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사는 사람들
황현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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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두 발의 총알로 1917년생 박정희가 죽은 것처럼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한 발, 딸인 조구가 태어나려는 진통이 한 발 해서 두 발의 총알로 1960년생 박정희 역시 죽었다.
남겨진 딸에게 너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며 남자 이름을 주어 ‘조구’라고 지은 금성은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고향으로 내려가 하숙집을 차린다.
하숙생인 기욱, 용태와 홍시 할매, 순점까지 그 모든 이들과 가족들의 이야기인데 전혀 가족적이지 않다.
하숙생 이전의 기억은 없던 셈 칠 만큼 오히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가 가족보다 친밀하게 그려진다.
세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는 그 이론처럼 엮이고 엮인 수 많은 인물들이 결국 내려오고 이어져서 시간을 지나간다.
어쩌면 이렇게 빠짐없이 불행하고 아프고 불편하기만 한 건지.
시대가 그러해서 불쾌한 것과는 다르다.
<소년이온다>와는 전혀 다르게 소화되지 않고 꺼림칙하고 불친절하다.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누군가에서 그 곁의 인물로 튀어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꼭 <고래>처럼 느껴지는데 훨씬 잔인하고 부정적이다.
마치 좋지 않은 이야기를 쓸 거라고 작정한 것 마냥 한 없이 먹색의 붓으로 지우고 덮고 치워버린다.
덕분에 누구를 따라가야할 지 길을 잃고 이름을 가진 그 누구도 좋아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시대를 겪지 않은 나에겐 디테일한 소품과 인물들이 현실성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이 아님을 일깨운다.
작가의 말에서까지 왜 이렇게까지 어둡기만 할까.
글 밖의 상황이 전해지는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무조건 행복한 책을 찾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 감정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만 아프길 바란다.
온전히 감상으로만 담아둘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은 자꾸 넘쳐서 결국 영향을 미치니까 싫다.
안 그래도 불편한 책이었을 테지만 특히 추석 전날에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거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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