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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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작가의 첫 소설집 <고스트 듀엣>

 

고스트 듀엣/ 김현 소설집/ 한겨레출판




시와 산문으로 우리 곁을 지키던 다정한 김현 작가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계속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독특한 색채의 소설집을 내놓았다.

 

 

11편의 단편들로 구성된 <고스트 듀엣>은 다양한 소재와 현상을 매개로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존하는 일상과 사랑 그리고 재난에서 홀로 살아남은 이들의 삶, 성소수자인 청소년의 연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수월>은 죽은 어머니가 귀신이 되어 딸네에 찾아와 인연을 이어가는 유쾌한 이야기였다. 귀신이 찾아와도 큰 충격 없이 같이 술을 마시고 가게 이야기를 하는 등 이승과 저승의 교류가 신선했다. 이승에서 맺어진 관계가 저승까지 계속 되어 세상 구분 없이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모습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소설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로 사는 동안 그리 애썼으면 되었다. 은숙도 비슷한 심정이어서 서운할 것도, 속상한 것도 없었다. (12쪽)

맑은 술이 담긴 잔이 돌고 돌고 노래할 사람은 노래하고 춤출 사람은 춤추고 갈 사람은 가지 않고 이승에 미련이 없는, 가야 할 귀신이 가고 싶지 않아 해서 산 사람들이 어르고 달래 저승문 앞까지 배웅했다. (33쪽)

 






<고스트 듀엣>은 사랑하는 이가 죽은 후 떠나보내지 못해 홀로그램으로나마 곁에 두는 이들의 이야기다. 살기 위해 죽은 이를 품은 그가 애틋했다. 이렇게 상민의, 우리의 삶이 이어져 빛나는 하늘을 볼 수 있음을 감사하였다.

 

눈빛, 그것은 죽음을 데리고 다니는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언어였다. 눈빛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말을 했고, 꼭 해야 할 말을 꼭 하도록 했다. 그들이 살아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83쪽)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존재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해도, 당신 역시 쉬이 눈 감지 말기를.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니까. (85쪽)





<유미의 기분>은 미투를 다루고 있다. 너무 쉽게 생각 없이 내뱉는 말로 인해 상처  입은 영혼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오히려 2차 폭력을 가하고 있다. 그런 어둠 속에서 유미의 숨을 생각하고 사과를 건네는 형석을 보면서 희망을 꿈꾼다.

 

형석은 유미의 등을 천천히, 최대한 천천히 쓸어내렸을 사람을 그려보았다. 누군가를 만만하게 보는 얼굴을. 그는 아마도 유미가 누구에게나 얘기할 수 있도록, 말할수록 유미만 이상한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등을 쓰다듬었을 것이다. 아무도 유미의 말을 믿지 않도록, 모두가 유미보단 그런 유미를 생각하도록, 유미의 기분은 유미만이 느끼도록.

"저는 기분이 나빴어요." (117쪽)


 





소설 속 인물들이 서로 엮여있어 단편들이지만 옴니버스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처음에는 개별적인 이야기로 읽다가 겹치는 이름과 배경에 구슬을 꿰듯이 이야기들을 꿰어 세상을 구성하였다.


사랑하면서도 서로의 관계에 대해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숨에 수반하는 고통과 두려움을 이해를 넘어 감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사랑은 생사를 뛰어넘어 현재진행형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그가 '행복이 불행에게 답하는' 기록은 희망의 빛을 내뿜는다.

연애를 들킬까 불안에 떨었던 어린 연인들이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자기들 앞에 펼쳐진 세계로 힘차게 한 발을 내딛는 것처럼. 헤어졌던 연인이 저벅저벅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처럼.


김현 작가가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은 소설집 <고스트 듀엣>은 그의 숨으로 수놓은 사랑 이야기였다. 유쾌하다가 아련하고, 다정하다가 애끓는 등 다채로운 감정이 몰아친다. 낯선 듯 하지만 결국 우리의 사랑하는, 살아가는 친숙한 이야기였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인생일지라도 무너지지 않은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자주 불러줘야겠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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