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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문장력이 좋다. 어떻게 이런 문장까지 썼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문장이 많았다. 첫 구절부터가 인상적이다.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는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저자는 이 윤리학의 질문을 문학에 접목시킨다.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문학은 몰락의 에티카라고. 몰락 이후의 첫 번째 표정이라고.
제1부의 소설평은 매우 흥미롭다. 세계, 문제, 해결이라는 세 가지 층위로 소설을 평하는 1장 부분은 그 틀에 맞게 해석될 수 있는 소설을 가져왔겠지만 세계를 파악하고, 문제를 분석하고, 그리고 해결방안을 제시 혹은 제안하는 과정으로 소설을 분석한 저자만의 시각이 돋보였다. 비판을 해야 할 부분은 비판하고, 칭찬할 부분은 칭찬하면서 거리두기를 하는 비평방식도 젊은 평론가의 패기이자 소신이자 지성으로 느껴져 좋았다.
그 후에 김훈과 올드보이, 무진기행은 굉장히 자주 써먹는 오이디프스, 라깡, 오뒤세우스와 세이렌으로 풀어냈지만,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자가 많이 공들여 생각하고, 쓴 글이라는 게 느껴졌다. 특히 무진기행은 김승옥이 정말로 오뒤세우스를 읽은 후에 그렇게 쓴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질 정도로 적절하게 분석된 비평이었던 것 같다. 박성원과 김영하, 배수아의 소설 비평은 좀 지루해진다. 문장은 역시 깔끔하고, 날카롭지만, 더 풍부하게 해석해낼 수도 있을 소설을 계속 지젝과 라깡 혹은 정신분석 이론 중심으로 분석해놓아서 오히려 소설을 바라보는 문을 좁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자와 대타자, 닿을 수 없는 욕망 그러나 계속 꿈꾸게 되는 욕망의 에티카는 말은 현란하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진부할 때도 있으니까.
제 2부의 시평은 소설평보다 더 풍성하고 재미있고 자유롭다. 저자가 소설보다는 시에 더 애착이 많은 사람일거라고 추측될 정도.(알고보니 그는 시평론가 라고 한다.) 그는 소설을 닿을 수 없는 욕망과 내가 될 수 없는 타인, 그리고 정말로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정체성 등에 초점을 맞추어서 평했으나, 시는 계속 뻗어나갈 수 있고, 아무데나 튈 수 있고, 그 슬픔과 자유와 욕망과 반항이 모두 어우러져 혹은 따로따로 전부 하나의 문학이 될 수 있고, 삶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평한다. 저자는 “전복을 전복하는 전복”의 제목처럼 그러한 사고와 생각과 문장과 그리고 날카로운 시각을 이 시평에서 보여준다. 그는 시를 상투와의 전면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서정이 상투적인 것이 되어버린 이제는, 기존의 서정을 뛰어넘은 새로운 서정을 보여야 할 때라고 한다. 단, 그는 “새로워서 좋다”가 아니라 “좋은데 새롭다.”를 기다린다. 감각은 야생동물이고, 길들이는 순간에 죽는다. 감각의 본능은 배반이고, 감각은 이중 스파이고, 감각은 이성을 배반하면서 동시에 세계를 배반한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일은 자신의 언어, 그리고 지금의 ‘나’를 계속 배반하는 일일 것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문학은 몰락의 에티카이다.
제3,4,5부는 좀 따분하다. 새로운 시각을 선보이는 곳도 있지만, 기대한 날카로운 분석비평 대신 예리하고 날카로운 호평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평론가의 평론처럼 현란한 말들과 사유를 이용해 말놀이를 하는 것처럼 느껴져 아쉽다. 물론 문장은 좋다. 그만큼 치열하게 생각하고 공부한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젊고 능력있는 그는, 조금 더 건방져도 된다. 아니, 건방져야 한다. 현란한 말솜씨의 평론 매너리즘에 빠지는 평론가는 너무 많지 않은가? 그러니 신형철은 자신이 평한 김수영의 시처럼, "젊은 평론가여, 평론에 침을 뱉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