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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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혼여행'은 장강명과 HJ의 신혼여행 이야기이다. 그들의 만남부터 결혼까지를 짧게 다루고 3박 5일간의 보라카이 여정을 상세하게 다룬다. 여행기를 읽고나면 보통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지난 여행 사진을 꺼내보고 싶게 만든다.

나는 까칠한 남자를 좋아한다. '신혼일기'의 안재현을 보며 군침을 흘리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다정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퉁명하게 대꾸하고 후회하는 타입이다. 꼭 남녀 관계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나를 칭찬하거나 나에게 다정하게 굴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중학생 시절이었다. 친구가 have와 has를 구분하는 방법을 물어봤다. 나는 'has'는 세 글자니까 단수고 'have'는 네 글자니까 복수라고 외웠어. 하는 식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이게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본 우리 수학 선생님이 '참 똑똑하네' 칭찬해 주셨는데, 나는 그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선생님을 노려봤다. 아아, 노려보고 말았다. 20년이 흘렀는데도 선생님이 당황한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바보다.
꼭 다정함에 대처하는 방법을 몰라서 까칠한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까칠한 남자와 있으면 너무 웃기다. 내가 차린 밥을 먹고 남편이 자리를 털고 일으나며 '내가 먹었으니 니가 치워.'하면 그게 너무 웃기다. 나 혼자 '이런 미친ㅋㅋㅋㅋ'하면서 키득거리고 나중에는 혼자 알기 아까워서 주위 사람들에게 남편 자랑을 하면 사람들 얼굴이 썩는다. 그 귀여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잘 없다.
요즘 좋아하는 까칠한 남자는 장강명과 정우열이다. 맹목적이지 않아서 좋다. 무언가에 눈먼 것처럼 달려드는 열정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적당히 냉담하고 균형 잡혀 있다. 좋은 것은 좋다고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한다.
며칠 전 직장 내 사모임을 탈퇴했다. 원체 집순이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여럿이 모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상황을 주도하고 싶은 유아적인 욕구(!)와는 달리 대화를 잘 따라가지 못하고 쉽게 피곤함을 느낀다. 지난 월요일은 모임이 예정된 날이었다. 일요일 오후부터 모임 걱정이 됐다. 잠자리에 들 무렵에는 무슨 핑계로 안 나갈까를 한참 고민했다. 요일을 혼동하고 멀리 왔다고 할까, 아프다고 할까, 본가에 일이 생겨서 갔다고 할까. 한참을 그러다가 문득 '내가 뭐하는 짓이지' 싶었다. 사람들을 기만할 생각을 하며 내 시간도 쓰레기같이 보내다니.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아주 감사하게도 모임에서 나를 꽉 잡아주었고 아주 죄송하게 거절을 했다.
그냥 이렇게 하면 될 일이었다. 다행히 모임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만약 얼굴을 붉히거나 서운한 마음으로 끝났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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