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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ㅣ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평점 :
품절
* 작가 프루스트 (1871~1922)
어두운 방 안에서 침대에 엎드려 글을 끼적대고 있는 한 남자가 보인다. 방으로 들어오려는 밖의 소리는 코르크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가 끝내 튕겨져 되돌아나갔다. 그는 1903년 저명한 의학박사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905년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사교계를 완전히 정리하고, 침실의 벽을 코르크로 전부 막았던 것이다. 낮과 밤의 구분이 소용없는 이곳에서 남자는 아침 8시라는 시간에 잠들어 오후 3시라는 시간에 깼다. 그 외의 시간 동안의 대부분을 그는 펜을 잡고 글을 썼다. 글을 쓴 건 지금이 처음은 아니었다. 예술과 문학에 깊은 교양을 갖고 있던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영향을 받고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9살 무렵 산책길에서 첫 천식 발작을 겪으면서 심약한 그의 최고의 친구는 교양 있는 어머니와 독서가 되었다. 그녀는 언제까지나 완벽한 이미지로 그에게 남아있었다. 한 낡은 앨범 속에서, 열 네 살의 그는 이렇게 응답하고 있었다.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은 어떤 것입니까?>
-<엄마와 헤어지는 것>
-<당신이 증오하는 인물은?> 하고 다시 묻자,
-<좋은 것을 좋게 느끼지 못하고, 애정의 따사로움을 모르는 사람>
어머니를 통해서 고전에 대한 기호를 한껏 키워나갔던 그는, 어떤 광경들을 보게 될 때 그것들을 문장의 형태로 노트해 두고 싶다는 욕구를 그때 이미 느끼고 있었다. 훗날, 들판 가운데에서 맴도는 세 개의 종탑이 산책자가 장소를 옮기는 데에 따라서 서로 떨어졌다가는 만나고, 또 서로 겹쳐지기도 하는 광경을 지면 위에 고정시켜 보려고 시도하다가, 마침내 그것을 다 쓰고 난 뒤에 그는 너무도 독특한 어떤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것은 한 감각에 어떤 명료한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유로워 질 때, 그 예술의 매력에 의해 작가가 느끼게 되는 그런 행복감이었다. 그는 고등중학에 가서 동인지에 글을 썼고, 숙제로 내준 에세이를 자신만의 스타일 - 산문식의 이음자리도 없이 까다롭게 얽힌 글- 을 썼다. 친구들은 야유했지만, 선생님은 그의 진가를 알아주었다.
1888년 17살이 되던 해에 철학급에 들어갔고, 거기서 그는 칸트학파가 되었다. 그리고 흐리멍덩한 감각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감각의 뜻을 찾아내 표현하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의무로 느꼈다. 그는 <즐거움의 나날>이라는 장편을 자비 출판하지만, 그를 부자에 사교계만 드나든다고 생각하던 비평가들로부터 빈축을 산다. 그 후 <장 상퇴유> 장편을 쓰지만 그 소설 또한 실패한다. 1899년 그는 영국의 미학자 존 러스킨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러스킨은 아름다움은 그 자체가 바로 진실이라는 심미관을 발전시킨다. 러스킨의 심미관은 예술가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고정된 예술 관념들을 배척하고,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만 사물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러스킨에게 매료되었고, 그의 미학을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번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아미엥의 성경>과 <깨와 백합>이라는 러스킨의 책을 번역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장황하게 쓴 존 러스킨의 저작을 번역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고, 문학에 관해 독립적인 자기 시각을 갖게 된다. 박학, 어원, 고풍스러움을 너무 추구한 나머지 수다스러운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되고, 자신이 내적으로 느끼는 필연적인 것을 적어야 한다고.
“진정한 예술작품은 우리 영혼의 숨은 리듬- 그것은 너무 활력이 넘치는 리듬이므로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 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 숨겨진 리듬은 우리의 피의 맥박이 자동적으로 기입되는 심장 박동기의 기록과 매우 흡사하다. ....... (박학을 과시하려고) 작가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큰 작가가 될 수 없다. 생트 뵈브의 경우,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나오는 표현의 일탈은 매력을 지닐지라도 -너무 박학스러움과 고풍스러움을 좇는 태도 때문에- 그의 재능은 이류에 머문다” 고 그는 <깨와 백합>의 서문에 썼다. 그리고 그는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작가의 삶 속에서 찾으려는 생트 뵈브를 비판하는 글을 쓴다.
“우리 삶의 각 시간들은 죽어가는 즉시 어떤 물질로 된 오브제 속에 육화되고 숨는다. 우리가 그 오브제를 만나지 않으면 그 시간들은 영원히 그곳에 갇혀 있게 된다. 그 오브제를 통해서 우리는 그 시간을 알아보고 부르면, 그 죽은 과거의 시간은 해방된다. -<생트 뵈브를 반박하며> 중에서”
이런 생각을 갖고 쓴 <스완네 집 쪽으로>의 원고가 1912년 6월 완성된다. 그 소설은 그의 일기와 습작노트의 많은 부분에 모티브를 두었으나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게 한 계기는 1909년 어머니가 준 홍차를 마시면서였다. 그는 <스완네 집 쪽으로>에 나오는 프티트 마들렌 의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는 완성된 <스완네 집 쪽으로>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으나, 사교계를 드나드는 그의 전력과 전 작품들의 실패 때문에 전부 거절당하고 다시 자비 출판을 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대문호인 앙드레 지드로부터 출판 거절에 대한 사과 편지를 받는다. 후에 두 개의 출판사가 남자의 책을 출판하기로 한다. 그는 1919년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로 콩쿠르 상을 수상한다. 그는 뒤늦게나마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지만, 명성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꾸준히 코르크로 막힌 방에서 글을 썼다.
갑자기 손을 멈춘 남자가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않을 만큼 추운 날씨였으나, 난방이 되지 않은 지 오래였고, 난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지도 오래였다. 그는 오로지 글에 대한 생각 외에는 하지 않았다. 기침은 자주 났고, 기침을 할 때마다 폐 부근을 부여잡아야 했지만, 그는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입에 대었던 손수건에는 아무렇게나 칠한 새빨간 물감을 접었다 편 듯 그에게서 나온 피가 데칼코마니 그림처럼 그려져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했으나, 두렵지 않았다. 그에게 시간은 직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시간, 그리고 지난날 소유하였던 오브제 속 그 어디엔가 ‘포로’가 되어 살아 숨 쉬고 있다가, 우리가 우연히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의 포로가 된 영혼들은 끝내 영원의 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살아낸 지난날이 해방되고 부활한다고 믿었다. 그는 사물의 무의미하고 추한 모습을 벗기고 새롭게 보면서 매일 매일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시계는 아침 8시를 향하고 있었다. 남자는 순간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잠이 들었다는 생각 없이 잠이 들고, 다시 그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면, 방은 또 한 번의 탄생을 겪을 것이고, 자신은 시절을, 향기를, 심상을 여행할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삶은 우리를 끊임없이 옥죄면서 영혼에 상처를 준다. 우리가 사회와의 끈이 한순간 느슨하게 됨을 느낄 때, 부드러움과 명철함을 느낀다. 내가 어렸을 때, 노아의 이야기는 가장 비참한 것으로 보였다. 대홍수로 인해 40일 동안 나의 방주 속에 갇혀 있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는 자주 아팠고, 오랫동안 나의 ‘방주’속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리고 비록 노아가 닫혀진 방주와 칠흑 같은 땅에 있었다 할지라도, 다른 곳보다 방주를 통해 세상을 더 잘 보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 윌리 해트에게 보낸 편지(1893) 중에서”
<콩브레> 구성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어른이 된 나(현재)는 잠이 드는 생각 없이 잠이 들고, 잠이 들었다가 깨었다가 하면서 어린 시절의 콩브레를 무의지적 기억(과거)의 단편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연히 프티드 마들렌과 홍차를 마시다가 어린 시절 콩브레의 모든 것을 떠올리고 다시 잠(현재)에서 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