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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당한 집 - 제4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최수진 지음 / 사계절 / 2024년 8월
평점 :
제4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점거당한 집』을 읽었습니다. 장편이 아닌 단편소설집으로 수상한 것은 처음이라고 하지만, 세 편의 단편 모두 원전사고가 일어난 뒤의 근미래의 사회를 공유하고 있어 마치 하나의 연작소설처럼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2031년 원전사고가 벌어진 후,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과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각각의 공간(광주, 용인, 경주)을 경유하며 펼쳐지는데요. 갑작스럽게 찾아온 재난 앞에서 시민들은 상처로 얼룩진 역사를 떠올리며 서로를 돌보고 또 의지합니다. 특히 첫 번째 소설인 「길 위의 희망」이 가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는데요. 아마도 공간적인 배경이 되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 전남도청 건물을 보존한 채, 현재 광주광역시의 대표적인 문화 시설이자 랜드마크가 된 이곳은 그 자체로 과거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소설은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을 점거한 시위대에 취재를 위해 합류한 ‘나’가 겪어 내는 보름간의 일을 다루고 있는데요. 우연히 시위대에 합류한 한인 2세 찬란 씨와 취재를 위해 시위대에 들어온 ‘나’. 언뜻 보기엔 공통점이 전혀 없을 것 같지만 둘은 시위대에서 유일하게 광주 시민이 아닌 존재입니다.
시위대와 함께하면서 ‘나’는 “한 명의 시민으로 철저히 무력하다는 깨달음”을 온전히 겪게 되고, 작가는 ‘나’를 비롯해 그와 시위대에 합류해 함께 생활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조명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1980년대 역사 속 한 컷에 들어 있는 수많은 이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분명 2036년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에서는 1980년대의 이야기로 읽힙니다. 정소현 작가님의 심사평처럼, 이 소설은 근미래에 벌어진 가상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들은 이 지점에서 ‘애도’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묘한 ‘읽기’가 지속되며 그동안 수많은 예술 작품으로 재현되었던 1980년대의 광주가, 이제는 조금 뻔한 방식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내심 그렇게 생각했던 광주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한 명의 독자로서 이러한 새로운 경험을 안겨 주는 작가는 언제나 반갑고 감사한 존재 아닐까요?
독보적인 작법으로 우리 사회에 진지한 문제의식을 던진 작가, 박지리의 뜻을 이어 한국 문단에 새로운 실험이 될 작품을 꾸준히 발굴해 오고 있는 박지리문학상. 그 수상작에 걸맞은 작품이라는 생각은 책을 완독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그 순간부터 찾아들었습니다. 덧붙여 앞으로 최수진 작가님의 새로운 작품들이 남몰래 기대되기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