고 '키친'과 '만월'(키친2)은 한 중편소설의 1, 2장처럼 되어있다. 이렇게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느슨한 부엌이야기는 아, 재미있어! 하는 감탄사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빨리, 한 번에 읽을 수 있다. 나도 지하철을 타고 어학원에 가는 동안 다 읽어 버렸을 정도이니까. 약간 쑥스럽지만 쌀밥 같은 이야기, '키친'이 나는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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