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쉬케의 어버지는 걱정이 많다. 위로 두 딸은 혼인을 하였는 데 프쉬케는 홀로 빈방을 지키는 게 혹시 신의 노여움을 받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신탁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딸은 인간의 아내로 살 수 없는 운명이라는 말을 전해 듣게 된다.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산에 제물로 바쳐지지만 알고보니 남편은 프쉬케였다.
p 169 사랑의 그릇은 무엇을 넣음으로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냄으로써 채우는 것이라는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남편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기도 했지만 고향에서 온 언니들의 말로 남편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p 174 어리석어라 프쉬케여. 내 사랑에 대한 보답이 겨우 이것인가? 사람에 대한 보답이 겨우 파국이오? 내가 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사랑했기 때문이오.
남편에게 버림받은 프쉬케는 갖은 고생을 한다. 하지만 에로스는 프쉬케보다 더 마음을 졸이지 않았을까? 결국 이들의 사랑은 신들에게도 인정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