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홍성욱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STS는 Science, Technology, Society의 앞 글자만 따다 만든 줄임말이다하나의 학문 분야로서 STS는 말 그대로 과학과 기술그리고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이 세 가지를 따로따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연구한다과학기술사회를 애초에 분리되지 않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STS의 기본적인 흐름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어떤 이는 STS를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줄임말로 쓰기도 한다과학과 기술에 대한 연구가 곧 사회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이다나는 대학원에서 과학지식사회학영어로는 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SSK)를 공부했는데 이 역시 큰 범주에서 STS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STS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학문이다더군다나 STS적인 관점으로 사고하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더욱사람들이 내게 전공을 물어볼 때마다 나는 과학사회학이라고 짧게 말하곤 했는데그 때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의아해 하곤 했다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는지 궁금해 했다는 게 아니라과학을 공부한다는 건지사회를 공부한다는 건지도대체 사회학에 과학이란 글자가 왜 붙는 건지말 그대로 과학사회학이란 말을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다그러면 나는 그저 과학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하는 거에요라며 대충 설명하곤 했다.

 

사실 내 스스로가 STS란 학문을 좋아하고 즐기다보니 사람들에게 내가 공부하는 것을 소개하고 이해시켜주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다그러나 늘 그것이 쉽지 않았다물론 스스로가 STS의 초보자로서 남들에게 설명해줄 만큼의 실력이 없기도 하거니와많은 사람들의 경우 과학과 사회가 사실은 구분되지 않는다는 말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들이 멍청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구분되지 않는 과학과 사회를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그것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는 이야기다그러면 나는 칸트의 코페루니쿠스적 발상의 전환부터 시작해서 포퍼와 쿤을 거쳐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까지 인용해가며 내가 알고 모르는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적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꺼내곤 했다.

 

그런데 여기두서 있게 STS를 설명해주는 친절한 입문서가 있다서울대학교의 홍성욱 교수가 쓴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이다나는 이 책이 전공자들을 위한 입문서가 아니라 대중입문서라는 점에서 아주 큰 점수를 준다. STS가 생소할 독자들을 위해 아주 친절하고 재미있게 썼다. STS의 기본개념으로부터 차차 이를 이용한 응용까지 단계별로 소개가 잘 되어있다.

 

 제 1, ‘인간과 비인간은 STS가 가진 가장 독특하고도 새로운 관점을 여러 가지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우리가 단지 사물객체로만 여기는 비인간을 하나의 행위자이자 주체로 여기게 될 때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제 2, ‘네트워크로 보는 테크노사이언스는 바로 그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예를 들고 있다. STS는 인간과 비인간을 동등한 행위자로 여기고각각의 행위자는 그 고유의 본질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행위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획득하고의미를 변화시킨다고 본다이 점에서 한 행위자와 다른 행위자의 관계가 바로 하나의 네트워크이며과학-기술-사회는 서로 동떨어진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사실은 분리할 수 없는 거대한 네트워크라는 것이다과학과 사회는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를 만들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제 3, ‘과학철학적 탐색은 2장에서 보여주는 네트워크의 관계적 속성을 과학철학을 이용해 좀 더 깊은 차원에서 탐구한다이 장에 이르러 독자는 자연스럽게 과학과 세상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있고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세상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네트워크로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우리가 네트워크를 바꿔볼 수도 있지 않을까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제 4,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는 우리가 어떤 과학기술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인지다른 말로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이 세상을 바꿔나갈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이처럼 짜임이 좋게 쓰였기 때문에또 정말 많은 예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자연스레 STS의 시선을 이해하고 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사실 나는 이 책에서 제시되는 하나하나의 예들이 너무나 재미있었다같은 분야를 전공한 나로서는 필요에 따라 알맞게 과학사과학철학과학사회학적 정보와 지식이 교차할 때마다 필자의 해박함을 부러워하기도 했다그래서인지 책의 말미에 붙여놓은 참고문헌 목록을 계속해서 들쳐보며 내가 읽어야 할 자료들을 모으는 재미도 쏠쏠했다마치 한 학기 대학 수업을 들은 느낌.

 

대중입문서이지만 학사석사정도의 전공자라도 STS의 흐름을 개괄하고 풍성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볼 만하다고 여겨진다나는 앞으로 과학사회학이 뭔지 묻는 친구에게 이 책을 보라고 권하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에서 살아남기 - 우리가 몰랐던 신기한 전쟁의 과학
메리 로취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의 유명한 과학저술가 메리 로치(Mary Roach)의 책을 만났다. 제목은 전쟁에서 살아남기(Grunt). 비록 메리 로치는 유명했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이번에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약간 성급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팬이 됐다. 나는 무엇이든 팬이 되면 충성심이 강한 편인데, 이로써 그녀는 한국에 아주 충성스러운 팬 한 명을 더 갖게 되었다. 축하합니다, 메리 로치!

 

이 책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책이 쉽다는 점이다. 최근, 쉬우면서도 정보 전달에 소홀하지 않은 대중과학서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책은 사람들을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만드는, 소위 쫄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다른 이에게 추천해준 과학책을 읽다가 포기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또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독자를 쫄게 하는 그 무언가가 없다. 보통 과학책을 읽다보면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이해되지 않아 책의 앞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자주 맞이하곤 한다. 그러나 전쟁에서 살아남기를 읽으면서 나는 책의 앞으로 돌아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전사처럼, 오직 돌격 앞으로!”만 있었다. 그만큼 이 책은 쉽다. 그저 그녀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들을 읽어 나가다보면 절로 이해가 된다. 그래서 나는 복잡한 과학 이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일반 독자들이 납득하기 쉬운 언어로 마법처럼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메리 로치에 대한 평가에 완전히 동의한다.

 

쉬운 과학책이기 때문인지, 이 책은 또한 재미있다. 그녀가 책을 서술하는 방식은 다분히 인류학적이다. 군대로, 그 중에서도 전쟁의 과학을 수행하는 과학자들의 세계에 들어가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연구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그녀가 단순히 관찰자이자 전달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군인들, 과학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의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그저 한 사람의 일반인으로서 전쟁의 과학을 관찰하고, 참여하며, 다른 이들과 소통한다. 그녀가 뛰어난 군인이거나, 과학자라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것이 메리 로치가 과학을 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과학에 엄청난 권위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 앞에서도 쫄지 않고, 그저 옆집 아주머니처럼, 또는 친한 친구처럼 과학을 대한다. 그녀가 종종 던지는 바보 같은 질문들은 실은 우리가 할 법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로서 독자들은 나 자신이 그 연구현장에 참여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이것이 책의 재미를 더한다.

 

이 책, 전쟁에서 살아남기는 바로 이처럼 과학을 친근하게 대하는 메리 로치의 접근법이 낳은 직접적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 책은 확실히, 어떻게 더 많이 또 더 효율적으로 상대방을 죽이고 굴복시킬 것이냐 하는 전쟁 과학의 주된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대신 전투복, 소음, 성기이식, 설사, 체온, 구더기, 악취, 상어 기피제, 수면 등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전쟁 과학에 집중한다. ‘전쟁의 과학이라는 똑같은 이름 아래에서 전혀 다른 주제, 그것도 약간은 엉뚱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는 주제를 바라볼 수 있는 이와 같은 시선의 전환이 사실 쉬운 것은 아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과학은 대중들이 그것을 함부로, 또는 친근하게 대하기엔 뭔가 어려운, 사람을 쫄게 만드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과학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미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과학 그 자체에 대한 엄청난 신뢰와 그 신뢰가 빚어내는 과학의 권위, 권력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게는 과학책을 대할 때 늘 쫄 수밖에 없는 것이고, 크게는 논란이 있는 사회적 이슈에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며 문제를 종결하려는 시도에 쉽게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스스로가 과학에 대한 권위와 권력을 강력히 인정할 때, 우리는 과학이 제시하는 것만 보고 과학이 말하는 것만 듣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일반인들이나 할 법한 엉뚱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학으로, 전통적으로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에 대한 과학으로 시선을 돌린 메리 로치가 대단히 새롭다. 그리고 그녀가 보여주는 과학들’, 전쟁 속에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약간은 독특하고 괴짜스러운 과학들이 상당히 반갑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선의 전환과 전환된 시선이 비추는 엉뚱한 과학들이 과학을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단지 쉽게 쓴다고 과학이 친근해 지는 게 아니다. 대중이 과학에 부여한 무의식적인, 약간 과도한 권위와 권력이 없어질 때, 과학은 진정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메리 로치가 전쟁에서 살아남기, 이 책에서 친근한 과학을 보여주고 제시하는 작업을 상당히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해봄직한 바보 같은 상상과 의문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너무나 사소해 보이는 것을 연구하는 것, 엉뚱하고 괴짜스러운 것들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 사실 과학도 그런 것들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면 과학은 우리가 쫄아야 할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손에서 조물딱 거리며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내는, 그렇게 우리가 과학의 흐름과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는 친근하고 친숙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 개발이라는,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전쟁의 과학으로 인해 세계정세가 급속도로 불안해지는 이맘, 사람을 살리는 전쟁의 과학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려보면 어떨까? 이런 식으로 다른 여러 과학들에서도 새로운 접근과 시선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써졌기 때문에 좀 더 깊이 있는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독자에게는 지적 유희의 측면에서 부족할 수 있겠다는 우려가 남는다. 가볍게 읽기는 좋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게감은 약하다. 개인적으로는 과학대중서 중에서도 가벼운 편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소재 자체가 워낙 참신하다보니 그것만으로도 읽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근거 이론의 발견 - 질적 연구 전략
Glaser, Barney G. 외 지음, 이병식 외 옮김 / 학지사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스트라우스와 글래이저가 개발한 근거이론의 초기판. 근거이론의 역사에서 근거이론의 초대 역사를 담당하는 아주 중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책의 번역은 아주 개판이다. 미묘한 단어의 차이는 물론 중대한 번역의 실수에서부터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구글식 번역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