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이대
하근찬 지음 / 어문각 / 1993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사실 한국 단편 문학들을 좋아하질 않는다. 항상 수필이나 현대 소설 같은 것을 읽는 것뿐이다. 그래서 언니가 내어준 책의 7가지 글을 모두 읽었을 땐 처음엔 너무 어렵고 막막하여 무엇으로 독후감을 써야 할지 몰랐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 뚜렷이 남는 소설 하나가 있었다. 바로 맨 처음 읽었던 '수난 이대'였다. '수난 이대' 속에 나오는 두 주인공 '만도'와 '진수'. 나는 그 두 사람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두 사람의 아픔을 보면서 나는 일제 강점기와 6.25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만도와 진수는 각각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없는데 만도는 일제 강점기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잃었고 진수는 6.25에 참전하다가 잃어버렸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두 사람은 이렇듯 큰 아픔을 겪었다. 만도가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서 일을 하다가 팔을 잃은 기억을 회상 할 때 나는 만도를 보며 일제 시대 때 이렇게 한국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구나 하면서 일제 시대 때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만도를 떠나보내는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마음도 이해 할 수 있었다. 가면 살아서 돌아올지도 모르는 곳에 남편을 떠나 보내야 하다니... 정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거의 모든 한국 사람들이 일제에 탄압 받고 강제 징용에 끌려갔으니 그들의 아내들은 다 얼마나 많은 슬픔을 겪었을까? 이때까지 난 살아오면서 일제 시대의 비극을 말로만 들어서 그냥 그랬나보다 하고 그냥 지나칠 뿐이었다. 가끔 한국인들을 심하게 고문하는 장면만 나오면 얼굴을 찡그리고 보기 싫어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만도를 보니 일제 시대 때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앞으로는 그 때의 우리 민족의 아픔을 항상 되새겨야겠다.

만도가 전쟁을 끝내고 다리를 잃고 돌아온 아들에게 처음으로 한 소리는 '에라이, 이놈아!'였다. 가슴이 아파 왔다. 그것은 자신도 불구인데 아들녀석 까지 그런 모습을 하게 된 것에 대한 분노였다. 아들 진수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고, 진수를 그렇게 불구로 만들어 버린 시대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다. 그 두 사람 잘못도 아닌데 전쟁 때문에 불구가 되어버린 것이 슬펐다.

중간에 진수는 이렇게 말을 한다. '이래 가지고 나 우째 살까 싶습니더.' 그러면 만도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째 살긴 뭘 우째살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 사는기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이곳에서 나는 만도의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부자는 자신들의 아픔을 극복해 내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만도 부자의 낙관적인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도 같이 더불어 힘이 솟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만도 부자의 낙관 적인 태도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제 강점기'와 '6.25'라는 큰 고통을 겪었던 만도 부자. 그러나 그들은 아픔을 극복하고 일어선다. 비극적인 모습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려고 하는 '만도'와 '진수'. 내가 만약 만도 부자였더라면 아주 비관하고 낙심하였을 텐데... 이들의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부자의 뒷모습이 내 기억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