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스트리트 표류기
미스터 펫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4.2
2020년 지진으로 인해 쇠퇴한 타이완의 번화가 시먼딩을 가상 현실로 재연해 재활성화하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루화는 18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그리고 기억을 잃은 자신에게 고작 12살 많은 여자가 엄마라 부르라며 다가온 뒤로 그녀와 모녀지간처럼 지내고 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체험단을 모집해 여러 가지를 테스트 중인데 그 과정에서 인원을 카운트하는 수치 계측법이 바뀌게 되고 전과 후를 비교하는 도중 숫자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접속 로그를 파악했던 바뀌기 전의 카운트에는 1이 뜨는데 사람의 눈 깜박임 모션을 읽는 바뀐 후의 카운트에는 0이 찍힌 것.
발견자인 루화와 그녀의 상사 다산은 함께 가상 현실에 들어가 이를 조사해보기로 한다.
가상현실 속의 거리를 헤매던 중 둘은 그 속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시체를 확인하고 현실로 돌아와 경찰에 신고한다.
머리에 부착한 충격을 재현하는 기계로 인해 현실에서도 방 안에 죽은 채로 시체가 발견되었으며 사망 추정시간에 따라 모두가 로그아웃한 그 시간 사망자와 동시 접속한 인물인 루화와 다산이 용의자로 지목되어 조사받게 된다.

가상현실과 현실로 이어지는 죽음도 그렇고 인공지능에 관한 시각이나 평행이론처럼 대물림되는 관계 같은 흥미로운 것들이 많은 이야기다.
비록 가상현실에 대한 이론이나 받쳐 줄 참고 자료는 없지만 시먼딩 거리만은 제대로 만들어 낸 것 같다.
근거가 빈약한 점과 배경이 고작 2020년이라는 점에서는 현실감이 떨어진다.
2030년이면 모를까 3년 만에 저렇게 급진적인 발전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단순한 VR 수준이 아니라 오감을 전부 생생하게 구현해주고 미용실 같은 기술을 제외한 상거래를 가상현실로 전부 할 수 있는 데에 3년이면 되는 걸까 알 수 없다.
아무튼 2020년은 조금 애매하긴 해도 너무 일러서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라는 걸 확신하면서 읽는 바람에 재미가 줄었다.
이야기 자체는 흐름도 끊기지 않고 곳곳에 허투로 설치해놓은 게 없어서 재밌는데 너무 갑자기 끝이 난다.
중간중간 예측 가능한 부분들은 주로 사건에서 크게 필요없는 것들이었고 그렇게 해서 정확한 범행 동기를 모두 밝힌 것까진 흥미진진했는데 이런 급 결말이라니, 그리고 엄마와 루화가 알게 된 장면을 고작 일기장으로만 짧게 보여주는 건 좀 그렇다.
제법 중요한 장면이고 심지어 그 기억을 잃게 된 사고나 그 전에 있었던 청바지 이야기를 기억은 안 나지만 그냥 그랬겠지 하고 넘어가는 건 이상하다.
기억을 못 찾는 건 마지막 연결고리를 위한 것 같긴 하지만 적어도 그 두 번의 사고가 왜 났는지 그 진상을 말해줘야 한다고 본다.
중국어로 쓰인 소설은 처음 읽는 것 같은데 한자 특성상 번역투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언어나 이름이 적응하기 힘들긴 하지만 그나마 거리 사진이 계속 반복되어 다행이었다.
사실 살인사건의 추리보다는 나머지가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번 사는 사람들
황현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6
두 발의 총알로 1917년생 박정희가 죽은 것처럼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한 발, 딸인 조구가 태어나려는 진통이 한 발 해서 두 발의 총알로 1960년생 박정희 역시 죽었다.
남겨진 딸에게 너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며 남자 이름을 주어 ‘조구’라고 지은 금성은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고향으로 내려가 하숙집을 차린다.
하숙생인 기욱, 용태와 홍시 할매, 순점까지 그 모든 이들과 가족들의 이야기인데 전혀 가족적이지 않다.
하숙생 이전의 기억은 없던 셈 칠 만큼 오히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가 가족보다 친밀하게 그려진다.
세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그 이론처럼 엮이고 엮인 수 많은 인물들이 결국 내려오고 이어져서 시간을 지나간다.
어쩌면 이렇게 빠짐없이 불행하고 아프고 불편하기만 한 건지.
시대가 그러해서 불쾌한 것과는 다르다.
<소년이온다>와는 전혀 다르게 소화되지 않고 꺼림칙하고 불친절하다.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누군가에서 그 곁의 인물로 튀어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꼭 <고래>처럼 느껴지는데 훨씬 잔인하고 부정적이다.
마치 좋지 않은 이야기를 쓸 거라고 작정한 것 마냥 한 없이 먹색의 붓으로 지우고 덮고 치워버린다.
덕분에 누구를 따라가야할 지 길을 잃고 이름을 가진 그 누구도 좋아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시대를 겪지 않은 나에겐 디테일한 소품과 인물들이 현실성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이 아님을 일깨운다.
작가의 말에서까지 왜 이렇게까지 어둡기만 할까.
글 밖의 상황이 전해지는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무조건 행복한 책을 찾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 감정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만 아프길 바란다.
온전히 감상으로만 담아둘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은 자꾸 넘쳐서 결국 영향을 미치니까 싫다.
안 그래도 불편한 책이었을 테지만 특히 추석 전날에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거북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세계 사건부 - 조선총독부 토막살인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4
1926년 9월 22일부터 10월 1일까지 열흘의 경성 이야기다.
류경호는 게이오 대학을 나와 육당 최남선의 눈에 띄어 그가 사장으로 있는 시대일보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한다.
그러다 작년 안팎으로 소란스러워진 시대일보를 그만두고 새벽이 폐간되고 창간된 별세계라는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다.
9월 22일 최남선의 요청으로 완공을 앞두고 있는 조선총독부 건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며칠 전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죽은 이는 건축과 기수로 일하는 조선인 이인도이며 시체는 머리, 몸통, 팔, 다리 총 여섯 개로 토막나 대한제국의 첫 글자인 큰대자를 상징하는 위치에 뿌려져 있었다.
열흘 후에 있을 낙성식을 앞두고 조선인을 통치할 중심이 될 조선총독부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을 위에서는 쉬쉬하며 방관하고, 이를 빌미로 조선총독부부터 시작해 조선인을 주요 관직에서 몰아낼 것이 뻔했다.
머뭇거리며 사건을 받아 든 류경호는 이인도의 하숙집에 직접 들어가 사는 등 조사를 시작하는데 그러던 중 이인도와 함께 조선총독부의 단 두 명 뿐이었던 조선인 기수 박길룡이 시체가 발견된 곳에 그의 만년필이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곧 의열단과 묶어 조선인의 공작으로 치부해 사건을 종결할 것이라는 걸 안 류경호는 평범한 사람일 뿐인 박길룡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낙성식 전까지 진범을 밝히겠다 말한다.

경성의 탐정 이야기는 참 끊이질 않는다.
개화기는 분명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인데 어쩌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는지, 매력이라는 단어 말고는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할 만큼 아득히 유혹당한다.
이질적인 문화가 섞여 혼란하고도 어수선한 분위기와 수긍과 거부로 대변될 감정의 대립,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생경함, 무엇보다 나라를 잃은 울분과 독립에의 열망 같은 것들.
조금만 생각해도 곧장 떠오르는 그러한 배경들이 경성, 그 단 하나의 단어로 대체되는 것이다.
친일파는 아니지만 일본과 연결고리를 가져 조금은 수월한 형편의, 독립 의지는 가졌을지 몰라도 독립투사는 아닌 그들의 직업은 종종 탐정이 되고 무능한 일본 순사를 대신해 억울한 조선인의 누명을 벗기거나 일본의 거대한 음모에 맞서 아무도 몰래 나라를 지키는 데 일조한다.
주로 일본의 나쁜 짓을 막는 것으로 끝나는 탐정 소설들과는 약간 다르다.
이거라도 했어 라며 보여주기 식의 사건 해결이 아니라 딱 할 수 있는 만큼의 추리고 결론이다.
아무렴 주인공은 탐정이 아니라 기자니까.
그래도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정해진 결과는 변하지 않기에 이 책을 포함해 모든 경성의 마지막은 그럼에도 희망은 있겠지 가 되고 만다.
이 책의 희망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고.

충분히 속편이 나올 것 같다.
메인인 추리 과정이 너무 튀지도 않고 허황되지도 않아서 순순히 받아들이게 되고 수많은 고증을 증명하듯 자연스러운 그 시대의 용어들과 꼼꼼한 주석들이 이야기를 꽉 잡아준다.
그저 그런 탐정 역할일 뿐인 주인공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아쉽지만 그래도 아주 생생한 정탐소설이다.
크게 기대 안 했는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7
문화가 있는 날에 도서관을 가는 게 올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10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많이 빌려왔다.
빌리고 보니 전부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같은 것들이라 일단 읽을 순서를 정하면서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어야 겠다 싶었다.

지은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봉명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아이돌 뺨치는 외모의 꽃미남 관리과장이 있어 부녀회장 및 여자 입주민에게 봄을 선사한다.
자신이 잘생긴 걸 너무나도 잘 아는 꽃미남 정차웅은 사실 전직 형사로 1년 전 갑작스레 사직서를 제출하고 잠적한 뒤 관리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우연히 좀도둑 때문에 찾아 온 동료 형사였던 강주영을 만나며 소싯적 에이스의 감을 발휘해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해결해가기 시작한다.

사건은 오물 투척부터 절도, 살인까지 다양하게 일어나는데 한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것 치곤 너무도 빈번하다.
오물 투척 정도의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건 생활이겠지만 저 정도면 이미 현실성은 잃은 지 오래.
cctv도 없는 임대아파트는 좋은 배경일 수도 있지만 그리 적재적소에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다.
잘생김에 엘리트라는 딱 단어 하나짜리 설정은 이도 저도 아닌 캐릭터를 만들었고 대사는 매끄럽지 않아서 읽는 데 자꾸 방해가 된다.
주인공에게는 형사의 신분이 없기 때문에 사건 해결은 강주영을 빌려 답을 내는 형식을 따르는데 그 과정에서 형사가 조사 내용을 모두 발설해 답을 구하는 건 아무리 동료였다고 해도 좀 아닌 것 같다.
나름 공모전 대상작이라고 해서 그래도 기대를 했는데 책 디자인만 그럴 듯 했지 속은 영 읽을 게 없다.
뭐 이벤트 당첨만 아니면 읽지 않았을 책이긴 하다만.
이런 걸 장르소설이라고 하나, 웹소설 같은 것들.
일본으로 치면 라이트 노벨 택인데 정말 너무 가벼워서 읽기가 힘들다.
`선암여고 탐정단` 정도의 글을 기대했는데 참 그렇다.
아무튼 아직 읽을 건 많으니까 패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0
먼저 하나는 인정하자.
난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객관적일 수 없는 사람이다.
아무리 그렇지 않은 척 해도 표정이 다르겠지.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도 내겐 평가 대상이 될 수 없다.
사상 최초로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동시에 수상했다는 대대적인 수식어가 없었어도 분명히 읽었을 책이니까.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녀의 팬이니까.

피아노 콩쿠르에 대한 이야기로, 11년의 취재와 7년 간의 시간을 들여 완성되어 첫 구상부터 총 12년이 지나 비로소 빛을 보게 된 작품이다.
책은 3년마다 열리는 요시가에 피아노 콩쿠르의 예선부터 본선까지, 그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보여주겠다는 듯 700여 페이지를 할애하여 오롯이 선사한다.
진, 아야, 마사루, 아카시, 네 명의 연주를 중심으로 콩쿠르는 진행되는데 그건 이들이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라 실제 콩쿠르에서 모든 참가자 중 뛰어난 몇 명만 기억에 남는 것처럼 그저 그들의 실력이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콩쿠르 후반으로 갈수록 실력자들이 많아지니 남은 페이지가 분명 앞보다 훨씬 적은데도 다른 이들의 연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불과 일주일 정도의, 딱 하나의 콩쿠르만 보여주었을 뿐인데 이렇게도 지독히 그들과 함께 가게 만든다.
음악을 글로 나타낸 거고 심지어 모르는 곡인데 그들이 그 곡을 통해 도달한 지점이 눈에 보여 버리니까 이상하다.
그러니까 꼭 수박을 모르던 내가 수박우유를 맛본 기분.
결국은 그 음악을 찾아 들으며 함께 하지 않는다면 결코 수박에 대해선 알 수 없겠지.

피아노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는 많지만 `피아노의 숲`과 `4월은 너의 거짓말`이 떠오른다.
특히 `4월은 너의 거짓말`은 내가 처음 접한 피아노 콩쿠르에 대한 이야기라 처음 소개글을 접했을 때부터 생각이 났다.
이 책은 심지어 그림도 존재하지 않는 글인데 어떻게 이렇게 선명할 수 있을까.
그들이 보여주는 곳으로 끌려가면서 결국 음악은 글이고 말이며 장면이고 느낌이란 걸 안다.
서로에게 자극받으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천재들의 경쟁, 좋은 영향만을 남기는 싸움이라니 그야말로 모순이지만 오로지 아름답게만 표현된 이유는 알 것 같다.
경쟁의 치열함이 주제였다면 아마 훨씬 짧고 훨씬 강렬했을 거다.
이처럼 시간을 들여 서서히 내어놓는 연주가 아니라 어쩌면 계산적인 연주들이 중간 중간 흐름을 깨어 놓았겠지.
성장을 연상하는 배경들과 티끌만큼도 없는 나쁜 시선이 한없이 이상적인 따뜻함을 자아낸다.
애초에 피아노 선율은 아름다우니까 그쪽이 훨씬 좋다.

책의 원제는 <꿀벌과 원뢰>였다.
원뢰는 사전에 따르면 멀리서 울리는 우레인데 천둥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단어다.
아마 의미가 바로 통하지 않아 천둥으로 대체했을 것 같다.
태클걸고 싶지 않을 만큼 훌륭한 번역이었으니까.
꿀벌은 꿀벌왕자인 진을 가리킨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책의 시작과 끝에 나왔던 음악의 시초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닐까.
음악의 근본이 되는 소리, 음악으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 같은.
그렇다면 원뢰는 음악의 무엇일까.
멀리서 울리는 천둥소리, 우레와 같은 박수일 수도 있고 곧 다가올 태풍을 예고하는 전조일 수도.

책에는 총 3명의 천재가 등장한다.
아카시 같은 범재도 주요 인물이긴 하지만 3명은 역시 많아 보이긴 한다.
하물며 셋이 서로를 견제하며 대립하는 구도도 아니다.
때에 따라 두명씩 짝지어지는 셋은 서로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끈다.
꿈을 향해 나아가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 서로를 친구로 여기며 함께 어우러진다.
그럼에도 확실히 3이란 숫자는 딱 떨어지지 않아서 그 중에서도 더 나은 천재를 찾게 되고 한 명을 소외시킨다.
다 천재인데 말이다.
천재하면 흔히 따라오는 열등감이 두드러지지 않는 책은 드물다.
이 책은 그보다는 천재들 만의 이해와 대화를 다루고 있다.
그들의 재능에는 그들만이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천재지만 알지 못하는 것도 있고, 방황하기도 하고, 뒤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천재이기에 음악을 밖으로 꺼내오고, 완벽히 부활하고, 거창한 꿈을 꾼다.
결국 그 다채로운 향연이 이렇게 총 천연색의 책을 만들어낸다.

클래식은 즐겨 듣진 않지만 좋아하는 편이라 가끔 찾아 듣는다.
유명한 음악가의 유명한 곡 이외에는 잘 모르지만 조성진 앨범은 소장하는 정도다.
그냥 피아노 콩쿠르와 온다 리쿠라는 조합으로도 충분했는데 수상 소식부터 이 책은 참 과한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입한 지도 벌써 몇 주나 지났지만 제일 맛있는 건 제일 마지막에 먹는 버릇이 자꾸 읽는 시기를 미루게 만들었다.
더 적당한 때를 기다리다가 불쑥 계절이 바뀌기 전에, 그러니까 여름이 가기 전에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우니까 천천히 음미하고 싶다가도 쉬지 않고 단숨에 읽어 내려가고 싶기도 했다.
손에서 놓기 싫었다.
또 읽게 될 거란 걸 알지만 그래도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비하인드 스토리나 속편을 기대하는 마음과는 달리 그저 이 책의 내용이, 이 콩쿠르의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역시 온다 리쿠는 좋구나.
사실 이렇게까지 따뜻한 분위기일 줄은 몰랐는데 연극을 향한 애정이 보였던 `초콜릿 코스모스`처럼 피아노를 애정한다는 느낌이 여실히 드러나는 책이었다.
분명 좋아하지 않으면 이 정도까지의 책은 나올 수 없다.
꼭 그 연주장에 함께 있었던 것처럼 여운은 감돌지만 분명히 듣지 못했다는 건 아쉽다.
같은 곡을 재생하더라도 그들이 연주한 곡은, 그 모든 장면을 보여 줄 음악은 아니겠지.
언젠가 드라마로 만들어지려나.
그럼 그와 비슷한 걸 혹시 들을 수 있을 지도.
아무튼 좋다, 좋아.
마음껏 좋아해야지.
또 다른 책은 나올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