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살아남기 - 우리가 몰랐던 신기한 전쟁의 과학
메리 로취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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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한 과학저술가 메리 로치(Mary Roach)의 책을 만났다. 제목은 전쟁에서 살아남기(Grunt). 비록 메리 로치는 유명했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이번에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약간 성급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팬이 됐다. 나는 무엇이든 팬이 되면 충성심이 강한 편인데, 이로써 그녀는 한국에 아주 충성스러운 팬 한 명을 더 갖게 되었다. 축하합니다, 메리 로치!

 

이 책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책이 쉽다는 점이다. 최근, 쉬우면서도 정보 전달에 소홀하지 않은 대중과학서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책은 사람들을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만드는, 소위 쫄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다른 이에게 추천해준 과학책을 읽다가 포기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또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독자를 쫄게 하는 그 무언가가 없다. 보통 과학책을 읽다보면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이해되지 않아 책의 앞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자주 맞이하곤 한다. 그러나 전쟁에서 살아남기를 읽으면서 나는 책의 앞으로 돌아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전사처럼, 오직 돌격 앞으로!”만 있었다. 그만큼 이 책은 쉽다. 그저 그녀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들을 읽어 나가다보면 절로 이해가 된다. 그래서 나는 복잡한 과학 이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일반 독자들이 납득하기 쉬운 언어로 마법처럼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메리 로치에 대한 평가에 완전히 동의한다.

 

쉬운 과학책이기 때문인지, 이 책은 또한 재미있다. 그녀가 책을 서술하는 방식은 다분히 인류학적이다. 군대로, 그 중에서도 전쟁의 과학을 수행하는 과학자들의 세계에 들어가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연구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그녀가 단순히 관찰자이자 전달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군인들, 과학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의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그저 한 사람의 일반인으로서 전쟁의 과학을 관찰하고, 참여하며, 다른 이들과 소통한다. 그녀가 뛰어난 군인이거나, 과학자라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것이 메리 로치가 과학을 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과학에 엄청난 권위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 앞에서도 쫄지 않고, 그저 옆집 아주머니처럼, 또는 친한 친구처럼 과학을 대한다. 그녀가 종종 던지는 바보 같은 질문들은 실은 우리가 할 법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로서 독자들은 나 자신이 그 연구현장에 참여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이것이 책의 재미를 더한다.

 

이 책, 전쟁에서 살아남기는 바로 이처럼 과학을 친근하게 대하는 메리 로치의 접근법이 낳은 직접적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 책은 확실히, 어떻게 더 많이 또 더 효율적으로 상대방을 죽이고 굴복시킬 것이냐 하는 전쟁 과학의 주된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대신 전투복, 소음, 성기이식, 설사, 체온, 구더기, 악취, 상어 기피제, 수면 등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전쟁 과학에 집중한다. ‘전쟁의 과학이라는 똑같은 이름 아래에서 전혀 다른 주제, 그것도 약간은 엉뚱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는 주제를 바라볼 수 있는 이와 같은 시선의 전환이 사실 쉬운 것은 아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과학은 대중들이 그것을 함부로, 또는 친근하게 대하기엔 뭔가 어려운, 사람을 쫄게 만드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과학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미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과학 그 자체에 대한 엄청난 신뢰와 그 신뢰가 빚어내는 과학의 권위, 권력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게는 과학책을 대할 때 늘 쫄 수밖에 없는 것이고, 크게는 논란이 있는 사회적 이슈에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며 문제를 종결하려는 시도에 쉽게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스스로가 과학에 대한 권위와 권력을 강력히 인정할 때, 우리는 과학이 제시하는 것만 보고 과학이 말하는 것만 듣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일반인들이나 할 법한 엉뚱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학으로, 전통적으로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에 대한 과학으로 시선을 돌린 메리 로치가 대단히 새롭다. 그리고 그녀가 보여주는 과학들’, 전쟁 속에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약간은 독특하고 괴짜스러운 과학들이 상당히 반갑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선의 전환과 전환된 시선이 비추는 엉뚱한 과학들이 과학을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단지 쉽게 쓴다고 과학이 친근해 지는 게 아니다. 대중이 과학에 부여한 무의식적인, 약간 과도한 권위와 권력이 없어질 때, 과학은 진정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메리 로치가 전쟁에서 살아남기, 이 책에서 친근한 과학을 보여주고 제시하는 작업을 상당히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해봄직한 바보 같은 상상과 의문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너무나 사소해 보이는 것을 연구하는 것, 엉뚱하고 괴짜스러운 것들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 사실 과학도 그런 것들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면 과학은 우리가 쫄아야 할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손에서 조물딱 거리며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내는, 그렇게 우리가 과학의 흐름과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는 친근하고 친숙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 개발이라는,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전쟁의 과학으로 인해 세계정세가 급속도로 불안해지는 이맘, 사람을 살리는 전쟁의 과학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려보면 어떨까? 이런 식으로 다른 여러 과학들에서도 새로운 접근과 시선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써졌기 때문에 좀 더 깊이 있는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독자에게는 지적 유희의 측면에서 부족할 수 있겠다는 우려가 남는다. 가볍게 읽기는 좋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게감은 약하다. 개인적으로는 과학대중서 중에서도 가벼운 편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소재 자체가 워낙 참신하다보니 그것만으로도 읽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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