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 세계화, 비판을 넘어 대안으로, 확대개정판
세계화국제포럼(IFG) 지음, 이주명 옮김 / 필맥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쓴 토마스 프리드먼은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국경의 장벽없이 금융자본의 이동을 부추기는 전자투자가 집단으로부터 배척당하지 않고 그들을 유용하게 끌어들이기 위해 국가가 갖춰야할 표준화된 시스템을 '황금구속복'이란 조어로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황금구속복을 입고 이를 계속 단정하게 유지하는 나라에는 전자투자가가 몰려들어 국부가 증진되지만 황금구속복을 제대로 갖춰입지 못한 채 전자투자가 집단에 노출된 나라는 소위 감전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특정 국가가 주체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전자투자가 집단에 연결되지 않으면 되지않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에 대한 본보기가 바로 북한이다. 다시 말해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시스템은 단 두 가지 선택만을 강요한다. 동참하여 성장하느냐(물론 운이 좋으면) 아니면 고립되어 멸망하느냐...  

토마스 프리드먼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그 기원조차 불명확한 세계화라는 조류는 싫든 좋든 지구상의 모든 국가, 그리고 그 국가를 지탱하는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게임의 룰에 적응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따르자니 너무 피곤하고 무시하자니 외톨이로 전락할 것 같은 진퇴양난에 빠진 건 세계 20여 개에 불과한 선진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도대체 불과 몇 십년 전만해도 존재하지 않던 '게임의 룰'을 누가 만든 것이며 모두를 피곤케하는 룰을 반드시 따라야만 할 이유가 있는가?  

이 책은 바로 이와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유도할 목적으로 쓰여졌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는 책은 결코 아니다. 물론 해법을 찾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는 지역공동체, 국가 공동체의 예를 중간중간에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대한 고찰일 뿐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해법이라 말할 수는 없다.  

시스템이 복잡하고 거대해질수록 시스템 내의 역학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중심 세력을 한눈에 발견해내기란 여간 쉽지 않지만 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세계화의 선두에 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집단의 정체를 초반부터 콕 집어서 공격한다. 소위 말하는 '브레튼우즈 삼인방'이 바로 그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4년,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즈라는 지역에 세계의 주요 기업인, 경제학자, 정치가, 은행가들이 모여 미래의 전쟁을 예방하고 빈곤을 줄이고 세계를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세계 체제를 만들기로 합의하는데 이때 탄생한 기구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고 그 후에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를 거쳐 '세계무역기구(WTO)'가 탄생했다.  

이들 브레튼우즈 삼인방이 주창한 세계화 모형의 핵심 이데올로기는 다름아닌 자유무역을 통한 부의 증진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염려하는 것이 세계 모든 나라의 부를 증진시키는 것이고 빈국에서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면 더할나위없이 행복하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어느 시스템이건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비슷한 논리를 지향하는 엘리트 그룹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세계은행, WTO, IMF 를 움직이는 리더십은 가난한 나라의 대표로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거대한 글로벌기업의 후원을 등에 업은 선진자본주의 국가(특히 미국)의 핵심 인력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글로벌기업은 그 역시 자본주의 체제의 위대한 산물인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피하다. 한 국가 내에서 글로벌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과점상태에 접어들면 어쩔 수 없이 시장을 넓혀 다른 나라로 진출해야만 한다. 글로벌 기업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제한 없이 세계 모든 나라의 시장에 참여하고 싶겠지만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해 수입쿼터나 관세등의 무역장벽을 쳐놓은 나라들이 많기 때문에 손쉽게 열매을 따먹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무역장벽을 걷어내야 할 운명에 놓인다면 어떻게 될까? 98년 아시아 위기때 그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IMF 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그들이 제시한 '위기 탈출 공식'중의 하나가 바로 불필요한 무역장벽의 제거이고 이는 글로벌 기업이 아무런 제한없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비단 경제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유무역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송오염문제, 기후변화를 야기시키고 있는 온실가스문제, 국가간 동질화로 인한 문화 다양성의 훼손, 공공자산의 사유화로 인한 불평등 심화.... 저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지금껏 내가 세상을 바라본 방식이 얼마나 지엽적이고 이기적이었는지에 대해 새삼 놀라게 된다. 때문에 나처럼 다소 세계화에 우편향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좌편향의 맛을 보여준 뒤 정신차리고 중심을 잡고 세계를 바라볼 것을 종용한다.  

서두에 얘기한대로 저자들이 제시한 대안은 여전히 미완성이고 어찌보면 다소 세련되지 못한 과격함이 엿보인다. 허나 그들의 말마따나 지속가능한 생태의 보존을 위해 다시 말해 급속도로 허리띠 둘레가 늘어나는 것을 건강의 신호로 삼고 있는 현 체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과격함조차도, 깊이 잠들어있는 대중의 눈을 뜨게 만드는데는 역부족이란 생각이 든다. 제 앞가림에 목매고 살아가는데 그쳐 내가 가는 길이 절벽을 향한건지 평원을 향한건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범부에게 들려주는 그들의 생명의 메시지는 분명 귀 기울여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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