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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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프레데리크 그로/ 책세상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

내가 생각하는 수치심이 맞나? 싶은 제목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표지에 그려진 에곤 쉴레의 그림에도 마음이 끌렸다. 뒷모습은 앞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게 '수치심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저자인 프레데리크 그로는 프랑스의 철학자로 '수치심'에 대해 왜 쓰고자 했는지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수치심'이 가지는 위치는 엄청났고 복잡했고 폭넓었다. 역사적 사실과 저서로 뒷받침되어 서술되는 '수치심의 세계'는 실로 놀라웠다. 

'세상에 대한 수치심'이 고결한 분노로 발현될 때 우리는 불복종할 힘을 가지게 된다는 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순수한 분노로 정화된 수치심은 한계를 느끼는 감정이기에 언제나 변화를 향한 부름인 것이다.



저자는 수치심을 다양한 경로로 탐색한다. 그의 고찰이 들려주는 수치심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원인(사회적 가난, 정신적 치욕, 육체적 불결), 수치심에서 비롯된 태도(멸시, 분노, 혐오), 수치심을 받아들이기 힘겨운 이유를 비롯하여 야기하는 상황으로 수치심을 분류하여 논하고 있다. 좀 더 수치심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며, 다양한 근거와 예시들로 이해를 돕기 때문에 복잡한 수치심의 면면을 탐구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당연히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지만, 이토록 찬찬히 들여다볼만한 생각과 재능이 없는 나였기에 저자 프레데리크 그로가 보여준 '수치심' 도식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무리 생활을 하는 우리 인간은 '타인'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의식하고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치심'은 큰 두려움이자 공포가 되는 것이리라. 


"헝가리 정신분석학자 임레 헤르만은 매달리는 원초적 본능을 '애착 욕구'의 구체적 지시대상 같은 것으로 가정하고, 단단히 매달릴 의욕을 꺾어놓는, 털의 결핍이 우리 종에 모든 불행(불안, 죄의식, 수치)의 모태가 되는 음험하고 지속적인 불안을 초래했다고 상상했다. 수치심의 번민은 버림받았다는 감정, 무리로부터 허공에 버려졌다는 슬픔, 모든 것에서 떨어져 나오고, 끈이 끊기고, 닻이 풀렸다는 감정에서 온다. - 우울 95~96쪽




'수치심'을 다룬 학자들 중 공자와 플라톤이 있다. 

그들은 수치심을 관망의 태도, 더불어 살기, 행복 추구를 위한 중요한 윤리적 자질로 받아들였다. 공자는 움츠림, 조심성, 신중함… 이것을 수치심으로 받아들였다. 수치심은 각각의 윤리적 힘을 제 고유의 본질 속에 지켜주며, 실제로 공정하고 공손하고 진지해지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플라톤은 "선한 인간을 인도하는 원칙은 추한 행동과 연계된 수치심, 그리고 아름다운 행동과 연계된 명예 추구다."라 말했다. 그는 수치심에 많은 힘을 부여한다. 그것이 함께 살아가기를 가능하게 만들고, 지혜를 요약하고, 용기를 준다고 말한다. 수치심은 구체적 위험 앞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그런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의 공적 이미지를 변질시킬 수 있을 무엇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란다.







저자는 윤리적 수치심, 외상성 수치심, 철학적 수치심, 교차적 수치심, 계통적 수치심, 혁명적 수치심 등을 다루고 있다. 성폭행, 강간, 사회적 가난, 흑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이 수치심을 유발하는 배경이 된다. 구분되어 명명되는 수치심에 관한 사유를 읽다 보면 어느새 수치심의 본질에 대해 조금씩 가까워진 느낌이다.



"분노란 우리를 향한 또는 우리 가족을 향한 공개적 멸시, 부당한 멸시를 마주하고 공개적 복수를 바라는 비통한 욕구다." - 아리스토텔레스 







수치심을 느끼지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타인의 자리에 서 보게 하거나 가능한 다른 세상들을 고려해 보게 하는 움직임이 바로 상상력인 것이다. 이런 상상력을 좌절시키려는 시도들 앞에서 서 있는 우리는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앞에서 올바른 자가 느끼는 수치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수치심을 분노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무구함의 반대는 죄의식이 아니라 '통찰력'이다.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통찰력이 있어 불의가, 불공정이 어떻게 법과 사법기관과 교회의 지지를 받는지 본다." - 계통적 수치심, 226쪽



프레데리크 그로는 우리에게 '수치심'의 본질적인 힘을 일깨워준다. 그 여정을 함께 하면서 만난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감흥 하지 못한 채 덮어버렸던 작품들을 이제는 새로운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수치심'을 단순히 부끄러움으로 아는 이들에게 더 넓고 복잡한 '수치심'을 보여준, 놀라운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다>를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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