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대체로 누워 있고 우다다 달린다
전찬민 지음 / 달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웃수가 2천 가까이 되고 매일 책을 읽으며 블로그를 올리다 보니 나의 메일함에는 협업을 하자, 책을 읽어 달라는 내용의 글들이 제법 도착한다. 거절하는 것이 힘든 성격의 소유자라 일단 보내달라고 메일을 넣는다. 어떤 건 내가 읽고 싶어하는 류의 책이 아님을 알고는 다시 맘을 다 잡는다. '이제부턴 거절해야지…' 하지만 쉽지 않다.

고양이는 대체로 누워 있고 우다다 달린다, 에세이, 신간도서, 도쿄의 일상

요근래 읽은 많은 에세이중에서도 정말 눈에 띄는 작품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병률 시인이 찜한 작가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역시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도쿄의 약간은 무료한 일상을 읽을 때는 햇빛 아래 졸고 있는 고양이처럼 나른했지만 아빠의 이야기나 성철 아저씨 이야기가 나올 때는 고양이가 우다다 달리는 것을 상상했다.

작가 전찬민


이병률 시인이 픽한 감수성의 소유자인 작가는 만 열아홉 살에 일본 도쿄로 건너가 어학원을 다니며 일을 병행했다. 얼마 뒤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어떤 때는 한없이 누워 있기도 했고, 때론 우울감에 젖기도 한다. 그래도 자기만의 속도로 긍정하며 걸어갈 줄 안다.


남편 안 상(さん)

p 133 갑자기 어떻게 온 거냐며 기뻐하는 사람.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같아 어떨 때는 나 자신조차 스스로가 부담스러웠는데 그런 내가 어느 순간이든 어떻게든 나타나기만 하면 좋은 티를 숨기지 못하는 사람 그날 밤 이 사람 옆이 내가 있을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작가는 어학교를 졸업하고 입학한 전문학교 1학년 1학기를 거의 마칠 즈음, 학생비자 발급이 거부된다. 열심히 알바를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학생으로 제한된 근무시간을 훨씬 넘겨버렸기에 한 달안에 일본을 나가야하는 형편이 되어버렸다.

그 때 나타난 구세주. 지금 남편인 남자 친구 안 상이 대안을 제시한다. 그건 바로 "결혼할래?"였다. 한국에 들어가 천덕꾸러기가 되느니 결혼하라는 이모의 말에 어느 정도 긍정이 되었다. 그렇게 이들은 스물두 살, 스물여섯 살에 부부가 된다.

p 35 얇은 줄 위에서 우리 몸뚱어리가 어느 한쪽으로 넘어가려 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말했다. "우리 담대하자"고

몇 번의 반복된 퇴사와 취업 그리고 사업정리 타지에서의 힘든 나날들을 보내는 이들은 시련이 무방비 상태로 날아들었다. 큰 딸이 초등학교에 적응을 못할 때 둘째가 땅콩 알레르기로 힘들 때 서로를 바라보며 다독인다.

담대하자고. 남편과 작가는 내가 20대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정말 용기있고 무던하고 서로 위로해주고 아껴주는 예쁜 한 쌍이다.


성철이 아저씨

p 77 내가 두 사람에게서 배운 건 모순적이게도 오직 사랑 하나 뿐이었다.

엄마가 데리고 온 성철 아저씨는 허약했다. 힘있고 당당한 아빠와는 180도 달랐다. 작가는 그래서 그 아저씨가 싫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저씨에게 지극 정성이었다. 늘 아저씨 걱정을 하는 엄마였다.

그 날도 또 집을 나가버렸다. 엄마는 아저씨를 찾으러 집을 나가버린다. 그러다가 태백에서온 아빠와 성철아저씨가 집에서 맞닥뜨린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빠는 집에 발길을 완전히 끊었다.

성철아저씨는 작가랑 사이좋게 지낼 마음이 1도 없다. 말싸움도 자주하고 작가는 말대꾸도 한다. 아저씨는 너그러운 마음이 전혀없어 보인다.하지만 작가가 둘째를 낳고 부터는 많이 달라졌다. 엄마와 영상 통화를 하면 방 한구석에서 아저씨는 훌쩍인다.

아마도 어른이 아이를 상대로 어리석은 행동을 했구나라는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일가? 그러던 성철 아저씨가 돌아가셨다. 주위 사람들은 살아 생전 아이도 없고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혀를 끌끌차지만 작가와 작가의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던 복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안녕, 아빠

p 91 술에 취하면 이마를 만지며 하얀 얼굴에 흉이 져서 어쩌니하며 울먹이던 아빠는 그 날의 내 발레리나 티셔츠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는 아빠에게 전화를 자주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는 커녕 서로의 안부만 묻고 끊었다. 아빠는 태백에서 혼자 사셨다. 여인숙방 한구석에는 천으로 된 작은 옷장하나가 달랑 있었다. 안에는 셔츠 두어장과 잠바, 바지가 다였다.

옷장위에는 양철박스가 있었다. 좋은 것이 들어있으려나싶어 냉큼 열어재친다. 예전 사택 계단에서 엎어져 이마가 찢어졌을 때 작가가 입었던 옷을 아직도 간직하고 계신다.

p 99 "딸내미가 강원도 남자를 하나 데려왔다고 참 마음에 든다고 했는데, 결혼했지?"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아빠의 지인으로부터

아빠의 진심을 전해 듣는다.

아빠가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마지막 기회로 찾아 들어온 곳, 아내도 딸도 떠나 스스로 주저 앉은 곳 바로 태백은 아빠가 스스로 정한 유배지였던것이다.


정리하며

이야기가 시작될 때는 일본의 예쁜 골목이나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나오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묵직한 이야기가 우다다 나올 줄 상상도 못했다. 에세이를 읽으며 그렁그렁해지기는 정말 오래간만이다.

어릴 적 나에게도 이런 기억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딸의 성장옆에 같이 있어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한 한 사람이 유독 생각나는 밤이다. 삼촌 잘 계시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