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3
이희영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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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이희영/ 현대문학/ 핀 장르 003





"나는 인간이 스스로를 정확히 보는 게

의외로 힘들다고 생각해.

근데 가끔 보일 때가 있어.

그렇게 드러난 것이

꽁꽁 감춰두었던 흉터일 수도 있지."







이희영 작가는 부모-자식 간의 천륜을 뒤집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화두로 삼은 <페인트>로 알게 되었다. '부모를 선택하여 가족을 구성하는' 주체로 아이들을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하는 그의 글은 파격 그 자체였다. 이번 작품 <페이스> 역시 기이한 발상에서 탄생하였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아이가 있다면……."




일상의 습관에서 스치는 생각이, 한 줄의 문장이 시울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소름이 돋을 만큼 전율에 휩싸였다. 글을 뽑아내는 이 놀라운, 노련한 능력에 탄복하며 이희영 작가가 구축한 <페이스> 세계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영민한 아이다. 자신의 말에 반응하는 타인의 신호를 섬세하게, 예민하게 파악하여 그들을 안심시켰으니까. 불과 여섯 살이었던 작은 아이는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바로 자신을 속이기로 하였다. 그렇게 12년이 지나갔다.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18세 소녀 인시울은 어느덧 적응해나가는 것 같이 보였다. 아침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어떨까? 궁금해하는 모습에서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남자 주인공 우진이 떠올랐다. 자고 일어나면 다양한 성별, 국적, 연령대로 변했던 우진처럼 시울도 먹물, 모자이크, 낙엽, 안개, 롤리팝 등 다양한 이미지로 가려진 자신의 얼굴을 매일 아침 거울로 보았다. '모든 이에게 보이느냐, 자신에게만 보이느냐'라는 큰 차이가 있지만.








매일 달라지는 얼굴 이미지를 수용하는 듯 보였는데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이마에 생긴 흉터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에 대한 반응이 인상적이다. 난생처음으로 진짜 얼굴과 마주한 감정, 우리는 유아기적에 겪어 기억조차 나지 않은 그 생경하면서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는 18세 인시울은 자신의 내면에 좀 더 내밀하게 다가선 듯하다. 상처를 통해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상징이라 굳이 감춰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서 최초로 상처를 입고 흉터로 드러난 자아를 긍정하는, 인식하는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시울은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좋은 점들을 자꾸자꾸 찾아낸다. 주변 사람들의 반짝이는 얼굴을 그 자체로 소중히 여긴다. 그 넘치는, 자연스러운 생기를 정작 담고 있는 본인만 모르는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그냥 인간의 삶이 그렇게 흘러간다. 

지난 후에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안타깝고 아프게도……."





시울이 담아내는 주변의 빛나는 얼굴들이 아름다워 가슴이 저렸다. 할머니의 안온한 미소가, 환한 얼굴이, 라미의 살짝 어긋난 앞니가, 목젖이 보일 정도로 환히 웃는 얼굴이 참 많이 반짝거려 눈이 부셨다. 


어둠 속으로 침잠한 묵재가 가깝지 않고 약간의 거리가 있는 존재인 시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토해내게 되는 흐름은 터닝포인트가 되어준다. 

아물지 않는 상처 때문에 속이 다 곪은 묵재는 그 상처를 시울에게 털어놓고 위로받음으로써 상처의 아가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 오랜 시간 남들의 시선과는 다른 자신의 눈으로 보고 살아온 시울 덕분이다. 




"삶의 얼룩들에 한번 시선을 빼앗기면 

더 크고 소중한 것들이 안 보인다.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세상의 시선이 아닌 

너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뭔가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







아침마다 시울과 엄마가 주고받는 대화가 현실적이라 오히려 좋다.

"딸, 좋은 아침."

"거짓말하지 마."

"너는 꼭 아침부터 사람 기분을……."




서로를 알 수 없고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너무 가까운 관계. 하지만 어느새 닮아갈 정도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관계다. 얼룩에 집착해서 크고 소중한 무언가가 반짝일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잠시 생각해 본다. 

시울이 얼굴을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처럼 우리의 얼굴도 이렇게 개성 넘치고 다채롭다면 삶이 좀 더 풍요롭고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일단 시울이 말대로 이분적인 표현보다는 훨씬 재밌다. 그리고 그런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꼼꼼하게 얼굴을 살펴보는 게 먼저일 테다. 그러다 보면 내밀한 자아를 밀도 있게 인식하는 그날이 오지 않을까. <페이스>가 열어준 즐거운 상상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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