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이올린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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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이올린』은 3장으로 구성되며 각 장은 바이올린이라는 매개체가 두 남자를 연결한다. 대중적이고 평범한 현악기인 바이올린은 이 작품에서 ‘검은색’이라는 특징을 부여받고 특별한 장치로써 작동한다. 모든 빛을 흡수하는 색으로서 검은색은 주로 죽음, 암흑, 두려움,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낱말과 어울린다. ‘검은 바이올린’은 단순히 연주에 쓰이는 악기를 넘어서, 인간이 소유를 향한 집념과 욕망, 결핍을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요하네스 카렐스키는 어린 나이에 바이올린 연주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다. 그는 일찍이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크게 성공하지만 어머니를 여의고 사람들로부터 빠르게 잊혀간다. 삼십일 세의 나이에 전쟁에 징집된다. 이탈리아 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카렐스키는 베네치아의 어느 노인의 저택에서 머물게 된다. 에라스무스라는 이름의 노인은 바이올린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카렐스키와 에라스무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카렐스키는 언젠가부터 예술적 영감과 음악 작업이 모두 소멸되는 것을 알아챈다. 그는 마치 어둠(검은색)이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것처럼 검은 바이올린이 자신의 생각과 내면을 모두 앗아간다고 확신하게 된다. 꿈에서 본 것들을 현실로 끌어내는 일에 어려움을 겪자 카렐스키는 자신의 고민을 에라스무스에게 털어놓는다. 에라스무스는 검은 바이올린을 바라보며 ‘꿈을 부수’라는 조언을 건넨다. 이는 비현실적인 실현만 가득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라는 의미와 소유와 집착을 깨부수고 진실로 정성을 들이라는 의미가 담긴 조언이라고 생각했다.


에라스무스의 카를라를 향한 사랑은 광기가 서린 집착처럼 보였다. 그가 카를라를 생각하며 창작한 바이올린은 카를라의 목소리를 재현하고 몸매를 본뜬 형태를 갖췄다.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은 집착으로 뒤바뀌어 마침내 악기가 되어 그의 몸에 안겼다. 카를라를 대신하여 창조된 바이올린은 카를라를 집어삼킨다. 카를라가 병을 얻어 죽어갈 때, 그녀의 목소리, 형태, 영혼이 바이올린에 봉인되고 있었다. 결국 에라스무스 역시 검은 바이올린(집착)을 깨부수지 못하고 파괴된다. 에라스무스는 집착하는 인물로 보인다. 사랑하는 여인, 여인을 본뜬 악기,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만드는 증류주, 빠르게 승부가 나지 않는 장기까지. 어쩌면 그 집착은 광기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모두 인내하고 정성을 들이는 행위이다. 인간의 삶에는 이러한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며, 집착으로 변모될 경우 깨부술 수 있는 대담함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에라스무스와 카렐스키는 모두 천재성, 집착, 욕망을 보이지만 끝내 카렐스키는 이것들로부터 해방된다. 음악 노트를 벽난로에 던짐으로써 족쇄와 같았던 검은 바이올린 이야기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해방되기까지 무려 3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마침내, 처음으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짧고 흥미로운 소설이라 단숨에 읽었지만 쉬운 내용은 아니었다. 현대인에게서 볼 수 있는 물질적 욕망과 소유에 대한 집착, 사랑과 예술의 본질은 경시한 채 취하려고만 하는 폭력성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에라스무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구어체로 전할 때, 어미가 반복적인 것은 조금 아쉬웠다. “-했지”, “-였지”로 반복되는 어미를 “-더군”, “-다네”, “-거든” 등의 다양한 어미로 대체했다면 더욱 생동감 있게 내용이 전달되었을 것 같다.


매일 아침 그는 바이올린을 고치거나 만들었다. 오후에는 증류를 했다. 저녁에는 장기를 두었다. 어느 때나 그의 세 가지 열정이 만든 도취 상태였다.

그는 언제나 취해 있었다. 음악에 취해 있거나, 술에 취해 있거나, 장기에 취해 있었다.

"단 한 번. 아주 오래전에. 그때 이후 다시 만지지 않았네. 사랑 같네. 한번 사랑을 맛보면-진짜 사랑 말일세-결코 잊을 수 없지. 인생에서 단 한 번 행복한 것보다 비참한 것은 없네. 나머지는 모두, 사소한 것조차, 커다란 불행이 된다네."

"꿈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꿈에 한계가 없고 꿈이 모든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지."

"물론. 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꿈에서 아름다운 것이 현실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해?"

"꿈을 부숴야겠지."

"카를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만들겠어요. 오직 당신만을 위해. 내가 당신 목소리를 소유하겠어요."

나는 몰랐어. 그렇게 해서 그녀를 영원히 잃고, 나 자신도 파괴할 줄은.

요하네스 카렐스키가 자신의 유일한 오페라를 작곡하는 데는 31년이 걸렸다.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꿈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그 31년을 살았다. 에라스무스와 검은 바이올린의 이야기를 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그 세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았다.

그래서, 광기에 아주 가까워지곤 하는 이상한 성향으로 인해, 카렐스키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음표들을 적어온 노트를 벽난로에 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일생의 작품이 불길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됐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이야기와 결별했다."

그는 침대에 누웠다. 몸은 지쳤으나 영혼은 차분했다. 영혼이 차분해진 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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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bsb2063 2023-02-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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